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 한겨레21인권위원·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17]
계속 복통이다. 설사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거린 지 한 달이 넘었나 보다.
인권활동이 워낙 시급한 일들에 대응하는 것이라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다지만, 요즘은 새롭고 또한 굵직하기까지 한 사건들 때문에 더욱 바쁘다.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피로하다. 사건 피해자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복통이든 두통이든 안 생기는 게 이상할 노릇이다.
지난 8월15일 촛불시위가 있던 날,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숍에서 나오자마자 때 아닌 하늘색 색소가 옷에 묻어 경찰에게 그냥 잡혀갔다는 시민이 있다. 이 사람은 48시간을 거의 채우고 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아는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하나님이 계신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조·중·동 광고거부 운동을 하던 네티즌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심지어 법원은 이 가운데 2명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의견을 말할 자유가 경찰·검찰·법원에 의해 박탈되고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가리지 않고.
심지어 무덤 속에서 주무시고 계실 거라 생각했던 국가보안법까지 등장했다. 그것도 조직 사건이다.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를 포함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설립자 8명이 줄줄이 공안기관에 끌려갔다. 국방부는 장하준 교수의 을 포함한 23종의 금지도서를 ‘추천’해 판매고를 올려주기도 했다. 여기에 ‘마타하리 사건’이라 불리는 여간첩 사건까지 등장했다. ‘공안정국’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놈의 공안정국은 그물망에 걸린 이들만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문제다. 그러니까 공안정국은 내 몸의 복통만 불러온 게 아니다. 네티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수사’ ‘엄단’ 조처를 발표하는 정부의 방침에 의해 순식간에 위축됐다. 사실 정부가 노린 것도 이러한 위축 효과다. 법적으로 타당하든 타당하지 않든 일단 엄포를 놓으면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의 자리가 커지게 마련이다. 나조차도 키보드를 누르면서 머릿속 검열 장치가 수초 동안 수백만 전구를 깜짝거리는 마당이다. 이거 써서 또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같은 종류의 불안이 자꾸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면으로부터의 두려움에 의해 말할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가 강탈당한 것이다. 물론 불법 검문, 하늘색 물대포, 무조건 연행, 방패와 곤봉에 의한 거리의 공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공안정국 때문에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데, 정작 공안(公安)의 뜻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편안히 유지되는 상태’이니 말이다. 분명 지금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안정과 질서가 바로잡히는 편안한 상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원래 좀 시끄럽고 불편하고 그러면서도 꼭 필요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이들에게 지금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정부는 중앙의 원형 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감시탑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도록 설계해, 감시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수 없어 죄수들이 스스로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하게 한다는 원형 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에 국민을 가두었다.
공안을 원하는 자들에 의해 전 국민이 감옥에 갇혀버린 대한민국. 어쩔까? 국가보안법 위반을 각오하고 외쳐볼까? “이땅의 갇혀 있는 민주주의와 복통 해방을 위해 겨레여 단결하자!” 아이고 무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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