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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도 주인 없는 응원가여

‘서민’ 프로야구 선수의 비애
등록 2014-01-08 14:07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11월2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13차 국민대회’의 한 참가자가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13년 11월2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13차 국민대회’의 한 참가자가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기록적인 겨울이었다. 돈에 관한 한국 야구의 모든 역사가 새로 쓰였다. 자유계약(FA) 선수들은 최고액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우며 총액 500억원이 넘는 시장을 만들었고, 오승환과 이대호는 일본에서 엔화를 쓸어담았으며,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1350억원짜리 계약으로 아시아 선수 기록을 경신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한국의 서민이 ‘계급’을 역전시킬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길이 되었다.

천문학적인 돈잔치가 벌어지는 와중에,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해 11월25일 이인구(사진)와 정보명을 방출했다. 둘은 모두 34살로 적지 않은 나이지만, 길어지는 선수 수명을 감안하면 아직은 한창 야구를 할 때다. 둘은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팀을 찾아다녔으나 손 내미는 곳이 없었다. 정보명은 모교 야구부의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이인구는 아직 뛸 수 있는 팀을 찾는 중이다.

둘은 자신만의 응원가를 가진 선수였다. 한국 야구에서 관중이 불러주는 자신만의 응원가를 가졌다는 것은 선수로서의 입지를 상징하는 중요한 지표다. 대학 시절 정보명은 국가대표 주전 외야수로서 이택근(넥센)보다 타율이 높았다. 그는 2010년까지 직전 4년간 958타석에서 평균 타율 0.284를 기록한 준수한 3루수였으나 이대호의 3루 전향으로 포지션을 빼앗긴 뒤 3년간의 2군 생활 끝에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2008년 포스트시즌에서 인상적인 타격을 보여준 이인구는 2009년 95경기에서 0.270, 2011년 81경기에서 0.267의 타율을 기록하며 착실히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2년 뒤 그가 팀에서 방출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선수가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롯데는 FA로 강민호에게 총액 75억원을 안겨주었지만, 정보명과 이인구의 지난해 연봉은 각각 4800만원과 4700만원이다. 상대적으로 싸고 준수한 선수들로 팀의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거액을 안겨준 슈퍼스타 몇 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리그는 언젠가 거품이 걷히며 앙상한 구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프로야구의 생리겠지만 해마다 더 이상 부르지 못하는 응원가를 추가해야 하는 야구팬의 심정은 착잡하다.

지난해 11월까지 한국의 정식 고교야구 팀은 60개이며 선수는 약 1500명이다. 야구계 종사자들은 4천 개가 넘는 일본에 빗대 야구 발전을 위해 고교야구팀의 신설을 독려하지만, 극소수 슈퍼스타에게 돈이 집중된 프로야구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불투명한 미래와 싸워야 하는 ‘일반 선수’들의 인생을 생각하면 고교야구팀의 증가를 독려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인구를 검색하면 이제 2살 된 아들 승윤이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이인구의 비통한 인터뷰가 나온다. 정보명을 검색하면 지난해 6월 딸 효림이의 돌잔치 사진이 나온다. 언젠가 승윤이와 효림이가, 젊은 시절의 아빠가 3만 명이 합창해주는 응원가를 가진, 연습벌레라 불리며 참 열심이었던 프로야구 선수였음을 알게 되길 빈다. 그리고 모든 ‘서민’ 프로선수들의 건투를 빈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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