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면 1980~90년대를 회고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보입니다. 지금이야 ‘회고 영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투박한 TV 화질 속에 박제돼 있지만,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눈으로 찍고 마음으로 기록한 기억은 뜨겁고 선명한 화질로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과거를 호출해오는 방법은 각자가 다르겠으나, 스포츠 키드에게는 그 시절의 스포츠 스타들과 그들이 펼친 명승부를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프로농구 원주 동부의 강동희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됐습니다’라는, ‘사실’로만 구성된 이 건조한 한 줄의 문장을 쓰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영리하고 재기 넘치던, 우리의 소년기를 매혹시켰던 전설의 포인트가드에게, 20년이 지난 오늘 저런 참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감독의 승부조작이라는 범죄였기에, 그 범죄자가 강동희라는 사실이었기에, 아무래도 충격이 큰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강동희는 우리 세대의 중요한 추억 중 하나였고, 그가 허재에게 찔러주던 천재적인 패스는 우리 소년기의 판타지였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한국의 농구 역사는 허재-강동희-김유택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허동택 트리오’에 대한 기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앙대와 기아자동차를 거치는 동안 이들이 일궈낸 우승 기록은 한국의 모든 종목, 모든 리그를 통틀어도 가장 압도적인 승리의 역사였습니다. 20년 전 소년들은 ‘허동택’에게 전율했고, 교복의 완성은 농구화였으며, 학교 운동장에 있는 농구 골대 1개에선 5~6개 팀이 동시에 농구공을 튀기며 골대로 날아오르면서 ‘허동택’을 흉내 내기에 바빴습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소년들도, ‘허동택’도 중년의 어른이 돼가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의 소년 시절과 허동택의 선수 시절에는 알 수 없었던, 어른의 욕망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됐고, 누군가들은 그 앞에서 하나둘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중에서도 강동희의 승부조작은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치명적인 범죄였습니다.
“남자가 살면서 한두 번의 송사를 겪지 않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얼마 전 고등학교 때 같이 농구공을 튀기던 친구와 술을 마시며 나눈 얘기입니다. 평범한 월급쟁이인 우리도,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였던 그들도, 이제는 세상의 유혹 앞에 자신의 인생을 평가받는 것에 직면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중년에도 소년 시절의 꿈을 꾸고 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우리 소년 시절의 꿈이 훼손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좋았던 추억을 지키는 일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승부는 조작해도, 우리의 추억은 조작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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