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기자의 퀵서비스맨 체험, 아슬아슬 곡예 속에 후들거리며 거리를 누비다
| 아슬아슬한 하루하루. 차량 사이를 위태롭게 비집고 나오기도 하고, 시속 80km가 넘으면 손이 후들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성공리에 임무를 완수하면 보람을 느낀다. 서울 거리를 누빈 임석규 기자의 퀵서비스맨 체험. |
부릉~ 부르릉. 7월2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논현역 사거리. 오토바이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다. 학동역 부근 공장으로 가는 첫 배달길. 짐받이에 실린 아름드리 봉제용품 샘플에 잔뜩 신경이 쓰인다. 첫 경험의 설렘과 떨림은커녕 넘어지면 어쩌나, 사고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신호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차량들 사이의 좌우 틈바구니를 비집고 서서히 선두진출을 시도했다. 길(?)이 좁으면 즉시 기수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면 앞차와 뒤차의 틈새가 오토바이의 새로운 길이다.
전쟁터의 선봉에 선 기마병들처럼…
차량 운전대에서 노려보고 있을 운전자들의 눈초리를 생각하면 뒤통수가 따갑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퀵서비스맨들의 세계를 체험해보기로 한 이상 ‘선배 퀵서비스맨’들을 본떠 충실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니 어느새 선두다. 하나, 두울, 셋… 열두울, 열셋. 양쪽 옆으로 오토바이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13대가 된다. 바로 오른쪽은 중국음식, 그 옆은 피자를 배달하는 중이고, 나머지는 모두 퀵서비스맨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딸배’라고 불렀다. ‘배달’을 거꾸로 한 말이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오토바이들은 일제히 굉음을 울리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들은 전쟁터의 선봉에 선 기마병들처럼 보였다. 신호등에 맞춰 액셀러레이터를 당기는 그들의 몸동작은 돌격신호에 맞춰 말잔등을 채찍으로 후려갈기는 기마병의 그것과 흡사했다. 분기탱천한 채 적을 향해 돌진하는 아스팔트 위의 선봉장들. 궁금했다. 그들이 노리는 적은 도대체 누구일까. 무엇이 그들의 적개심에 불을 질렀을까.
아내에겐 전날 밤에야 털어놨다. 아내는 기겁하며 말렸다. 누굴 과부 만들기로 작정했느냐고 정색했다. 하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오토바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시늉으로만 타는 것뿐이니 걱정 말라고 심드렁하게 얘기하며 어물쩍 넘겼다. 아내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오토바이는 절대로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기획회의에서 퀵서비스맨 체험을 하겠다고 얘기를 꺼낸 것은 지난해였다. 그러나 막상 오토바이 탈 생각을 하니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편집장은 보험도 안 되는데 다치면 어떡하느냐고 말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물쩍거리는 사이 훌쩍 1년이 흘렀다. 에서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한번도 안 했다는 부담이 커갔다. 후배들의 눈초리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심지어 어떤 후배는 “다치면 문병은 가겠다”는 농담을 던지며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에라, 한번 부닥쳐보자.
“9호, 엠빌딩 6층 서류 픽업(pick up) 바람. 4호는 신림동 떡배달 서둘러야 함. 떡이 크면 1만원 받고, 작으면 8천원 받기 바람. 이상 확인.” “알았다, 확인.” 강남구 논현동 주택가 1층에 자리잡은 퀵서비스 업체는 전시 작전상황실을 방불케 한다. 전화기 5대는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상황’(사무실에서 배달건을 배분하는 사람)은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을 친다.
첫날 오전엔 한탕도 못 뛰었다. 사장은 자신이 모는 오토바이 타는 법부터 가르쳐줬다. 중국음식과 피자 배달용으로 애용되는 100cc짜리 소형 오토바이다. 내심 폼나는 대형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지만 원동기면허가 없으니 하는 수 없다. 자동차 면허증만 있으면 운전이 가능한 소형 오토바이로 만족해야 했다. 오토바이를 처음 타는 것은 아니다. 택시에 부딪쳐 길거리에 나자빠진 적도 있지만 고교시절엔 제법 탔다. 오해하지 마시라, 폭주족은 아니었다. 고교 졸업 이후론 한번도 핸들을 잡지 않았으니 딱 20년 만이다. 기어 넣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검정 조끼를 걸치고 무전기와 무릎보호대를 차고 오토바이에 오르니 그런 대로 퀵서비스맨의 꼴이 갖춰진다.
고수들도 ‘철가방은 두려워’

점심을 먹고 드디어 ‘첫 출격’이다. 봉제용품 배달은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 강남 일대에서도 차가 밀리기로 이름난 곳이지만 퀵서비스맨에겐 이 정도의 차량혼잡은 문제도 아니다. 밀리면 차량들 틈새를 헤집고 선두로 나서는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받는 여직원에게 꾸벅 절을 하며 말을 건넸다. “저, 이번이 퀵서비스맨 ‘첫 경험’인데요.” 그러니 어쩌라는 말인가. 말을 해놓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 그러세요. 고생하시겠네요.” 일하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수고하세요.” 다시, 꾸벅 절을 하고 나왔다. 배달료로 받은 5천원짜리 지폐 1장.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다. 상황실로 무전을 쳤다. “첫 번째 임무 성공적으로 완료.” “수고했어요.”
두 번째 일은 유명 골프업체에서 소품을 건네받아 배달하는 일. 이번에도 “퀵이 처음이라 서툴더라도 이해해달라”며 접근한다. “그런데 어쩌죠. 돈이 조금밖에 안 되는데….” 여직원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6천원을 건네줬다. 삐리리~. 다시 상황실에서 무전이 온다. 어느 디자인업체의 의뢰였는데, 철제 의자와 원단을 두 업체에 전달해주고, 다시 파이프를 가져오면 1만3천원을 주겠단다. 철제 가공업체에 갔더니 파이프를 자르고 다듬는 데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퀵서비스맨에게 ‘시간=돈’인데 난감했다. 서둘러달라고 다그쳤다. 아니, 내가 벌써 돈독이 올랐나. 이참에 아예 전직을 해봐? 휴가 때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잠깐 기다리는 순간에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첫날 마지막 일은 1만원을 받고 반포 아파트단지에 있는 어느 건설업체 현장사무소에서 서류 2개를 건네받아 강남구청 부근과 압구정역 부근의 업체에 전달하는 임무였다. 이젠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다는 자신감에 학동역 네거리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는데 갑자기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뀐다. 왼쪽에서 직진하는 오토바이가 돌진해왔다. 앞브레이크, 뒷브레이크를 꽉 잡았지만 이미 늦어 앞바퀴가 살짝 들이받혔다. 상대는 대형 오토바이를 탄 퀵서비스맨이었다. 다행히 비틀거리기만 했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휴~. 한숨이 나온다.
다시 힘을 내 달렸다. 이번엔 후두둑,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서울엔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비옷을 꺼내 걸쳤다. 주르르~. 빗줄기가 안경을 타고 흘러내리니 앞이 안 보인다. 핸들을 쥔 손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비오는 날 차선 부분이나 철판 위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대로 미끄러진다는 사장의 얘기가 떠올라 덜컥 겁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서류를 전해줄 업체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오토바이를 멈추고 상황실로 무전을 쳐 도움을 청했다. ‘선배 퀵서비스맨’들은 비옷을 입고 달리면서 한 손으로는 무전을 친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 어느 곳이든 고수들은 대단하구나.”
시속 80km 넘으니 식은땀이 줄줄…
택시들도 퀵서비스맨들이 탄 오토바이는 슬슬 피한다고 했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퀵서비스맨들도 두려워하는 건 한 손엔 철가방을, 다른 한 손엔 핸들을 잡은 채 온갖 묘기를 발휘하며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중국음식과 피자배달 오토바이들이었다. 이 세계에도 나름의 위계가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다. 첫날 번 돈은 모두 3만4천원. 기름값 3천원을 제하고 남은 돈이 3만1천원이었다. 오후 몇 시간 동안 강남 일대에서만 일해 번 돈이니 적다고 해야 할까, 많다고 해야 할까. 맥이 탁 풀렸다. 퀵서비스맨에게 노동의 대가는 정말 ‘퀵’했다. 거리가 짧으면 5천원이었고, 조금 더 가면 6천원, 가까운 데 2곳을 뛰면 1만원이었다. 장거리 네댓곳을 뛰면 1만원짜리 지폐 4만~5만원을 손에 쥔다. 모르긴 몰라도 이 바닥보다 더 빨리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는 곳은 없으리라. 이 일은 그만큼 정직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면 그만큼 벌 수 있는 액수가 늘었다. 아, 이제 알겠다. 그들을 적개심에 불타는 기마병으로 만들어 목숨 걸고 도심 거리를 질주하게 만드는 것의 정체는 바로 몇초의 시간이었고, 이는 곧 현금이었다.
퀵맨들은 일종의 지입제로 일한다. 오토바이도 개인 소유고 기름값과 점심값도 각자가 따로 부담한다. 업체에 내는 돈은 일주일에 지입료 7만원과 무전기 사용료 1만2천원 등 모두 8만2천원. 이 돈을 내면 나머지는 뛰는 만큼 가져간다. 액셀러레이터를 ‘땡기는’ 만큼 수입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열심히 하면 기름값을 제하고 하루 8만~10만원 정도 가져갈 수 있다.
이틀째, 아침부터 장맛비가 퍼붓는다. 사장은 위험하다며 오토바이를 내주지 않았다. 대신 1.5t 소형 트럭을 끌고 분당까지 배달을 다녀왔다. 난생처음 몰아본 트럭으로 인테리어용 왁스 다섯 상자를 배달하고 번 돈은 2만원. 오후엔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 영업활동을 했다. 테헤란로 빌딩숲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아무 사무실에나 들어가 스티커와 전단을 돌리는 판촉활동이다. 오토바이를 못 타고 돈을 못 버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벌써 퀵서비스맨이 다 됐나보다.
사흘째, 마지막날이다. 이제 돈 좀 만져야 한다. 사흘 동안 번 돈으로 동료 퀵서비스맨들과 소주 파티를 벌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전엔 강남 일대를 바삐 돌아다니며 4건을 배달했다. 눌러쓴 헬멧과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지열로 온몸이 땀에 절었지만 그래도 달릴 땐 덥고 힘든 줄도 몰랐다.
이제 강남이 좁다. 강남에서만 돌다 왔다고 하면 동료들이 비웃을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진출해보고 싶은 욕심이 꿀떡 같았다. 때마침 여의도행 배달 2건이 들어왔다. 사장은 갈 수 있겠느냐고 했지만 해보겠다고 했다. 자동차로는 올림픽대로를 타면 그만이지만 자동차전용도로 이용이 금지된 오토바이로는 현충원 앞길로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조금 천천히 달리면 버스들이 경적을 울리며 밀어붙인다. 그래서 속도를 내보지만 시속 80km가 넘으니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승용차들이 차선을 양보하지 않고 옆으로 밀어제치면 오금이 저렸다. 두어 차례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여의도에 도착했다.
보험회사 기피대상 1순위
마침 맨하탄호텔 부근 세실빌딩에 배달하는 서류봉투가 하나 있었다. 몇년을 출입하던 민주당사 부근이어서인지 아는 얼굴 몇몇이 지나간다. 일부러 히죽 웃었지만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갑자기 우울해진다. 아, 호구책으로 오토바이를 몰아야 한다면…. 내일이면 이 일도 끝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몰려온다. 내친 김에 광화문에서 노량진까지 배달하는 일을 한건 더 하기로 했다. 만리동 한겨레신문사 앞을 휙 스쳐지나갔다. 남대문을 지나 드디어 광화문 네거리다. 퀵서비스맨이 좋은 점이 있다면 아무리 ‘비까번쩍’한 건물에 들어서더라도 제지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이낸스빌딩도 무사통과였다.
사흘 동안 일하고 점심값과 기름값을 제하고 남은 돈이 7만7천원. 이 돈으로 보쌈과 낙지전골을 시켜 동료 퀵서비스맨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내가 그들 몫을 빼앗았으니 되돌려주는 게 당연했다. “최후의 발악이죠. 해도해도 안 되니 어떡합니까. 특별한 기술도 없고….” 40대 초반의 문씨는 택시운전을 그만두고 오토바이를 몬 지 3개월째 되는 ‘초짜’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사업에 실패해 이 바닥에 뛰어든 30대 중반의 김씨. 그는 지난 4월 화물트럭과 부딪치는 사고로 몸이 엉망이 됐지만 오토바이 핸들을 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0.1초 차이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인생들입니다. 오늘도 아슬아슬한 죽을 고비를 2번이나 넘겼지요. 오금이 저려도 어떡합니까. 먹고살자니….” 김씨와 동갑이어서 친구처럼 지내는 권씨는 다 까진 무릎을 내보이며 “퀵맨들 중 무릎이 성한 이는 드물다”고 했다. 이들은 보험회사의 기피대상 1순위다. 들었던 생명보험마저 해약당하기 일쑤다.
그들을 원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차량보다 빠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오토바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겠는가. 위험을 무릅쓰고, 욕설을 감수하고, 인도와 횡단보도를 넘나드는 무법자가 되지 않으면 ‘퀵서비스’는 불가능하다. 퀵서비스맨들의 경쟁력은 도심의 교통혼잡에서 나온다. 교통난이 해소돼 차량들이 도심을 빨리 진행할 수 있다면 퀵서비스맨들은 자연도태될 게 분명하다. 극심한 동맥경화를 앓고 있는 서울 도심에서 퀵서비스맨은 물류의 최말단을 담당하는 실핏줄이었다.
글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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