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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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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자존심] 인간이라니, 자부심 가질 만하지 않나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 정재승과 함께한 ‘자존심의 과학, 과학의 자존심’… 자존심은 뇌 전반의 ‘프로세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우주 유일의 존재</font>

<font color="#C12D84"> 제4회 인터뷰 특강- 자존심 ② </font>

▣ 이윤주 독자편집위원회 12·13기 위원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자존심의 과학, 과학의 자존심’이라니, 자존심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어쩌면’ 세계 최초의 강연일지 모른다는 설명에 절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사회자 서해성씨는 정재승 교수를 보자마자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의미심장하게 했다. 그가 문화방송 의 책 선정 작업을 도와주던 시절, 세간에는 선정 도서 저자와의 관계에 대한 ‘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정재승씨의 저서 는 의 선정도서다. 350여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 그는 기쁜 얼굴로 준비해온 질문을 쏟아냈다.

<font color="6633cc">서해성(이하 서):</font> 어릴 적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텔레비전으로 보았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보다가 담장이 무너졌더랬다. 그런데 달에 가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더라.

<font color="6b8e23">정재승(이하 정):</font> 달 착륙은 못 봤지만(사회자는 “그때는 태어나기 전이시죠?”라고 확인했다. 정 교수는 1972년생이다) 달 착륙 음모론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미국 현지에서 ‘생방송’으로 보았다. 방송 보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확인해보았다. 그는 허황된 이야기라며 오래전부터 그런 루머가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폴로 사건뿐만 아니라 심지어 9·11 동시테러마저도 짜인 각본일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런 사실이 더 충격이다. 우리 모두가 ‘요즘 세상에 (권력자들이) 조작하고도 남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font color="6633cc"> 서:</font> 집에서도 과학적으로 사는가?

<font color="6b8e23"> 정:</font> 집에서도 과학적으로 살면 쫓겨난다.(웃음) 말은 과학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행동은 비과학적이다. 그래서 집에서 사랑받으며 살고 있다.

사회자는 정 교수를 ‘왼손잡이 털없는 원숭이’라 칭하며 강의로 이끌었다. 강의는 인터뷰 특강 최고의 ‘첨단 강의’였다.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온 자료를 빔 프로젝트로 쏘았다. 무대에는 총천연색으로 색칠한 뇌 그림이 펼쳐졌다.

7대3은 되는데 8대2는 안 되네

<font color="#216B9C">자존심은 어디에 있을까. 뇌를 보면서 추론해보자.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촉각을 느끼는 신호들은 전부 뇌의 뒤쪽으로 간다. 즉, 뇌를 반으로 나누었을 때 뒷부분은 전부 다 ‘신경 입력 단자’라고 보시면 된다. 감각을 느끼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뒤통수를 때리면 별이 보인다(웃음). 물론 농담이다. 진짜로 믿을까봐. 감각 신호들은 다시 뇌의 맨 앞부분, 즉 이마 바로 뒷부분으로 간다. 이 부분을 ‘전두엽’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부분을 ‘전전두엽’이라고 부른다. 전두엽이 하는 일은 감각신경에서 보내는 신호를 종합해서 상황을 추론하고 행동을 결정, 명령하는 것이다. 원숭이를 제외하고 동물의 전두엽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즉 사회화를 담당하는 것이 이 영역이다. 뇌의 정수리를 아래로 귀부분까지 정도 내려온 곳에 ‘보상중추’, 베르베르 소설 에서 ‘쾌락의 중추’라고 말하는 곳이 있다. 거기에 자극을 주면 기분이 좋다. 이 보상중추와 판단을 하는 전두엽 간의 대화가 우리가 판단하는 과정이다. 쾌락중추는 “(히로뽕을) 한 대만 더 하자”라고 전두엽은 “하지 말자”고 밀고당긴다. 어린아이의 경우 전두엽 발달이 미성숙하다. 판단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야단 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다. 바로 우리 아이가 그렇다. 아내에게 “아이는 아직 전두엽 발달이 미성숙해서…”라며 야단 치지 말라고 하지만 아내는 무시한다.
인간의 자존심이라는 건 뇌의 한 기능이 아니라, 150억 개 신경세포들이 복잡하게 영역에 얽혀 있는 ‘프로세스’다. 자존심은 인간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과정이다.</font>

그는 중간중간 “여기까지 질문 있으신 분”이라며 즉석질문을 받았고 청중들은 적절한 질문을 던졌다. ‘참여 강의’는 ‘최후 통첩 게임’을 위해 참석자 두 명을 무대로 올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한 명(A)에게 주면서 다른 한 명(B)에게 얼마를 줄 건지를 결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B에게는 A가 주는 돈을 받을 수도, 아예 둘 다 못 받게 할 수도 있는 결정권이 있다고 말했다. A가 5천원을 주겠다고 하고 B가 그러마라고 대답하면서 ‘좀 시시하게’ 실험은 끝났다. 그는 강의를 이어갔다.

과학이라는 콘서트의 훌륭한 지휘자

<font color="#216B9C">나누는 비율이 6대 4거나 7대 3일 때가 가장 많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그리고 8대2나 9대1이 되면 B는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공돈이 들어오는데 왜 받지 않는 것일까, 이것도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이것을 ‘독재자 게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B는 어차피 돈을 같이 받는 입장인데 A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한다. 그냥 안 가지는 게 아니라 ‘더럽고 치사해서’ 안 가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도하게 공정함에 집착한다. 불공정에 대한 혐오가 있다. 우리 뇌가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다. 공평하게 대우받고 있고, 존중받고 있다는 마음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코딩돼 있다.
과학자의 경우 산술적 공정함에 더 집착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이 대거 실직하게 되면서 과학자들 사이에 충격이 컸다. 과거 1970, 80년대 산업 인력으로 칭송받던 사람들이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찍히면서 ‘자존심’이 팍 상한 것이다. 그런 위기의식 속에서 ‘황우석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외국 신문에서는 ‘한국의 프라이드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큰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과학자의 자존심은 무엇이냐. 과학자의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건 사회적 지위, 명예다. 돈이 아니다. 물론 둘 다 있으면 좋지만.(웃음) 어 너 그것도 못 푸냐,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과학자다. 그 속에서 가장 큰 쾌락을 얻고 자존심을 지킨다.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사실 과학자는 인류의 자존심을 아주 오랫동안 건드려왔다. 16세기, 과학자는 우주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은 태양의 주위를 도는 수많은 행성 중의 하나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18세기, 과학자는 ‘인간이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것까지 뇌의 생물학적 현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과학으로 인간 내면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는 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다.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만하지 않은가.</font>

서해성씨의 말대로 ‘과학이라는 콘서트’의 훌륭한 지휘였다. 자존심의 과학, 과학의 자존심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흥미를 자아냈고 재밌는 강의에 박수를 보낸 시간은 8시45분! 열띤 질문에 특강은 예정된 9시를 훨씬 지나서야 끝났다.

<font color="darkblue">청중:</font> ‘과학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font color="6b8e23">정:</font>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황우석 교수는 자신의 부정이 너무 큰 저널에 실렸기 때문에 더 도드라졌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엄격하지 않았다. 인문사회과학자들도 마찬가지고. 이런 점에서 황 교수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된다. 이전 세대의 ‘관행’이었던 표절 문제를 고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다. ‘그 시절 우리 다 그랬다’라고 커밍아웃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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