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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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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모아 재창간을 막아주십시오

폐간사
등록 2013-09-11 06:02 수정 2020-05-02 19:27
이 폐간합니다.


제970호(7월15일 발행)부터 978호(9월9일 발행)까지 아홉 차례 만들었습니다. 창간호에서 은 밝혔습니다. 하늘 노동자들의 ‘성공적 착륙’을 목적으로 발행하며, 하늘 노동자들이 땅을 밟는 순간 자진 폐간한다고 썼습니다. 은 ‘폐간을 고대’하며 만드는 신문이었습니다.

지난 4월 말 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철탑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송전탑,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을 찾아 하늘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기록은 제960호(5월6일 발행) 표지이야기(‘고공생태보고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 농성장의 노동자는 말했습니다. 농성 며칠째가 될 때마다 찾아와 취재하고 사진 찍는 언론이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동물원의 동물 보듯 고공농성을 신기해하는 ‘언론의 시선’을 거둬달라고 했습니다. 왜 하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돌아봤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자문했습니다. 다음주 열린 회의에서 은 고민했습니다. ‘하늘에 오를 때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내려올 때까지는 함께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적당한 ‘그릇’을 논의했습니다. 그 주에 쌍용차 노동자들이 송전탑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릇의 시점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울산 현대차 희망버스 출발(7월20일)을 앞두고서야 스스로의 다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두 달을 채 못 만들었습니다. 현대차 철탑 노동자들이 내려왔고, 최근 재능교육 종탑 노동자들까지 착륙했습니다. 유성기업 굴다리 농성이 151일, 쌍용차 송전탑 농성은 171일, 현대차 철탑이 296일, 재능교육 종탑은 202일입니다. 각각의 숫자는 우리 사회의 위험수준을 암시합니다. 고공농성 50일과 100일에 더는 충격받지 않는 시대입니다.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만큼 ‘하늘조차 위험하지 않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늘을 오르는 삶이 보편화되는 미래의 어느 날, 하늘을 ‘최후의 벼랑’으로 의지해왔던 노동자들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이 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이제 은 자진 폐간합니다. 모처럼 하늘에 사람이 없습니다(저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는 하늘 노동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 없는 하늘이 화창하지만은 않습니다. 폐간의 전제 조건이 완성되지도 않았습니다. 성공적 착륙이기보다는 ‘땅에서도 하늘에 사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노동자가 하늘에 다시 매달릴지 알 수 없습니다.

창간사의 마지막 문장을 원용해 씁니다. 은 ‘하늘 노동자 없는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들의 응원을 바랍니다. 힘을 모아 의 재창간을 막아주십시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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