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남산의 역사와 문화
① 근대 이전의 남산
② 일제시대 남산 1
③ 일제시대 남산 2
④ 해방~자유당 시절의 남산
⑤ 군사정권시대 1
⑥ 군사정권시대 2
⑦ 민주화 이후
서울시는 ‘남산 르네상스’ 계획의 실천으로 남산을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겠다고 한다. 센트럴파크는 도시의 공중위생과 보건을 위해 사람이 만든 지극히 인공적인 자연인 데 비해, 남산은 그 존재 자체로 도시의 토대가 된 원생의 자연이다. 그러나 태생과 달리 센트럴파크가 도시와 대비되는 전형적인 녹색 이미지를 극복하고 도시와 소통하고 진화하며 현재까지 변함없는 공원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데 비해, 남산은 대도시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입지적 장점에도 그동안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엄연히 도시 자연공원으로서 공공의 재산임에도 공익적으로 건강한 역사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 차원의 경제개발계획이 수립·시행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1965년 수립된 서울도시계획에는 남산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대도시의 중앙에 이와 같은 산괴(山塊)가 존재함은 진귀한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중략) 이와 같은 것은 근대 대도시의 교통상 또는 경제상의 발전을 저해함이 크다 할지라도 그 풍치상은 물론 보건상 또는 방재상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대도시에 큰 산이 있다는 것이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던 이러한 인식은 바로 다음해인 1966년 도시계획 기본계획에서 ‘남북축을 연결하는 녹지축으로서 중심 시가지의 자연공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바뀐다. 이후 남북 녹지축의 개념은 ‘남산 르네상스’ 계획에 이르기까지 4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수립된 계획이 문구 하나 바뀌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는 것은, 그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시행은 여전히 안 되고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산에 대한 상세 계획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동식물의 보전과 전망, 휴게시설물 정비 수준으로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권위주의 덮으려 남산 복원 시작1991년 수립된 ‘남산 제 모습 찾기’ 기본계획에서 비로소 남산의 가치에 주목하고 상세한 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일제와 전쟁, 과거 정권에 의해 훼손된 지형·역사·경관·생태의 복원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왜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남산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을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남산은 1970년대 후반까지 중요한 가족 나들이 장소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규모 테마파크가 남산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남산은 공원으로서 낙후된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1960년대 초 운행을 시작한 남산 케이블카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고, 남산타워는 서울에 처음 구경 온 사람들이 아니면 여간해서 올라가지 않았다. 그나마 한강변에 세워진 63층 빌딩의 전망대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남산에 위치한 권위적인 시설들로 인해 남산의 이미지는 더욱 어둡고 외딴섬 같은 고립의 장소로 변질돼갔다. 이렇게 남산은 사람들의 기억에만 간직된 채 잊혀지고 있었다.
1988년 태어난 제6공화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표방한 것은 ‘보통 사람’이었고 그것은 권위주의의 탈피를 의미했다. 서울에서 가장 권위적인 시설 중 남산에 위치한 안전기획부(전 중앙정보부)와 수도경비사령부의 이전은 당연했다. 당시 실무를 담당한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의 회고에 따르면, 1990년 ‘남산 제 모습 찾기’ 계획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100인 시민위원회의 구성이었다. 도시뿐 아니라 생태·조경·역사·문화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시민단체, 일반 시민, 지역 주민 등도 포함되었다. 단순한 도시계획으로서의 개발이나 정비 차원이 아닌 역사, 문화, 생태, 시민 참여까지 포함한 최초의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남산 제 모습 찾기’ 계획은 1994년에 있을 서울 정도 600년 사업과 맞물려 더욱 활기를 띠었고 당시 여론도 호의적이었다. 당시는 생태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시기였음에도 남산의 생태 복원을 강조한 데는 여러 전문가의 노력이 컸고, 현재까지 다양한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1년 ‘남산 제 모습 찾기’ 기본계획은 그 다음해인 1992년에 ‘남산 제 모습 가꾸기’로 명칭이 바뀐다. 당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이규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제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 남산의 파괴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일제강점기 이전으로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해 토론 끝에 ‘가꾸다’라는 용어로 대체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보고서나 문헌들뿐 아니라 현재까지 두 용어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둘 다 남산의 제 모습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공통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군사정권 시절의 관선 시장하에서 모처럼 남산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좋은 의미로 시작된 이 계획은 그 의도만큼 성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1994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매입한 외인아파트를 시민이 보는 앞에서 상징적으로 폭파하고, 안전기획부와 수도경비사령부를 이전한 뒤에도 남산의 제 모습은 복원되지 않았다. 잠식 시설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외인아파트 철거 이후로도 무분별한 경관 파괴는 이어졌다. 대부분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거나 일부 실행됐어도 지속되지 못했다. 여전히 남산은 시민에게 먼 장소였다. 건국 이래 최초로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됐던 남산은 또 다른 역사와 기억들을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외인아파트 파괴 등 상징적 행사에 치중2009년 서울시는 ‘남산 르네상스’ 계획을 회복과 소통이라는 기조 아래 시행하고 있다. 회복을 위한 실천 전략으로는 생태성 회복, 남북 녹지축 연결, 산자락 복원, 역사성 회복을 꼽고 있고, 소통을 위해 상징적인 이미지 구축, 접근성의 개선, 자락별 문화공간의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계획의 세부 내용은 1990년대 초의 계획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단, 남산을 개별적으로 다루던 차원을 넘어 도시적 맥락에서 관련 계획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기대할 만한 일이다. 2007년 수립된 도심 재창조 종합계획에서는 도심의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4대 축선을 설정했다. 제1축은 역사문화축으로 경복궁에서 서울광장을 거쳐 숭례문, 서울역, 남산을 잇는 축이고, 제2축은 관광문화축으로 북촌과 인사동, 명동, 남산을 잇는다. 제3축은 녹지문화축으로 창경궁, 종묘, 세운상가 그리고 남산으로 이어진다. 제4축은 복합문화축으로 대학로,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역시 남산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도심의 4대 축선이 남산으로 모아지는 점은 남산이 서울의 역사·문화·생태적 주요 거점임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화돼 머지않은 미래에 81만 평에 이르는 대형 공원이 서울 한가운데 입지할 계획이다. 여기에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서는 한강을 중심으로 남산, 용산공원, 국립현충원의 녹지축을 계획하고 있다.
‘남산 르네상스’, 일괄적 역사 지우기 될라그러나 과거처럼 일괄적인 역사 지우기 행태는 도시 문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했음에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이제는 겉모습을 ‘가꾸기’보다 잊고 있던 남산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지난 역사가 부끄럽다고 해서 그 기억의 상처를 간직한 시설들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에 물길을 만들고 새들을 불러모은다고 남산의 가치가 갑자기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겸재 정선이 인왕산 자락에서 한양을 내려다볼 때 든든한 배경이 되었던 푸근한 안산의 이미지가 남산의 한 역사라면, 일제에 의해 도로가 뚫리고 그들의 신사가 세워졌던 치욕도 역사이며 공안 정국하에서 서슬 시퍼렇던 공포의 역사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남산은 양피지처럼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하는 기억 소거의 장소였다. 남산은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상처를 가진 장소이고, 그저 덮고 무마하기에는 기억이 너무 깊다.
제인 제이콥스는 대규모의 공원은 대도시적 매력 요소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도시와 공원의 연계가 활력 있으려면 강한 흡인력을 지닌 경계부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주변부를 최대한 활용하는 좋은 사례라고 꼽았다. 반면 남산의 경우는 도심 어디서나 가깝게 보이지만 실제로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 도시생활에서 공원은 더 이상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일터에서 점심시간에 가볍게 커피 한잔 들고 쉴 수 있는 벤치, 출근길에 간밤에 새로 핀 꽃을 발견할 수 있는 집 근처 개천, 동호인 운동 클럽을 만들어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열린 광장, 다양한 문화행사가 일상적으로 열리는 공원의 경계와 같이 도시의 일상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도시와 공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서로 섞임으로써 사람들은 도시 속에서 공원을 느끼고 공원에서 도시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남산 르네상스 계획과 도심 재창조 종합계획에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 중이니 여건은 개선될 것이다. 지구별 특색과 고유한 역사성을 살린 계획이 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와는 다른 서울만의 남산다움을 살려야 한다. 비교도 되지 않을 오랜 역사가 있고, 장소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있는 곳이다. 땅과 장소, 문화적 기억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남산다움을 만들어가야 한다.
센트럴파크 아류 아닌 남산다움 찾아야1956년 이용민 감독의 영화 은 주인공 부부에게 일요일 하룻동안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산에서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야외 연주회를 가자고 제안하지만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한다. 그 대신 영화의 엔딩신에서 반대편 기슭의 산동네에서 멀리서나마 연주를 들으며 행복해한다. 대도시적 매력 요소는 멀리 있지 않다. 1950년대에 누렸던 서울의 낭만을 21세기 서울에서도 꿈꿔본다.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서울대 조경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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