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을 향한 출정식에서 기분 좋은 승전가를 불렀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2006년 6월24일 새벽 5시, 눈앞이 가물거렸다. 이 시간쯤 되면 형광등 불빛은 사선으로 기울어지고 이상하게 너덜거린다. 졸음을 쫓기 위해 나는 디자인실에 홀로 남은 장광석 실장을 지분거렸다. 귀찮아, 내려가. 그가 고개를 저을 때 덥수룩한 반곱슬머리가 마른 얼굴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동쪽 하늘의 어둠 뒤에서 벌써 여명이 꿈틀거렸다. 담배 연기가 그 희미한 빛의 구덩이 속으로 날아갔다.
자리로 돌아가자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 패배를 알리는 기사가 출고돼 있었다. 18시간째 근무 중인 길윤형 기자의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렸다. 나는 그의 기사에 ‘아시아가 울었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목석 같은 디자인 실장은 커다란 고딕 제목 뒤에 고개 숙인 선수들의 사진을 배치했다. 땀에 전 유니폼이 선수들의 복근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아침이 다가왔다.
2002년 6월22일 한-일 월드컵 8강전, 한국이 스페인을 이긴 뒤 마감을 해야 할 필자들이 일제히 연락을 끊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그들은 맥주와 승리감에 취해 컴퓨터를 켰고, 나도 숙취를 달래며 30분마다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편집이란 기다림이고, 기다림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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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이 오면 어떡하지?”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회사 앞 이레분식에서 콩나물 대가리를 씹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툴툴거렸다. 남아공 월드컵이 오면 서른 아홉이다. 등 뒤에 사십대가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마른 수건에서 물을 쥐어짜듯 간신히 나온 기획과, 그 기획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기사들을 더 초췌해진 정신력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기시감이 징그러웠다.
에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의 입구에 다다른다. 지옥의 문 꼭대기에 검은색 글씨가 적혀 있다.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을 지옥답게 만드는 것은 그 영원성이다. 형벌은 무한대로 반복될 때 진정한 형벌이 된다. 삶이 끝없는 반복이고 더 이상 새로운 내일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 인생은 지옥의 제1원에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일과 일상에 있는 힘껏 의미를 부여하고 삶이 나아진다고 믿는다. 우리는 반복과 싸운다.
2010년 5월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또 월드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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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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