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울 만큼 길었던 겨울의 꼬리가 잘리고, 갑자기 공기며 햇빛의 냄새가 달라졌다. 가슴이 두근두근, 분홍빛 가득한 도쿄의 봄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벚꽃놀이 가자”고 한다.
일본의 벚꽃놀이 문화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하나미’(花見)라 불리는 일본의 벚꽃놀이는 주로 벚꽃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주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 친한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매년 한두 번 정도 하나미에 참석한다. 크고 작은 공원이 많은 도쿄이지만, 하나미 시즌이 되면 벚꽃나무 근처에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당일에는 자리잡기 당번(대부분 해당 그룹의 젊은 남자)이 새벽부터 자리 확보 전쟁에 나선다.
직장에서의 벚꽃놀이는 특히 중요한 연중행사로, 신입사원의 역량을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4월에 입사한 새내기들에게 ‘벚꽃놀이 준비’는 회사에서 처음 맡게 되는 일인 셈. 그 첫 임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벚꽃이 잘 보이는 자리 확보에서 음식과 음료 준비까지,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은 아직 싸늘한 날씨에도 비지땀을 흘린다. 벚꽃놀이를 준비하는 신입사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신입사원 3명이 몇 주 동안 벚꽃놀이를 기획하고 100여 명의 사원들이 앉을 자리를 확보하는 모습이란! 벚꽃놀이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서야 그들은 벚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얼마 전 벚꽃이 활짝 핀 공원에서 야외 촬영이 있었다. 일을 마친 뒤 ‘나만의 하나미’를 준비했다. 우선 공원 근처의 화과자점에 갔다. 그곳에도 벚꽃을 재료로 한 상품들이 ‘벚꽃놀이’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분홍빛 살색이 아기 엉덩이 같은 찹쌀떡, 벚꽃잎을 넣어 속이 비치도록 만든 젤리를 구경하니 마음이 들뜬다. 행복한 고민 끝에 몇 가지를 골라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벚꽃이 잘 보이는 벤치에서 꾸러미를 펼쳤다. 동글동글 귀여운 한입 크기의 분홍색 경단에는 절인 벚꽃잎이 앙증맞게 올려져 있다. 짭짜름한 벚꽃절임과 찰진 경단의 달콤한 맛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나는 이 ‘봄의 맛’을 오래 느끼고 싶어, 조그만 경단을 야금야금 베어먹었다. 힘들었던 촬영도, 잠시 뒤면 타야 하는 붐비는 지하철도 모두 까마득한 먼일로 느껴졌다. 연분홍빛 꽃잎 하나가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하혜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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