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진중권과 함께한 ‘자존심의 존재 미학’…타인에게 대접 바라는 건 자존심 아닌 약함, ‘자동사적 욕망’에 충실하기를 </font>
올해도 어김없이 왔다. 창간 13돌 기념으로 기획된 ‘제4회 인터뷰 특강- 자존심’이 지난 3월19일부터 서울 연세대 위당관 대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소설가 서해성씨의 맛깔스러운 진행으로 진중권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와 만난 첫쨋날(3월19일)과,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와 함께한 둘쨋날(20일). 보조의자까지 놓을 정도로 대강당을 가득 채운 400여 청중의 열기에 강연자들의 열정이 더해져 특강은 뜨끈뜨끈하게 진행됐다. 13기 독자편집위원회 손은영·이윤주씨가 번갈아가며 현장을 중계한다. 편집자
<font color="#C12D84">제4회 인터뷰 특강- 자존심 ①</font>
▣ 글 손은영 13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제 봄이라고 꺼내입은 짧은 치마가 못나게 펄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접었다. 그렇게 나는 봄처녀의 자존심을 꺾고 전력질주했다. 첫 강연이라 일찍 출발했음에도 강연 시작 시간인 오후 7시 정각이 되어서야 헐레벌떡 강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존심 버린 사회자, 추임새도 수준급
보조의자까지 꽉 찬 강연장의 분위기는 신선했다. 앞으로 ‘자존심’을 주제로 펼쳐질 여섯 번의 강연에 대한 기대감도 느껴졌다. 알아서 자존심을 꺾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부러질망정 휘지는 않겠노라는 8명의 자존심에 대해 듣는 자리다. 자존심. 듣기만 해도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단어인가.
환한 얼굴로 막 인사말을 시작한 사회자 서해성씨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며 자존심이라 믿었던 그만의 ‘깡’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그것들을 모두 버리니 홀가분하더라며, 이번에는 자존심을 버리고 사회자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강연 틈틈이 넣는 그의 추임새에 청중들은 자주 폭소를 터트렸다. 지난해 인터뷰 특강의 사회자였던 오지혜씨의 장난스러운 예언(“유치원에서부터 사회를 봤던 저보다 절대로 잘하실 리가 없어요”)과 달리 그의 사회자적 기질은 넘쳐났다.
<font color="6633cc">서해성(이하 서) :</font> 스스로 자존심이 강하다고 생각하나?
<font color="6b8e23">진중권(이하 진) :</font> 사실 자존심을 많이 꺾으며 사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 한 갑에 300원 하는 담배를 만화가게에서 한 개비에 50원에 팔았다. 주인에게 부당함을 호소했다가 “너, 앞으로 오지 마!”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표출했던 사회의식을 바로 꺾어버렸다.
<font color="6633cc">서 :</font> 대화 중에 제스처가 강한 편이다. 평소에 ‘손’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font color="6b8e23">진 :</font> 어릴 적 다락방에서 손으로 뭔가 만드는 일을 많이 했다. 그렇게 손을 이용한 어릴 적 장난이 지금의 글쓰기로 변한 것 같다. 평소 글을 쓸 때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손이 먼저 글을 써나가는 편이다.
<font color="6633cc">서 :</font>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나는 천재다’라는 뜻이다. (웃음)
이어서 “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이다”라는 말로 진 교수는 강연을 시작했다.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
<font color="#216B9C">인간이 자신을 만드는 데서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푸코가 제기한 존재미학의 물음이다. 근대 철학에서 ‘주체’라 함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또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실 ‘주체’는 권력의 효과에 불과하다. 어떤 사회든 자기 사회의 필요에 맞게끔 인간을 일정한 틀에 맞추려고 하기 마련이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을 자율적 주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만든 타율적 주체일 뿐이다. 사회는 거대한 거미줄 같은 권력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권력 사회 속의 삶의 목적을 ‘행복’에서 찾았던 그리스인들의 행복 추구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스토아의 금욕주의가 그것이다. 쾌락주의는 모든 상황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도록 해서 역경을 오히려 즐기게끔 하는 것이며, 금욕주의는 최악의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도록 하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규정하는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으려면, ‘타동사적 욕망’이 아니라 ‘자동사적 욕망’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자기에게 결여된 물질적 욕구, 즉 타동사적 욕망이 아닌 자기실현의 욕구, 즉 자동사적 욕망을 충족하려 노력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주위를 보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그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을 때 기분 나빠하며 자존심 상한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외부의 반응에 기대 자존심을 찾는 것은 자신이 약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자기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동사적 욕망을 충족하고 산다면 타인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자존심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결국 내가 지배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진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남에게 그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행사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삶 자체를 완성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니체의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도 마찬가지다. 흔히 원한을 가진 주체가 ‘노예의 도덕’을 가지기 쉬운데, 그 예로 한국은 일본의 망언에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오히려 ‘주인의 도덕’을 가지고 “너희는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 되니 안타깝구나”라는 식의 여유를 보이는 것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태도다. 원한을 갖기보다는 유희정신으로 자신을 배려하려는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font>
어디서든 자기의 존재가치 높이기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현실 사회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청중들의 ‘카운셀링’ 요구가 쏟아졌다.
<font color="darkblue">청중1:</font> 제도권 속에서 자존심을 찾기 위한 방법과 자존심을 꺾고 현실에 순응해 사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font color="6b8e23"> 진:</font> 제도권에 남아 그것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곳의 관행을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려 노력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font color="darkblue">청중2:</font> 대표적인 진보 논객으로서 자신의 견해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 밉지는 않은지?
<font color="6b8e23">진:</font> 전혀 미움은 없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권리는 없으며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논쟁을 할 때도 서로 싸운다는 개념보다는 함께 놀이를 한다는 개념으로 논쟁하는 편이다.
봄. 여기저기 상처받아 쓰러졌던 자존심을 다시 일으키기 좋은 계절이다. ‘자존심은 삶을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추동력’이라는 그의 말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봄기운과 함께 다시 한 번 힘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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