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듀테크 아시아 콘퍼런스에서는 ‘AI 시대 교실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캔디스 리 싱가포르 만주슈리중등학교 미술과 수석교사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학생들이 그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우연 한겨레 기자
“읽지 않고 독자가 되고, 쓰지 않고도 저자가 되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따비 펴냄, 2020)를 함께 쓴 언어학자 김성우 선생과 교육 현장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같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 말이다. 김성우 선생이 그의 책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유유 펴냄, 2024)에서 “읽지 않고도 자신을 독자로 제시할 수 있는 시대”라고 진단한 말에 요즘 대학에서 비평 과제를 학생들이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보며 덧붙인 말이다. 대학에서 과제로 자주 요구하는 ‘비평’은 글이든 영상이든 자신이 보고 ‘읽은’ 것을 ‘써서’ 제출한다. 읽은 것이 있어야 쓸 수 있으며, 쓰는 것을 통해 읽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비평은 아주 짧은 글이라도 독자가 되지 않으면 저자가 될 수 없다. 비평이 저자인 창작자 양성에서 중요한 이유다. 내가 쓴 것의 고유함을 주장하려면 읽은 것에 고유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AI에 과제를 맡기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자신이 읽지도 쓰지도 않은 글을 자기 이름을 달아 제출한다. 읽지도 않았는데 독자가 되고, 쓴 것이 없는데도 저자가 된다. AI 활용을 허용한 수업에서 제출한 과제를 함께 ‘읽으며’ 학생에게 이 글에 저자로서 자신의 ‘고유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면 마지막에 자신이 손봤다고 말한다. 수행한 비평문을 함께 읽다보면(즉, 비평에 대해 ‘비평’해보면) 학생들은 손댄 것을 통해 고유성이 발생했는지 아닌지를 금방 파악한다.
비평 과제에서 AI를 활용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과제를 평가할 때 피드백 형식으로 학생과 함께 ‘읽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AI로 수행했더라도 그 글을 함께 읽으면서 독자성과 고유함이 있는지를 판단하게 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에는 마지막 한 방울만 보탰지만 제법 고유한 글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AI가 쓴 것을 다 뜯어고쳤지만 문장만 그럴싸하게 손댄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파악하는 ‘읽기’를 통해 ‘저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발견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AI가 교육에 미친 영향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평가 영역이다. 얼마 전 연세대를 비롯해 몇몇 대학에서 있었던 일처럼, 학생들이 시험을 치면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학습 과정에서 늘 하던 대로 AI를 ‘활용’하는 것이지만 가르치고 평가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부정행위’다. 단지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움이 지향하는 목적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험은 배운 것을 얼마나 내부화했는지를 평가한다. ‘지식의 내부화’는 형식적으로는 얼마나 외웠는지를 평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단어나 답을 외우기만 한다고 암기를 학습에서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암기는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배운 것이 암기를 통해 ‘배경지식’이 돼야 이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담순 암기가 되는 것은 문제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하는 과정도 없이 외우기만 하면 배경지식이 될 수 없다. 다른 지식과 연결되지 않고 고립된다. 배움이 끊임없이 지식의 연결망을 구축하고 확장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른 ‘앎’과 연결되지 못한 채 고립된 지식은 사실상 ‘죽은’ 지식이다. 달랑 던져진 한 가지 질문에만 연결된 ‘답’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에서 암기가 폄하된 가장 큰 이유는 연결로서만 가치를 가지는 앎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결’이야말로 앎에서 가장 중요하다. 배운 것은 때론 지금 읽는 것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때론 지금 배우는 것을 의심하는 자원으로 연결될 때 가치를 가진다. 이전에는 연결되지 않았거나 대충 연결돼 있던 것이 더 촘촘하고 새롭게 연결되는 것을 ‘이해’라고 한다. 연결이 확장될수록 이해가 깊어지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계가 풍부해지고 확장된다. 읽기는 세계를 확장하는 행위이며 배움은 세계를 확장하고 연결하는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연결하는 힘이 강할수록 우리는 다른 저자의 글을 읽을 때 무엇이 독창적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방식으로 사물과 사건이 능수능란하게 연결돼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감탄하게 된다. 문장 하나를 보더라도 그렇다. ‘다시, 책으로’(어크로스 펴냄, 2019)의 저자 매리언 울프가 말한 것처럼, 어떤 단어가 예상치 못한 의미로 쓰인 문장을 보면 우리 뇌는 의미심장한 정지 반응을 일으킨다. 그 고유함에 탄복한다. 이게 지금까지는 이렇게 연결되지 않았음을 아는 사람만이 감탄하며 고유함을 향유할 수 있다.
읽는 것은 단순하게 정보를 습득한 것이 아니다. 만일 정보만 습득한 것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전보’가 될 것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정보를 압축해서 발신하고 수신하는 것이 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연결’이 작동한다.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이 있고 고유함이 발생한다. 전보도 한 끗만 잘못 쓰면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암호’가 돼버린다. 가장 압축적으로 발송한 전보를 보면서 역시 그 새로운 ‘연결’이라는 독창성에 감탄하게 된다. 전보도 연결이라는 점에서 ‘문장’인 셈이다.
그러므로 쓰는 이는 문장을 놓고 씨름한다. 정보 전달과 동시에 읽는 이가 문장 그 자체를 감탄하며 향유하기 위해서 단어와 단어, 표현과 표현 사이에 새로운 연결과 조합을 담아야 한다. 정보와 의미를 흩트리지 않고 새로운 연결과 조합이 나타날 때 독자는 진정으로 감탄하게 된다. 그다음은 단어와 단어가 연결된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 문단을 만들고 문단과 문단을 연결해 글을 지어낸다. 창작자는 그 매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두고 씨름한다.
문장과 문단을 두고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에 대해 씨름하는 이 과정은 ‘외주화’될 수 없다. 이 자체가 창작자에게 연결하는 힘을 확장하고 키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쓰고 지우는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단 하나의 문장과 글이 선택되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문장과 글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내면에 축적된다. 그 과정에서 단어와 단어, 표현과 표현,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연결망 자체가 고스란히 축적된다. 문장도 남고, 문장의 연결망도 남고, 연결하는 힘도 남는다. 이 힘이 커지는 것이 창작자의 가장 큰 기쁨이다.
AI의 문제는 너무 빨리, 너무 ‘훌륭하게’ 마음에 드는 문장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창작자로서 자신이 원하는 멋진 문장을 AI로부터 뽑아낼 수 있지만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과 힘, 연결망은 전혀 확장되지 않는다. 시장에 팔릴 만한 상품을 내놓는 ‘판매자’로 이익을 보는 기쁨은 있을지언정 자신의 고유함이 확장되는 창작자의 힘, 창작자의 기쁨은 없다. 결과물만을 향유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보는 사람의 정체성은 사실상 창작자가 아니라 AI 소비자에 불과하다. 여기서 학생 창작자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당신이 원하는 정체성은 어떤 것이냐고 말이다.

2023년 5월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있는 ‘20세기 스튜디오’ 앞에서 미국작가조합(WGA) 회원들이 인공지능 글쓰기에 반대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것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되고 싶은’ 정체성이다. 지금 내가 하는 행위로 ‘되고 있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대비시켜 자신의 행위를 고민하고 결단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되고 싶은’ 정체성과 ‘되고 있는’ 정체성이 충돌한다.
이 충돌이 절충되지 않고 모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기성작가들이 아니라 창작자 지망생들이다. 이들이 되고 싶은 것은 창작자이지만 되어가는 것은 AI 소비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AI를 연결하는 힘으로 ‘활용’해 자신의 독창성을 고양하는 창작자의 ‘문턱’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기성작가도 AI를 활용하면서 잃어버린 기쁨에 대해 탄식한다. 과거에는 밤새 끙끙대도 원하는 한 문장이 나오지 않아 아침이면 피곤에 절어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샤워하다 갑자기 멋진 문장이 번쩍 떠오를 때의 기쁨이 있었는데 그런 희열을 잃어버렸다고 탄식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의 역할은 ‘되고 있는 것’을 중지하고 ‘되고 싶은 것’으로 ‘되어보게 하는 것’이다. 되고 있는 것을 내버려둔 채 평가에서 ‘되고 싶은’ 것을 기준 삼는다면 김성우가 쓴 것처럼 ‘읽지 않고 독자로 제시하는’ 부정행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독자로 제시해야지만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교실이 이런 방향에서 고군분투한다. 교실은 내버려두면 세상에서 저절로 되어가는 정체성에 반해야 하는 공간이다. 독자로 제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독자가 되어보는 공간이어야 한다. 고유한 창작물을 과제로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고유한 창작자가 되어보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정체성에 대한 판단은 학생이 하지만 그 선택과 판단을 위해서라도 교실은 세상에 반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기 위해서라면 학교가 왜 필요한가? 바로 세상에 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학교의 쓸모가 점점 없어지는 이유가 따라가지도 못하는 세상의 흐름을 허덕거리며 따라가려다 벌어진 일이 아닐까?)
대표적으로 창작자들이 문장을 연습하고 배우는 수업에서는 강의실에서 인터넷 접속을 아예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단지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구닥다리 교육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AI를 활용하는 힘도 커지지 않는다. AI로부터 좋은 문장을 단번에 추천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끙끙거리며 연결의 힘을 키우는 것이 이 수업의 고유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학습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무단 활용’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AI를 통해 배움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끔 하는 다양한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박준영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과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AI를 수업 시간에 함께 사용한다. 박준영 제공
과제를 하며 AI를 활용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 과제물을 학생과 함께 다시 ‘읽는’ 피드백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학생이 자신을 독자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독자가 되어보는 교실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비평의 경우로 말한다면 독자가 되어 내가 쓴 것에 고유함과 독창성이 있는지를 함께 발견하는 공간이 교실이다. 교실에서는 자기 발견의 기쁨(혹은 부끄러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쁨을 함께 발견해주는 것이 가르치는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너무 빨리, 너무 멋지게 내 것을 만들어주는 AI 시대에 교실은 ‘다시’의 공간이어야 한다. AI를 활용하거나 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활용했더라도, 심지어 전적으로 의지했더라도 그 글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는 교실에서 그것을 다시 읽으면 된다. 다시 읽으며 무엇이 고유한지를, 어떤 고유성이 부재한지를 읽어내면 된다. 그것을 통해 다시 쓰자는 마음이 일어나는 공간, 거기가 교실이어야 하지 않을까?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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