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⑪]
“어떤 사람은 복숭아나 오이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잖아요. 저는 군대에 대해 그렇게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냥 힘든 거면 하겠는데, 정말로 고통스러운 것은 참기 힘들어요. 군대 가는 생각만 해도 마음과 몸이 아팠어요.”
지독한 두통은 19살 때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군대는 그렇게 떨치기 어려운 공포였다. 군대의 공포는 자살의 유혹도 불렀다. 내일이면 죽어야지, 다짐한 날들이 끝이 없었다. 방에서 목을 매어보았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보았다.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서 누군가 자신을 본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돌이킨다.
19살부터 군대가 실체로 다가왔다. 강압과 명령의 군대가 싫지도 않았다. 너무나 무서워 싫거나 좋거나 느낄 여지도 없었다. 22살엔 군대를 피하려고 가고 싶지 않은 대학에 뒤늦게 들어갔고, 23살엔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알게 돼서 자격증을 따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25살엔 한국방송통신대 학생이 됐다. 오로지 군대를 미루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최후통첩, 2008년 7월7일에 입대하란 영장이 날아왔다.
내 안의 남성이 내 안의 여성을 혐오했다. 밀리터리와 프라모델에 열광하던 남자아이와 바비인형과 순정만화의 열락에 빠지던 여자아이가 내 안에 동시에 있었다. 남자아이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여자아이를 모멸했다. 남자가 여성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봉변을 당한다고 알려주는 바보상자 속의 이야기가 그를 오랫동안 짓눌렀다. 세상의 법은 그렇게 그를 분열하게 만들었다. 군대에 간다고 생각하면? “여자인 제가 발가벗겨진 채로 남자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22살 이후 내 안의 여성을 잊으려 노력했다. 아니 잊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남자로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렇게 서너 해를 살았다. 아무리 평범한 남자처럼 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세상의 코드에 억지로 맞추려 애쓰니 오히려 어색한 외모가 되었다. 갈수록 자신이 없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지만 정작 그의 꿈은 가수다. 때로 꿈에서 여자 가수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규격화된 언어에 스스로를 가두기 전에 그저 자신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는 병역거부를 몰랐다.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서 행정소송을 하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군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강의석씨를 만났고, 병역거부 활동가들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언어를 얻었다. 병역거부의 논리를, 인권의 언어를 접하며 그는 자신을 얻었다. 자신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 비로소 반쪽인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하고 자신이 되었다. 자신의 안에서 불화하던 여자와 남자가 화해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신만의 방에 갇혔던 그는 이제 문을 열고 나와서 세상과 맞서려 한다. “평화란 별게 아닌 것 같습니다. 원래 모든 사람이 했어야 마땅한 100%가 평화 아닐까요.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세상에는 어떤 강제도 폭력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니까 지독하게 머리에 붙어 있던 두통이 사라졌다.
26살 이아무개씨는 지난 7월7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됐다. 그것은 평화의 신념, 인권의 언어에 앞서 그저 자신의 간절한 마음에 따른 것이었다. 때로는 말하지 못한 고통이 먼저다. 촛불집회 초기의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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