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당신들의 마운드

[김준의 벤치워머]
등록 2012-03-17 11:19 수정 2020-05-03 04:26

다이아몬드형의 잔디구장 한가운데에 약 30cm 높이로 쌓아놓은 흙더미가 있습니다. 작은 흙더미지만 3만 명의 시선이 꽂히고, 모든 플레이가 시작되는 곳이며 등 뒤에 당신을 지키려는 수비수들이 포진한 곳입니다. 그 위에서 전설이 된 선수가 있고, 그곳에 서기 위해 누더기가 된 어깨를 감추고 서 있는 선수도 있으며, 팀의 우승을 지키기 위해 발목으로 새어나오는 피를 숨긴 에이스가 꼿꼿이 서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승을 하면 선수들이 달려나와 모이는 곳이고, 라이벌 국가를 꺾은 선수들이 자국의 국기를 꽂으며 세리머니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화투판으로 만들어버린 그 흙더미. 야구장의 심장. 그곳을 사람들은 ‘마운드’라고 부릅니다.
당신들은 어리지만 운 좋게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당신의 팬들은 당신들을 향후 10년을 책임질 팀의 미래라 불렀습니다. 1회부터 터져나온 포볼에도, 아직 유망주라 제구력이 흔들려서,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고 응원의 함성을 질러주었습니다. 그것이 화투판이었는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당신들이 야구가 아니라 도박 유망주였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외진 산골에 있는 각 팀의 2군 연습장. 지금도 그곳에서는 당신들의 동료가 빵과 라면으로 배를 채우며 당신들이 마운드에서 공 몇 개로 장난치며 얻은 돈을 연봉으로 받으며, 언젠가 그 마운드에 서기 위해 청춘을 바치고 있습니다. 승패도 돈도 필요 없고 그저 은퇴하기 전에 1군 마운드 위에 서서 공 한 번 던져보는 게 소원인 당신의 이름 없는 동료들. 당신이 화투판으로 이용한 마운드는, 2군에 있는 당신의 동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서보고 싶었던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당신이 일부러 던진 그 볼 하나는 어제 방출당한 동료가 거기서 죽을 힘으로 딱 한 번만 던져보고 싶었던 필생의 꿈이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모함과 음모가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그곳만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땀과 땀이 맞붙는 가장 정직한 인생의 현장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대, 퇴근 뒤에 찾는 야구장에서 사람들은 순진해지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을, 흘러간 스타를, 떠오르는 영건을,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를 상상하며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도박꾼에게 사인을 받은 꼴이 되었고, 어른들은 도박꾼에게 파이팅을 외쳐준 꼴이 되었습니다. 야구가 알고 싶어 기록지 작성법을 배운 여성들은 도박꾼의 패를 기록한 꼴이 되었고, 팬들은 이미 짜인 각본에 열광한 원숭이가 돼버렸습니다. 당신들이 모욕한 건 이 모든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 위에서 직구를 던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들의 그 ‘인간적인’ 실수를 이해합니다. 당신들에게 어울리는 더 좋은 일자리가 있을 겁니다. 안녕, 마운드의 타짜들.

사직아재 칼럼니스트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