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김두식과 함께한 ‘거짓말 권하는 사회’
한국교회와 학계의 부끄러운 역사를 말하다</font>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그는 착한 (느낌의) 사람이다. 성실하고 진실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려 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자 오지혜씨가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고 짐작하면 된다. 오지혜씨의 말대로 ‘큰 담론을 친절하고 쉽게 말해주는’ 재주를 가진 ‘친절한 두식씨’가 오늘의 강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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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의 밤마을에 낯익힌 청중과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가벼운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 분위기가 경쾌했음을 표내기 위해 ‘지혜’와 ‘두식’으로 표기해본다. 비위 상한 독자가 계시면 용서하시라.)
‘위증죄’를 정확히 아십니까
지혜: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은?
두식: 남과 다른 것에 용감하라는 것이다. 남과 다르게 될 수 있는 용기를 갖자는 거다.
지혜: 최근에 한 거짓말은?
두식: 사소한 건데, 사진기 살 때 아내에게 양심적으로 반값(비양심자는 10분의 1 값을 말한다고)으로 말했고, 술자리 싫으면서도 좋다, 뭐 이런 거짓말을 했다. 이젠 술자리 거짓말은 안 하려고 한다(왕따를 당할지언정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다. 이제 억지로 그를 술자리로 끌고 가려는 사람은 눈 똑바로 뜨고 “싫어요, 안 가요”라고 말하는 차가운 거절을 당해야 한다).
폭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간단한 인터뷰가 끝나고,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그는 법률 전공자로서 거짓말과 관련된 범죄인 ‘위증죄’에 대해 언급했다. 형법 152조의 위증죄는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해서 성립하는 범죄인데, 여기서 ‘허위’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음’이 아니라 ‘자기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자기 기억이란 원래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때로는 자신도 속일 수 있는 것이기에) 거짓을 가려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대표적인 우리 사회의 거짓말 가운데,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에 관한 거짓말, 거짓말로 시작됐다가 권위로 굳은 학계의 거짓말을 중심으로 거짓말 권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는 ‘기억 조작’이다: 아마도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한 거짓말은,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자랑일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 신사참배에 끝까지 저항한 기독교인은 매우 소수였고, 주류 교단 지도자들은 신사참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38년 장로교 총회 결의문에는 신사참배가 종교의식이 아니라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신사참배를 열심히 함으로써 황국신민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것을 주도한 세력과 그 후예들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 교회의 주류를 형성해오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이런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 대신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처럼 거짓을 조작해왔다. 오늘날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해서도 종교가 아니라 그저 국가의식일 뿐이라면서 정당화하는데, 과거 신사참배를 합리화하려고 했던 말과 똑같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왜곡된 민족주의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역사 속에서 기억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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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물 먹은 박사 교수들: 1970, 80년대 유학생 대다수가 가짜 추천서를 가지고 유학을 갔다. 여담이지만 오늘날 30·40대는 대학 다닐 때 모두가 민주화운동을 했고, 그 덕에 학점들이 나쁘다. (폭소) 90년대 이후 권위 있는 학술지로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되기 위해 논문 탈락률을 조작했던 학술지가 있다. 그렇게 등재지가 된 이후 단시간에 진짜 학술 권력을 움켜쥐었다. 막상 교수를 뽑을 때는 해외파를 선호하면서 교수 자신을 위해서 박사과정 학생을 계속 받아들이는 교수들도 있다. 이들이 모두 ‘거짓의 사람들’이다.
왜 우리사회는 증명서를 낭비하는가
- 증명서 요구하는 사회: 우리 사회는 요구하는 증명서, 서류가 엄청나게 많다. 왜 이렇게 낭비하고 사는가. 서류를 많이 요구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들통난 거짓말에 대해 엄격하다.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우리 사회는 거짓말에 관대하다. 진실보다는 절차만 복잡해진다. 서류를 늘린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그는 거짓말 권하는 사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중요한 것은 기억의 복원이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역사의 어두운 부분, 잘못된 부분을 자꾸 되살리자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성찰과 고백이다(자기 성찰과 고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그의 종교관이 어우러져 간증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자주 웃음이 터져나왔다). 세 번째는 고백하는 사람들을 존중할 것, 네 번째는 왕따가 될 수 있는 용기와 왕따당할 각오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단다. 여기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렇게 하지도 않을 테니 하나마나 한 얘기가 되겠지만, 거짓으로 권위를 획득한 사람들이 최소한 후배들에게 ‘창피하고 미안하네. 거짓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잘해나가세’라고 말해야 한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은 죄책감과 양심의 부담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든 교수든 종교인이든 법조인이든.”
질의 시간에는 독특한 질문이 있었다. 한 지방대학 학생인데, 강연을 듣기 위해 서울에 와 대학 교정을 걸으면서 갑자기 학벌에 관한 열등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하면서, 이것이 사회 안에서 세뇌된 것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이에 김 교수는 학창시절에 본 화장실 낙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교 고려대 법대 한 구석에 은밀하게 자리잡은 화장실 벽엔 ‘고대 법대>서울대 법대’라는 낙서가 있었는데, 고대 법대를 향해 입을 벌린 부등호가 유난히 크게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열등감의 재현이다. “누구나 예외없이 학벌과 성적순으로 줄섰던 슬프고 아픈 기억은 이제 다들 잊으면 좋겠다. 자기성찰로 극복하자"고 김교수는 권한다.
앞으로 헌법 개헌이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1987년 개헌 이후에 달라진 사회와 불일치하는 부분이 생겨났다고 지적하고, 당연히 개헌문제가 얘기됐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통치구조와 관련된 논의는 조금만 하고 기본권과 관련된 논의가 순수하고 치열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희망을 강하게 보였다.
학벌의 열등감, 자기성찰로 극복하자
탈학교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소년과 마지막 질문자는 사회가 하는 거짓말 중에서 권위 있고 힘있는 사람의 거짓말과 사회적 약자의 불가피한 거짓말은 분명히 구분해 논의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좋은 지적에 감사하다면서,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그렇게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며 사회적으로 강요되고 생산되는 거짓말을 깊은 성찰로 타파해나갈 용기와 힘을 길러야 함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좋은 청중을 만나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말로 특강을 마무리해 또 한 번 박수를 받았다.
강연장을 나오니 그새 살짝 비가 뿌린 모양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땅에서 보이차 냄새가 올라왔다. 김두식 교수가 쓴 <칼을 쳐서 보습을>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내일쯤이면 귀농한 친구들이 찬 봄바람에도 보습을 들고 거짓말하지 않는 땅을 갈러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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