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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투표 1위? 이제는 좀 무안하죠”

농구판의 ‘영원한 오빠’ 이상민 선수… “힘은 예전 같지 않지만 꼭 한 번 더 우승하고 싶어”
등록 2009-05-21 16:46 수정 2020-05-03 04:25

“농구선수 중엔 이상민이 여러 명인가봐?”
5월14일 저녁 스포츠뉴스를 보던 박승화 사진팀장의 부인이 이렇게 물었단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렸던 농구선수 이상민의 재계약 소식이 뉴스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쟤가 걔야, 옛날 그 이상민!” 박 팀장의 답에 부인은 ‘정말로’라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겐 이상민이 아니라 ‘이상민들’로 오해될 만큼 그는 정말로 오래했다. 이날 그는 서울 삼성 썬더스 구단과 연봉 2억원에 2년 재계약을 맺었다. 그러니까 1972년 11월11일생, 11번 유니폼을 입고 뛰는 이상민은 마흔까진 코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상민 선수.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상민 선수.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15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뭘까?”

지난 4월 15주년 창간 특집을 준비하던 임지선 기자가 물었다. 갑자기 올해 벌어진 프로농구 인기투표가 떠올랐다. “야, 이상민 있잖아. 15년째 인기투표 1위야.” 강산이 변해도 오빠는 변하지 않는다. ‘영원한 오빠’는 올해도 스포츠 토토가 주최한 한국농구 대상에서 인기투표 1위에 베스트5로 뽑혔다. 이렇게 오빠의 실력도 변하지 않았다. 2008~2009 한국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예상을 뒤엎고 삼성을 결승에 올려놓더니, 아쉽게 챔피언 반지를 놓치긴 했지만 전주 KCC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여전히 승부를 좌우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언제나 이상민 선수가 뛰는 팀의 라이벌 팀의 팬이었던 기자도 이제는 이상민 선수가 제발, 오래, 무사히, 잘 뛰어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전희철이 코트를 떠나고, 문경은도 예전 같지 않고, 우지원과 김병철의 소식은 듣기 어려운 시대에 이상민은 90년대 황금세대의 마지막 상징이자 최후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니까 저물어가는 시대의 끝을 잡고, 30대 중·후반의 오빠들은 그가 한 해라도 더 뛰기를 바란다. 올해도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이상민 선수를 삼성과의 재계약 발표가 나오기 이틀 전에 만났다. 시즌 내내 괴롭혔던 허리 부상에 챔프전에서 무릎 부상까지 당했던 오빠의 건강부터 챙겼어야 옳으나 아이들 얘기부터 물었다.

- 딸이 10살, 아들이 8살이던가요?

= 네. 딸은 달리기를 해도 꼴찌에서 맴도는데, 아들놈은 키도 크고 운동을 좋아해요. 얼마 전엔 초등학교 농구 중계를 보면서 자기는 왜 안 시켜주냐 조르더라고요. 전엔 농구교실을 다니기도 했어요.

- 부상은 괜찮아요?

= 잘 때는 통증이 조금 있어요. 나이가 드니까 회복이 더뎌요. 전에는 발목이 돌아가도 툭툭 털면 괜찮았거든요. 서른 넘으니까 8주 진단이 나오면 8주를 꽉 채워요.

- 선수들은 나이 들면서 몸의 변화를 심하게 느끼겠어요.

= 금방 느끼죠. 점프를 뛰어도 탁 오르면… 아, 예전의 그 느낌이 아니에요. 30대 중반이 되니까 오히려 몸 좋은 날 조심하자 그래요. 몸 좋은 날 뭘 하려고 하다가 부상을 당해요. 2007~2008 시즌에 햄스트링(허벅지 뒷부분) 부상도 컨디션이 좋아서 무리하다 그런 거예요. 요즘엔 10분을 뛰어도 그냥 열심히 하던 걸 하자, 그래요.

- 그래도 부상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 잔부상은 있지만 큰 부상은 없는 편이죠. 원인은 잘 모르겠는데, 다만 몸무게가 대학교 3학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크게 다치거든요.

- 여전히 슛동작이 간결하고 패스가 날카로워요.

= (손목 스냅을 꺾으며) 예전엔 슛할 때 손목만 움직였어요. (두 팔을 뻗으며) 이제는 이렇게 안 뻗으면 안 나가요. (웃으며) 재작년부터 그러더라고요.

- 올해엔 부상에 심리적 압박감도 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원래 예민한 편이라 불면증이 있어요. 예전에 상무에서 이틀 동안 꼬박 눈 뜨고 팡파르(기상 나팔) 울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요. 올핸 더 심해져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수면제도 먹었죠.

- 그렇게 못 자고도 어떻게 오랫동안 잘했죠?

= 이규섭 선수가 그래요. 자기는 세상에서 서장훈 선수가 잠을 제일 안 자는 줄 알았는데, 형은 더 안 잔다고. 대학 땐 운동이 너무 많아서 잘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나이 드니까 시간이 아까워요. 남이 잘 때 나는 딴거 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올해도 인기투표 1위예요.

= 이제는 무안하죠.

- 서른여덟에 아이 둘 딸린 유부남이 왜 아직도 인기가 최고죠?
이상민 선수.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상민 선수.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저도 미스터리예요.

- 이상민보다 잘생긴 선수는 있는데 더 인기 있는 선수는 없다, 참 이상해요.

= 더구나 저는 팬들한테 까칠하게 대하거든요. 팬들이 쫓아오면, 나도 사생활 좀 하자, 그러거든요. 방송에도 잘 안 나가요. 그런데 팬들은 그게 대세래요. 그래서 더 신비롭고 좋다고. 요새는 아줌마들이 쫓아다녀요. 홍삼 진액, 산삼 추출액, 녹용, 선물도 이런 거 들어와요. 옛날 여고생 팬들이 어느새 딸 데리고 와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이상민의 팬카페인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회원 수는 1만9천여 명. 올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에 이상민 선수의 유니폼을 한 명은 입고, 한 명은 들고 우는 여성팬 두 명의 모습이 방송 화면에 한동안 비쳤다. 이상민 선수가 전주 KCC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응원팀을 바꾼 팬들도 많다. 이상민의 별명인 ‘이스타’를 향한 팬심은 강산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농구선수 이상민을 여자들은 좋아하고 남자들은 존경한다.

- 또래 선수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나이를 느껴요. 30대 중·후반의 아저씨들은 여전히 현역인 이상민 선수에게서 위안을 얻어요.

= 주변에서 그래요, 네가 선수니까 대접받지 코치면 이런 대접 못 받는다고. 지난 시즌에 계약이 마지막이었으니까, 시즌이 끝나도 은퇴하지 말고 계속하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시즌 내내 허리는 아프지, 마음은 20대인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저로선 고민이 많았죠.

- 챔프전 상대가 하필 친정팀 KCC였어요.

= 솔직히 안 올라오기를 바랐어요. 지는 것도 싫고, 경기하기도 부담스럽고. 평소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징크스도 만들지 않는 편인데, 챔프전 7차전을 앞두곤 정말 긴장했어요. KCC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욕심도 생겼죠. 플레이오프에 들어가서 출장 시간이 느니까 체력이 점점 좋아지는 거예요. 후배들한테 그랬어요. 야, 7차전 가면 정말 체력 좋아지겠다. 3~4차전 지나면서 체력이 올라오는데 또 부상을 당하더라고요.

- FA 재계약을 앞두고 10년을 뛰었던 전주 KCC 복귀 얘기도 있었어요.

= 팬들까지 버렸는데요. 챔프전 2차전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유를 받았어요. KCC가 우승도 했고, 제가 가면 다른 애들도 버려야 하는데… 친정팀 가서 은퇴한단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 정말 나이가 들면 농구가 다르게 보여요?

= 여유는 좀 생겨요. 반면에 생각도 많아져요. 원래는 모 아니면 도, 이렇게 생각하고 모험도 했는데 이제는 못 그러죠. 이제는 체력이 떨어져서 턴오버(실수)하면 다른 걸로 만회도 못하니까 모험은 되도록 안 하죠. (웃음)

그의 말에선 선배로서의 책임감도 묻어났다. 프로농구연맹이 유소년 농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말도 했고, 은퇴하기 전에 선수노조를 만들란 얘기도 듣는다고 했다. 물론 “요새 애들”로 시작하는 선배다운 불만도 없지는 않았다. 특히 국가대표로 뽑히기를 꺼리는 후배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이제는 후배들 눈치가 보여요.” 그래도 추억이 많은 사나이 이상민이 돌아본 선수생활 이야기는 이어졌다.

- 팬들은 갈수록 한국 남자농구가 국제대회에서 못한다고 불만이 많아요.

= 솔직히 세계대회에 가면 입장식 하기도 창피했어요. 너무 키가 작아서 축구선수예요, 축구선수. 장훈이도 외국 가면 가드 키예요. 하승진 같은 선수도 나오고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높이가 모자라요.

- 남들은 모르는 인생의 경기를 꼽는다면요.

= 90년대 후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오스트레일리아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팀이었거든요. 오스트레일리아 감독이 수많은 게임을 했지만 저렇게 슛이 잘 들어가는 팀은 처음 봤다고 했어요. 슛이 들어가니까 리바운드를 못 잡죠. 게임이 되는 거죠. 20점을 지다가 20점을 따라갔는데 마지막 한 골을 못 뒤집었어요. 지금도 아쉬워요.

- 포인트 가드에겐 패스를 받아주는 선수가 있어야죠. 서장훈, 맥도웰, 레더, 같이 한 선수가 많은데 누가 영혼의 짝이죠?

= 찰스 민렌드가 최고였어요. 척하면 척이었죠. 이렇게 해봐라 하면 정말 그렇게 똑같이 했어요. 약사 출신인 민렌드는 말수도 적고 학구파였죠.

- 올 시즌의 짜릿한 순간은요?

= 허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사실 제가 주희정 선수처럼 열심히 운동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트레이너들이 그래요. 부상 때문이지만, 그렇게 운동 안 하고 들어가서 어떻게 잘 뛰냐고. 후배 조상현 선수도 그래요. 형, 어떻게 벤치에 앉아 있다 들어가서 바로 슛 때려요? 자기는 10분은 왔다 갔다 해야 몸이 풀려서 슛을 던진대요. 저는 그러죠. 야, 들어가면 던지는 거지 무슨 상관이야, 안 들어가면 나오면 되지.

- 어릴 때부터 그렇게 무심한 편이었어요?

= 아뇨. 초·중·고 때 지는 팀에만 있어서 그때는 정말로 이기고 싶었죠. 나이가 들면서 바뀌었어요. 문경은 형이 중학교 때 저를 처음 봤는데, 쟤가 과연 농구공을 튀길 수는 있을까, 그랬대요. 당시에 중2인 나는 150cm, 중3인 형은 벌써 180cm였으니까요.

- 지금 중요한 것은 우승 반지인가요, 높은 연봉인가요, 미래에 대한 보장인가요?

= 미래도 중요하죠. 그래도 꼭 한 번은 더 우승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뛴 11시즌 중에 7번 챔피언 결정전에 갔거든요. 우승은 세 번 했어요. 올해는 정말 아쉬웠죠. 부상도 있었고 심판 판정도 애매했고. 내년에 혼혈 귀화 선수 이승준(에릭 산드린)이 삼성에 오니까 우승할 좋은 기회라 욕심도 생겨요. 사실 올해는 연습을 네댓 번밖에 못했어요, 허리가 아파서. 후배들한테 미안했죠. 챔프전 3~4차전엔 허리가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러다 또 무릎을 다쳤죠.

- 이제는 선수생활 이후를 생각할 때가 됐죠?

= 이번 재계약에도 지도자 생활에 대한 보장은 없어요. 성격이 누구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는 편이라 코치 할 때 과연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돼요. 그래도 지도자는 새로운 도전이죠. 일단은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나이 들었다고 감독으로 바로 가고 싶진 않아요. 코치를 하다가 감독이 되면 좋겠어요. 하다가 안 맞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거고요.

팬들은 오래 남기를 바라지만 그는 “솔직히 하루하루가 다르게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만 뛰어도 힘든데 오는 6월부터 다시 훈련을 시작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쉽지는 않단다. 그리고 덧붙인 솔직한 이야기. “지난해에 훈련을 제대로 못했는데 올해도 그러면 안 돼요. 나중에 코치가 돼서 훈련을 시키면 후배들이 저는 선수 때 놀았으면서 자기들은 운동 시킨다고 뭐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런 얘기 듣기 싫어서라도 올해는 정말로 열심히 해야죠.” 이렇게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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