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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아닌 ‘법면 유실’을 아시나요?

[우리동네뉴스] 거제 아파트 매몰 사고 ‘산사태’ 아니라고 결론… 아파트가 피해 복구·보상 비용 부담해야
등록 2026-09-24 22:42수정 2026-09-25 06:36
2026년 8월17일 새벽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언덕 붕괴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경남 거제 ㅅ아파트 사고 현장. 아파트 출입구까지 밀려온 흙더미에 주차한 자동차가 파묻혀 있다.

2026년 8월17일 새벽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언덕 붕괴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경남 거제 ㅅ아파트 사고 현장. 아파트 출입구까지 밀려온 흙더미에 주차한 자동차가 파묻혀 있다.


여러분은 어떤 곳에 살고 있습니까?

서울인지 지역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평지에 사는지 언덕에 사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단독주택이든 아파트든 상관없습니다. 사는 곳 주변을 둘러보세요. 혹시 바닥에서 수직으로 세운 옹벽이 보이나요? 옹벽 뒤로 언덕은 없는지요? 만약 언덕이 있다면, 옹벽을 세우기 전부터 있던 자연 언덕인가요, 아니면 옹벽을 세우면서 깎은 인공 언덕인가요? 울창한 숲으로 덮여서 정확히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옹벽이 없는 주변 다른 언덕과 비교해보세요. 경사도가 비슷하면 자연 언덕, 주변보다 가파르면 인공 언덕일 가능성이 커요.

2026년 8월15~17일 경남 거제·통영이 겪은 것처럼 최근 기상이변 수준의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경사면이 무너지면서 흙과 돌이 쏟아져 내렸다고 모두가 산사태인 것은 아니랍니다. 행정적으로 자연 상태의 산지·임야에서 발생하면 산사태,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에서 발생하면 ‘법면 유실’로 분류됩니다. ‘법면’(法面)은 인공적으로 깎거나 쌓아서 생긴 경사면입니다. 산사태가 발생하면 사유지라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산림청 등 공공에서 복구하는데, 법면 유실이 사유지에서 발생하면 복구는 물론 피해 보상까지 땅 주인이 해야 합니다. 사고 형태는 비슷하지만, 사후 처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1명 숨지고 2명 다치는 인적·물적 피해

 

8월17일 경남 거제시 옥포동 ㅅ아파트는 기록적 폭우에 따른 언덕 붕괴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등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봤어요. 그런데 행정적으로 이 아파트에서 일어난 것은 산사태가 아닌 ‘아파트부지 내 법면 유실’로 잠정 분류됐습니다. 이대로 확정되면 최소 수억원에 이를 복구 비용은 물론 인적·물적 피해 보상까지도 대부분 아파트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ㅅ건설은 1993년 옥포동 언덕에 있는 땅 2만890㎡를 사서 6개 동 384가구의 ㅅ아파트를 지었습니다. ㅅ건설은 아파트 부지 내 언덕을 깎아서 건물을 세울 평평한 터를 조성하고, 언덕 아래에 콘크리트 옹벽을 설치했습니다. 또 1994년 언덕을 포함한 아파트 부지 전체의 지목을 ‘대지’로 전환했습니다. 8월17일 폭우로 무너진 언덕은 울창한 숲이었지만, 서류상 아파트 부지 안에 있는 대지였습니다.

경남도 관계자는 “아파트 부지 내 언덕에 배수로가 설치돼 있는데, 조사 결과 배수로 아래쪽에서부터 토사가 흘러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곳은 아파트 부지 내 법면인 것이 명확하며, 아파트 법면 관리 책임은 아파트관리사무소와 주민들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고 지점은 아파트 부지 내 법면이기 때문에 산림재난방지법상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아파트 부지 내 언덕을 깎아서 법면을 설치한 전국 모든 아파트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안전진단에서도 “사고 지점은 암반 위에 토사가 얇게 덮여 있는 구조였다. 언덕에 배수로가 있는데,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빗물이 쏟아져 들어가면서 배수로 아래쪽 토사가 암반과 분리돼 흘러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산림청도 “해당 아파트 단지 대지 내 붕괴사고는 아파트 조성 때 만들어진 인공사면에서 발생했다. 사면 하부 옹벽은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시설물로 등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관리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자연 상태가 아닌 인공적으로 조성한 언덕이 무너졌기 때문에 산사태가 아닌 ‘법면 유실’이라는 뜻입니다.

8월17일 새벽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언덕 붕괴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경남 거제 ㅅ아파트. 아파트 건물 2층까지 흙더미가 쏟아져 들어갔다. 최상원 기자

8월17일 새벽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언덕 붕괴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경남 거제 ㅅ아파트. 아파트 건물 2층까지 흙더미가 쏟아져 들어갔다. 최상원 기자


‘법면 유실’로 확정되면, 응급복구비·재난지원금·성금 등으로 충당하고도 부족한 피해 복구·보상 비용 대부분을 아파트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 피해 상황이 집계되지 않았으나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인명 피해 외에도 아파트 건물 일부가 부서지고, 차량 수십 대가 파손됐습니다.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언덕 보강공사를 하고, 옹벽도 새로 설치해야 합니다. 아파트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 아파트 주민자치위원회 관계자는 “무너진 언덕이 우리 아파트 땅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설사 아파트 땅이라 하더라도 자연재해를 당한 것인데, 보상은커녕 피해 복구도 직접 해야 한다니 기가 찬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아파트 가까이에 울창한 숲이 있어서 공기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원래부터 있던 숲인 줄 알았고, 그 숲이 우리 아파트 소유 땅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무너진 비탈의 책임을 묻다

 

직접 피해를 당한 1개 동의 주민 53가구 119명은 친인척 집이나 숙박업소 등을 옮겨다니며 대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복구공사를 완료해야 재입주할 수 있는데, 복구공사에 앞서 정밀 안전진단만 2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경남도와 거제시는 “추가 붕괴를 막는 응급복구는 공공이 부담한다”고 할 뿐, 이후 해야 할 복구·보상 비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낍니다.

우리나라 전체 국토의 63%가 산지라고 하는데, ㅅ아파트처럼 옹벽과 법면에 둘러싸인 건물은 전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아무리 알아보려 해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지 않을까요”라는 하나 마나 한 답변만 받았습니다.

8월16~17일 이틀 동안 거제에는 927.6㎜의 비가 내렸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우리나라 세 번째 기록이고, 태풍과 관계없는 비로는 최고 기록입니다. 박재현 인제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거제는 물 빠짐이 매우 좋은 섬 지역이기 때문에 피해가 이 정도에 그쳤다. 만약 서울 등 중부지역에 이 정도 비가 내렸다면 나라가 멈췄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큰비가 내려도 안전한 곳에 살고 있는지요? 혹시 주변에 옹벽과 언덕이 있다면, 잘 관리되고 있나요? 이번 기회에 확인해보시죠.

거제=글·사진 최상원 한겨레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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