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희경 드라마 작가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⑬]
내가 유년기과 청년기를 보낸 곳은, 서울 마포 도화1동 산2번지였다. 지금은 거대한 삼성아파트 부락이 서 있지만, 당시의 마포는 588번과 2번 버스 종점인 한강변에서 한겨울에도 비지땀을 흘려야만 올라갈 수 있는 가파른 산동네였다. 공중화장실과 공중수도, 무학력자, 하루 날품을 팔아야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그곳은, 성대한 88올림픽이 치러지던 때에도 곳곳에서 살벌한 철거꾼들이 큰 무쇠 망치를 들고, 채 떠나지 못한 동네 사람들의 담벼락을 무자비하게 두들겨대던 곳이었다. 1988년 겨울 누구누구의 집 아이가 철거꾼에게 뼈아픈 추행을 당했다거나, 떠나지 않으면 밤새 포클레인이 자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덥칠 거란 흉흉한 소문이 칼바람처럼 쳐대던 그해, 겁 많은 우리 집 식구는 철거대책반에 변변한 말 한마디 못하고 서울 생활을 접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낯선 성남으로 이주를 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나는 당시의 마포 풍경을 란 드라마로 그려냈다. 그러나 배경을 70년대 초로 바꾸었다. 아무도 성대한 88올림픽이 치러진 이 나라에서 88년에 그런 아귀다툼 같은 세상이 있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섬뜩한 것은, 당시에 드라마 자료 조사를 위해 찾아간 90년대 중반의 철거촌 옥수동은 결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지대처럼 88년 마포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철거반의 무자비도, 흉흉한 소문도 뜨는 압구정에 가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였다.
2008년 북한의 실상을 접하며, 나는 ‘결코 시간이 흐르지 않는 한 지대’를 또 만난 듯했다. 98년 ‘고난의 행군 시대’라 불리며 300만 아사자가 발생할 당시에도 우리는 믿지 않았다. 세상이 어느 땐데 하늘 아래 그런 떼죽음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 와 그때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다시 2008년 북한의 대량 아사자 발생 소식을 접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거세게 도리질을 친다. 일부 지역이 아닌 나라 전체에 떠도는 꽃제비떼, 나라 전체에 퍼지는 아사자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21세기 이 최첨단 시대에 먹을 게 넘쳐나 되레 환경을 오염시키는 이 시대에 불과 서울과 40여 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굶어죽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가? 전세계가 경악하는데도 쓸데없는 말 마라, 근거 없이 일갈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우리가 모든 말로 외면하는 이 시간 북한의 형제 같은 내 이웃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을 말하며 북한 주민의 생존은 외면하는, 북한 정부에 본때를 보이기 위해 동포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이 냉정하고 아프기만 한 시대가 이즈음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드라마 곳곳에서 사랑을 말하며, 인생을 말하며, 도리를 말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말만 보태는 너는 과연 지금 당당한가? 그 누구보다 먼저 내 자신에게 물어진다. 쌀은 언감생심이고 그저 거친 옥수수라도 바라는 사람들, 단돈 1만원으로 한 가족이 한 달을 사는 무자비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과연 우린 말을 보탤 것인가, 이념의 논쟁을 보탤 것인가, 한 줌 쌀을 보낼 것인가. 나는 그만 입을 닫고 쌀을 보내야겠다. 폭염으로 들끓는 이 한여름 시원한 장맛비를 기다리다, 북녘엔 그리되면 물에 휩쓸려가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 여름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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