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1992년은 ‘홈런왕 장종훈’이다. 내 고향 부산은 롯데 광신도들로 유명한 곳. 그 속에서 ‘빙그레’ 장종훈을 좋아했던 나는 ‘섬’이었고, 그럴수록 그를 향한 ‘팬심’은 깊어만 갔다.
그해 6월 어느 날. 드디어 사직구장에서 빙그레의 원정경기가 열리게 됐다. 시내 대형 팬시점에서 나는 가장 예쁜 수첩을 골랐고, 초록색·보라색·꽃분홍색 수성펜을 동원해 일기인지 편지인지 알 수 없는 글과 ‘그럴듯한’ 시와 노래를 빼곡히 적어넣었다. “아저씨 보러 가려면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한다”는 얘기부터 “운동선수에겐 몸이 가장 큰 재산이니 부디 몸조심하시라”는 당부까지 별의별 얘기로 3cm가 넘는 두께의 수첩이 다 채워졌다. 선물(뭘 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과 함께 곱게 포장도 했다. 준비 완료.
경기 하루 전날 저녁.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거기 빙그레 숙소죠?” “맞습니다.” 운 좋게도 두 번 만에 찾아냈다. “장종훈 선수 방 연결해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게 웬일인가! 내가 누군지, 왜 전화했는지 따위를 묻는 프런트 직원에게 나는 아마도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장종훈 선수 좀 바꿔주세요.” “네, 제가 장종훈입니다.” 숨이 멎는 듯했다. 벅찬 심장은 말문을 막았다. “어…, 아저씨…. 아저씨….” “네, 말씀하세요.” “어…, 저…, 음…, 아저씨, 내일 경기 잘하세요. 저도 보러 가요.” “하하하, 고마워요. 학생도 공부 열심히 해요.” 그가 따뜻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다음날 사직구장. 장종훈이 보이거나 빙그레가 안타를 칠 때마다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소리를 지르던 내게 병 따위를 던지려던 ‘부산 갈매기’들은, 어린 학생인 걸 알고선 슬며시 팔을 내려놓는 대신 “학생, 거 좀 조용히 봐라!”며 역정을 냈다. 경기 초반부터 부슬대던 비는 장대비로 바뀌었고, 경기는 끝내 빙그레가 4 대 2로 앞서는 가운데 7회 강우 콜드게임으로 막을 내렸다. 관중석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고, 선수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떠났다. 어, 아저씨한테 수첩이랑 선물 줘야 하는데? “아저씨! 장종훈 아저씨~!” 펜스에 달라붙어 애타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 소리가 들릴 리 없을 터. 있는 대로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와의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어쩌다 보니, 그 뒤로 그가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그의 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1993년 이후 그의 성적이 부진해진 뒤론 야구에 흥미를 잃어버린 탓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잊고 있던 ‘팬심’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래, 올해는 17년 만에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유치한 수첩도 건네줄 선물도 없지만, 나는야 엄연한 ‘장종훈 팬’이 아닌가. ‘한화’ 타격코치님이 되신 그가 후배들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부푼 기대를 안고 나는 이제 야구장으로 달려가야겠다. 장종훈 파이팅!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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