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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류에 설친 경찰, 어패류에 어폐 있는 국방부

등록 2010-11-10 15:04 수정 2020-05-03 04:26
G(쥐).

뱅크시는(그의 작품은) 전세계에 있다.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말하자면 낙서화가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기존 전시 관행을 비틀며 명화 옆에 자신의 그림들을 ‘몰래’ 전시했다. 대도시 벽에는 낙서작품을 남겼다. 게릴라처럼 그리고 사라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언제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었다. 뱅크시라는 이름도 가명이다. 37살 고등학교 중퇴 학력의 영국인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이다. 반전·평화 등의 메시지를 담고 대도시 곳곳에 새겨진 그의 낙서들은 초기에는 지워지기 바빴으나 이제는 보호 대상이다. 그래피티를 불법으로 간주했던 런던시청은 이제 뱅크시 관광지도를 만들 정도다. 동네 주민들은 그의 그래피티를 보존하기 위해 바리케이드까지 세운다. 팔레스타인의 분리 장벽, 미국 뉴욕 그라운드제로 등 세계의 벽에 그의 작품은 ‘낙서’로 건재하다. 지금도 그의 작업은 계속된다.

박씨가 그려넣은 쥐 그림

박씨가 그려넣은 쥐 그림

뱅크시는 (여전히 익명으로) 말한다. “나는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는 자유·평화·정의 같은 것들을 적어도 익명으로 부르짖을 정도의 배짱은 가지고 있다.”

뱅크시는 한국에 없다.

지난 10월31일 서울의 한복판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그림이 덧칠됐다. B씨로 알려진 한 대학 강사의 그림에 시민들은 “한국에도 뱅크시가 있다”며 뜨겁다. 차가운 건 경찰·검찰이다. 한쪽에서는 덧칠로 그렸다는 쥐 그림을 보고 시민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한쪽에서는 ‘국격 훼손’으로 공공의 안전까지 얘기하며 분을 삭이지 못한다. 서슬 퍼런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나선다.

B씨는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근처에 붙은 포스터에 한 장에 한 마리씩 열세 마리의 쥐를 그렸다. 경찰에 붙잡혔고,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G가 쥐와 같아서 쥐를 그린 것뿐이다. 최근 정부가 G20에 매몰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이 정도의 유머도 용납되지 않느냐.”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 앞에서 “웃자”고 말하는 B씨.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B씨가 G를 보고 ‘지’가 아닌 ‘쥐’를 떠올린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오렌지를 보고 난데없이 (어륀)‘쥐’를 주절거리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님이 말씀하지 않았던가. “G는 ‘지’가 아닌 ‘쥐’로 발음해야 한다.”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조개.

천안함 침몰의 결정적 증거라며 국방부가 내세운 ‘1번’ 어뢰의 틈에서 조개가 발견됐다. 조개에는 하얀 침전물이 꽃처럼 피어오른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한 누리꾼이 근접 촬영한 사진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지난 11월3일 언론노조 등 언론 3단체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는 “조개의 침전물은 조개가 장시간 동안 어뢰 내부에 있었다는 증거”라며 “이 이뢰는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가 아니라는 것을 강력히 입증해준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날, 국방부 조사본부가 직접 나서서 조개를 떼어냈다. 침전물은 떨어져나갔다. 증거인멸 논란이 일었다. 국방부는 곧바로 “생물 조가비가 아니라 조개껍데기 조각이며 폭발 뒤 조개껍데기가 구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검증위는 “폭발에 의한 것이라면 흡착물이 조개를 감싸는 듯한 모양으로 됐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조개 끝 부분에 꽃이 피어나듯 돌출된 상태로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조개가 들어간 뒤 장시간 백색 물질이 침전됐음을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러시아 보고서는 정부가 제시한 1번 어뢰가 6개월 이상 바닷물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방부의 발빠른 대처에 조개는 다른 사실을 낳지 못했다. 논란은 계속된다. 지금까지 의혹 제기에 대처한 국방부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일단 우기고 침묵한다. 지난 11월3일 국방부는 최원일 전 함장 등 사건과 관련된 지휘관을 모두 형사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이 또한 증거를 대하는 태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46명이 숨지고 초계함이 침몰한 사건이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증거는 사라져간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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