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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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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웃어야 한다, 쉽다, 웃어라”


제7회 인터뷰 특강 세 번째 강연자 방송인 김제동…
“경직된 모든 것을 타격하는 것이 웃음”
등록 2010-04-09 16:02 수정 2020-05-03 04:26

방송인 김제동씨의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몸살 기운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청중 앞에 서자 돌변했다. 강단을 뛰어다녔다. 지난 3월29일 서강대 곤자가컨벤션에서 열린 인터뷰 특강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김씨는 스스로를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분파”라고 소개했다. 그는 2시간30분 동안 “언어의 특권을 깨는 웃음의 힘”에 대해 말했다. “웃음은 경직된 모든 것에 대한 타격”이라고도 했다. 청중은 어느 강연 때보다 많이 웃었다. 그는 웃음 속에 각성을 담아내는 힘을 갖고 있었다.

방송인 김제동씨.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방송인 김제동씨.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뭔가 구린 사람은 사람들이 웃으면 겁난다

김제동(이하 김): 요즘 생각이 많다. 결론은 한 가지다. 웃자. 지금 4월인데, 봄이 오다 죽었나 싶을 정도로 봄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봄을 찾아야 한다. 방법은 하나다. 웃어야 한다. 웃음을 찾아보고 끝까지 웃어야 한다. 쉽다. 버스 안에서도 웃자. 좌우를 보고 “허허흥” 하고 웃어봐라. 굉장히 넓고 편하게 갈 수 있다. (청중 웃음) 이상하게도 먼저 웃는 사람을 겁내는 사회가 되었다. 누가 웃으면 같이 웃으면 되는데….

나는 현 시국을 논할 위치에 있지 않고 그럴 지식도 없다. 하지만 “이건 이상하다”고 말할 자격은 있다. 나는 말로 웃음을 주는 사람이다. (기침하더니) 죄송하지 않다. (청중 웃음) 이런 거다. 기침하고 나서 죄송하다고 하면 웃기지 않다. 죄송하지 않다고 해야 웃긴다.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 타격을 주는 것이 웃음이다. 경직된 사람은 웃을 수 없다. 뭔가 구린 사람은 사람들이 웃으면 겁난다. ‘왜 웃지? 나 보고 웃는 건가? 고소할까?’ 생각한다. (청중 웃음)

옛날 광대는 항상 힘있는 사람들을 타격해서 웃겼다. 양반탈을 쓰고 그들을 비판했다. 그 (조선) 사회에서 양반들이 남사당패를 관아에 고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웃음은 웃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 숨통이 트이니까. 경직된 사회는 숨통과 소통이 트이는 걸 두려워한다.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해 어려운 단어로 말한다. 그 언어를 강요하면서 “너희의 언어는 천박하다”고 제재한다. 언어에서부터 특권이 깨질 것을 두려워한다.

‘노찌롱’과 ‘쩌리짱’이 막말이라고 방송에서 퇴출됐다. 앞으로 이런 말은 자막에서도 못 쓴다. 물론 바르고 고운 말 쓰면 좋다. 국민 정서상 안 좋은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걸 왜 위에서 강요하나. 왜 우리를 계몽 대상으로만 보나. 그게 화가 난다. 우리도 스스로 판단하고 정화할 수 있다.

‘막장 드라마’를 규제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부터 문제가 있다. 막장이 무엇인가. 우리 아버지들이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목숨 걸고 석탄을 캐는 곳이다. 막장보다 더 숭고한 곳이 어디 있나. 차라리 “‘국회 드라마’를 규제하자”고 하면 공감하겠다.(청중 웃음)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좌우를 막론하고 상식의 문제다. 그런데 상식과 몰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자꾸 정치적 문제라고 (시비)한다. 방송에서 모든 욕설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정도는 좀 넘어가자는 거다. ‘빵꾸똥꾸’가 무슨 말인가. 똥꼬에 빵꾸가 있다는 이야기다. (청중 웃음) 지극히 자연스런 말이다. 똥꼬에 빵꾸가 안 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나? “야, 이 막힌 똥꾸야” 한다면 그게 막말 아닌가. (청중 웃음)

사람을 좋아해야 웃길 수 있어
지난 3월29일 저녁, 서강대 곤자가컨벤션에서 열린 인터뷰 특강 참석자들이 김제동씨의 강연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지난 3월29일 저녁, 서강대 곤자가컨벤션에서 열린 인터뷰 특강 참석자들이 김제동씨의 강연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나침반은 끊임없이 떨리기 때문에 남과 북을 계속해서 가리킬 수 있다. 상식이라 규정된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으면 웃음이 없다. 웃음이 없는 사회는 이미 끝난 사회다. 눈물이 없는 사회도 끝난 사회다. 많이 울어야 많이 웃을 수 있다. 슬퍼할 자유, 기뻐할 자유, 그리고 분노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었다. 비 오는 날 쓴 두 줄짜리 시가 있다. “비가 온다. 꽃아, 너 안 아프니?” 눈물이 났다. 그 마음을 잊어가는 내가 속상했다. 이것이다. 아이들처럼 어떤 분별도 없이 사람을 오롯이 보는 것, 이게 웃음의 출발점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불쌍히 여겨야 사람을 웃길 수 있다. 누군가를 웃기고 싶다는 것은 그를 사랑한다는 원초적 증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웃는다는 것은 그를 인정한다는 원초적 증거다. 이건 말 이전의 말이고, 행동 이전의 행동이다. (박수)

사회: 김제동씨가 공중파 프로그램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진행하고 있는 문화방송 이 곧 종영된다고 들었다.

김: 이나 모두 이나 처럼 국민적 프로그램으로 만들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1차적 책임은 나한테 있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전형적 식민사관이라고 신영복 선생님한테 들었다. (청중 웃음)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살았으니,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면서 살고 싶다. (박수)

4년 동안 매주 월요일 녹화를 했다. (방송 출연을 못하게 된 이후) 매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산에 갔다. 그런데 나 때문에 재보선에서 졌다고 어느 정치인이 방송토론에 나와서 말하더라. 내가 뭘 했나. 산에 갔다. 내가 등산을 했기 때문에 재보선에서 졌다는 건가. (청중 웃음)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기분파다. 어떤 정부건 코미디 소재를 제공하면 그것으로 웃기는 사람이다.

청중1: 대학 졸업 전에 이것만은 꼭 해봐라 하고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

김: 졸업부터 해야지. (청중 웃음) 나는 전문대를 11년 다녔다. 어머니는 “너 의대 다니냐” 하셨다. (청중 웃음) 그런데 강의실보다 마이크 들고 다니면서 배운 게 더 많다. 학점도 중요하지만 다른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청중2: ‘루저’ 발언에 대해 왜 남자들이 분노했을까.

김: 그 여대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180cm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나. 요즘 내 무릎이 아픈 게 관절염이지 성장통은 아니지 않겠나. (청중 웃음) 그런데 (‘루저’ 발언 여대생을) 고소한 사람들이 진짜 루저다. 키 작은 남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들어가는 모습 상상해봤나. (청중 웃음) 왜 스스로 그런 일을 만드는가. 힘있는 대상을 상대로 하는 것은 풍자이고 조롱이지만,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하는 것은 억압과 탄압이다. 그건 구분돼야 한다.

그런 좌파는 못 받아들이겠다

청중4: “김제동은 좌파”라고 하면 기분이 나쁜가. 어떤 사람을 좌파라고 생각하나.

김: 좌파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 서거에 조의를 표하는 것이 좌파라면 나는 좌파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약자가 될 수 있으니 약자인 쌍용차 노동자를 잊지 말자고 했는데, 그게 좌파라면 나는 좌파다. ‘빵꾸똥꾸’라는 말 쓰게 해달라고 하는 게 좌파라면 나는 좌파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자기와 뜻이 다르다고 해서 좌든 우든 몰아세우는 건 안 된다. 내가 아는 한 진짜 좌파는 정태춘밖에 없다. 그분은 앨범 재킷 사진보다 시위하다 끌려나가면서 찍힌 사진이 더 많다. (청중 웃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살 거냐, 아니면 대중에게 갈 길을 보여주면서 살 거냐, 만날 나보고 묻는다. 그러면 내가 말한다. “무슨 말씀이냐”고. 상식적인 것에 대해 비상식적 잣대를 들고 와서 (좌파라) 하면 못 받아들이겠다. (청중 웃음과 박수)

K·나혜윤 19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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