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만화 . 우여곡절 끝에 전국대회에 출전한 북산고는 2회전에서 최강 산왕고를 만난다. 뒤지고 있던 북산의 감독은 경기 중 부상을 입고 쓰러진 강백호를 선수 보호 차원에서 교체하려 한다. 그러자 강백호가 일어나 감독에게 말한다. “영감님,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다시 일어나 경기 출전을 강행한 강백호는 마지막 슛을 성공시키고 극적인 역전승을 이끈다. 최고의 명대사가 탄생하던 순간이다.
201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LA 다저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 2승1패로 앞서가던 다저스는 1차전 선발로 나와 124개의 공을 던진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를 단 3일의 휴식 뒤 4차전 선발로 내세우는 초강수를 던졌다. 당연히 제기된 혹사 논란을 잠재운 것은 커쇼 자신이었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1년을 던져왔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다.” 커쇼는 6이닝 1자책점으로 기대에 부응했고 다저스는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기록적인 장기계약을 앞두고 누구보다 몸을 사려야 할 선수지만 그에게는 향후 10년간의 돈방석보다 지금의 동료들과 함께하는 승리가 중요했다.
야구장에서의 커쇼는 물론 위대한 선수지만 야구장 밖에서의 커쇼는 존경스러운 인간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일찍부터 가난을 이해했던 소년은, 슈퍼스타가 된 22살에 고등학교 때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한 뒤, 잠비아로 신혼여행을 가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그는 지금도 겨울이면 한 달가량 잠비아에 머물며 자선활동을 한다). 리그 탈삼진왕인 그는 탈삼진 1개마다 기부금을 적립하고, 시즌 중에도 LA와 댈러스 지역에서 자선활동을 펼친다. 2011년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을 받았으나, 정작 커쇼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상은 2012년에 받은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이다(이는 그해 가장 모범적인 선행을 펼친 메이저리거에게 주어진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커브를 던지는 이 25살의 청년은, 약물의 시대를 간신히 넘어온 메이저리그에 인간의 의지와 영혼을 불어넣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커쇼 영향일까. 11월에 귀국하는 류현진은 결손아동에 대한 자선행사부터 시작한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승부에 모든 것을 걸었던 강백호는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지만, 결국 탈진해 다음 경기에서 패배했고 북산은 전국대회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88년 이후 25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리던 다저스의 1988년생 에이스 커쇼는 누적된 피로로 인해 세인트루이스와의 챔피언십 6차전에서 난타를 당하며 무너졌고 다저스의 꿈도 다시 유예됐다.
결국 무너지며 더그아웃에서 상기된 얼굴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누구도 커쇼를 비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계산 없이 던져넣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꾸준히 야구장 안팎에서 세상과 호흡해온 슈퍼스타는 그의 실패마저 이해받았다. 만약 외계인이 침공해 지구의 운명을 걸고 한 번의 야구경기를 제안한다면, 지구의 선발투수는 커쇼다. 그의 커브와 영혼은 지구의 운명을 맡기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선발투수가 커쇼인 경기라면, 지구인들은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 사직아재·스포츠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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