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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역도 윤진희의 ‘어머니’ 고 김동희 코치, 핸드볼 오성옥의 ‘남편’ 임영철 감독, 야구 김현수의 ‘보모’ 김경문 감독

▣ 김동환 기자 hwany@sportsworldi.com

베이징올림픽 남자 50m 권총 결승전이 열린 지난 8월12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교 체육관. 아홉 번째 격발까지 2위와 1.9점 차로 여유 있게 1위를 달리던 한국의 진종오(29)는 마지막 열 번째 격발에서 8.2점(10.9점 만점)을 쏘는 실수를 범한 뒤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간절한 시선은 사대 뒤 관중석에 앉아 있던 김선일(52) 감독에게 꽂혔다. 나머지 선수들의 격발이 모두 끝난 뒤 김 감독은 빙긋 웃으며 오른손 검지를 세웠다. 진종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나?’라고 되묻는 시늉을 했다. 김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종오는 그제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안도와 기쁨의 큰 한숨을 내쉬었다.

코치의 유골을 경기장 한쪽에 갖다놓고

사대에 서 있는 한, 진종오에게 김 감독은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다. 0.1mm의 오차와 싸우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그에게 김 감독은 바깥 세상의 모든 잡음과 혼란을 차단해주는 존재다. 뒤에 김 감독이 서 있지 않으면 총을 마음 놓고 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만일 김선일 감독을 못 만났더라면?’ 진종오에게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물음이다. 목에 금메달이 걸려 있는 지금의 모습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상대에는 혼자 올랐지만 금메달은 김 감독과 함께 만든 것이라고 진종오는 감히 말한다.

영웅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 법. 그들의 뒤에는 항상 애정과 가르침을 아끼지 않은 스승들이 있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박지성에게 거스 히딩크가 있었고, 수영 황태자 박태환에게는 노민상 감독이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탄생한 박태환, 진종오, 최민호 등 스포츠 영웅들의 뒤에도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부모로, 때로는 연인으로 함께한 은인들이 있었다.

진종오에게 김선일 감독이 ‘분신’과도 같았다면, 여자 역도 53kg급 은메달리스트 윤진희(22)에게 고 김동희 코치는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재혼해 할머니 밑에서 자란 윤진희는 원주 치악여고 시절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됐다. 마침 그때 태릉선수촌에서 김 코치를 만났고 윤진희를 딱하게 여긴 김 코치는 사비를 털어가며 윤진희에게 보약을 사 먹이는 등 피붙이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이후 윤진희는 14살 위의 김 코치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고 김 코치도 “우리 딸”이라고 보듬어주며 가족의 정을 쌓았다.

그런데 그런 김 코치마저 올림픽을 4개월 앞둔 지난 4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비탄에 젖은 윤진희는 김 코치 영전에 꼭 메달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섰다. 오승우 여자 역도 감독은 윤진희의 마음을 헤아려 김 코치의 유골이 담긴 종이백과 유품을 경기장 한쪽에 갖다놨다.

그리고 윤진희는 왼쪽 무릎 부상 중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인상 94kg, 용상 119kg 등 합계 213kg을 들어올려 은메달을 차지했다. 윤진희는 시상식 뒤 “우리 엄마 같던 김동희 코치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임 감독만 부르면 꾸역꾸역 대표팀으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다시 쓰고 있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맏언니 오성옥(36)에게 임영철(48) 감독은 또 한 명의 ‘남편’과도 같다. 오성옥이 22살이던 1994년 대학생 대표팀에서 선수와 코치로 처음 만나 징그럽고도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14년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이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단다.

오성옥이 세 번이나 은퇴를 하고도 매번 대표팀의 부름에 응한 것도 임 감독 때문이다. 주변에서 “왜 나이가 들어서도 임 감독이 부르면 꾸역꾸역 대표팀에 들어가냐”고 물어볼 때마다 자기도 피식 웃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오성옥은 임 감독과 함께하면 반드시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14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면 그렇듯 말이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면서 영화에서처럼 서로 으르렁대기도 한다. 그러나 코트에만 서면 임 감독은 아직도 호랑이 선생님이고 오성옥은 아직도 고된 훈련에 투정 부리는 앳된 선수다.

본선 리그 7전 전승의 돌풍을 일으킨 야구 대표팀의 막내 김현수(20)에게 김경문 감독은 ‘보모’다. 걸음걸이도 서툴던 그가 김 감독을 만나 건장한 청년으로 장성했다. 올해 프로야구 타율과 최다 안타 1위를 달리고 있는 김현수는 야구 대표팀에서도 본선리그 7경기 동안 팀 내 두 번째로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간판 타자로 우뚝 섰다.

김현수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뽑아주는 프로팀이 없어 신고선수로 겨우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된 무명 선수였다. 2년 전까지도 신체조건이 좋은 그저 그런 2군 선수였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일본 전지훈련에서 소속팀 두산의 감독이자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인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신일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던 김현수의 타격 소질을 발견한 김 감독은 “저 녀석은 무조건 된다”며 전격적으로 선수 만들기에 들어갔다. 김 감독은 그해 4월 프로야구 개막 엔트리에 과감하게 김현수를 포함시켰고 4월 중순부터 선발 라인업에 넣기 시작했다. 초반 팀 성적 부진 속에 김현수가 잘 적응을 못하자 팬들이 ‘선수 편애’라며 강력히 비난했음에도 김 감독은 소신을 꺾지 않았다. 김현수는 잠시 2군에 다녀온 뒤 6월부터 놀라운 타격 자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저 그런 2군 선수가 ‘제2의 이승엽’으로

김현수는 2할7푼9리의 타율로 당당히 신인왕 후보에도 오르는 정상급 선수가 됐지만, 김 감독은 이미 더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장차 국가 대표팀 주축 타자로 키울 것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11월 올림픽 예선에 나갈 대표팀을 꾸릴 때 연습 상대인 상비군에 김현수를 포함시켰다. ‘큰물’을 맛본 김현수는 올 시즌 개막 뒤 한 달이 넘도록 4할대의 타율을 유지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고, 결국 올림픽 본선에 나갈 대표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8월1일 이승엽, 김동주, 류현진 등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24명의 대표 선수들이 소집됐을 때, 김 감독은 백업 멤버 정도로 보였던 김현수를 최고의 비밀병기로 은밀히 준비시켰다. 특정 공을 노려 치지 않고 어떤 공이든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면 쳐낼 줄 아는 소질이 있는 만큼, 국제 무대에서 처음 보는 투수들의 공도 잘 칠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팀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김현수를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무기로 써먹기로 구상한 것이다.

김 감독의 믿음대로 김현수는 8월13일 미국과의 첫 경기에서 6-7로 역전당한 9회말 무사 2루 상황에 대타로 나서 주자를 3루로 진루시키는 2루 땅볼 타구로 8-7 대역전승의 발판을 놨다. 8월16일 숙적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2-2 동점이던 9회초 2사 1·2루에 역시 대타로 나가 짜릿한 1타점 결승타를 날렸다. 일본전의 경우 마운드에 특급 왼손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가 있었음에도 김 감독은 좌투수에게 좌타자가 약한 통설까지 무시해가며 좌타자 김현수를 자신 있게 내세웠다. 만일 김현수가 김경문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2의 이승엽’ 김현수도, 올림픽 6전승의 대표팀 신화도 이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메달을 따낸 선수들은 “그동안 지도해주신 감독·코치님께 감사드린다”는 ‘틀에 박힌’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진솔한 소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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