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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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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트럼프의 공통점, 뻔뻔하고 거침없는 중세적 세계관

베네수엘라 ‘포획’하고 그린란드 ‘소유’하려는 영주적 욕망… 그러나 영지 바깥으로 내동댕이친 이들의 재건과 연대의 몸부림 부를 터
등록 2026-01-23 16:56 수정 2026-01-28 09:1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1월20일(현지 시각)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주말을 보낸 뒤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전날 엔비시(NBC)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린란드 매입 협상 불발시 유럽 국가들에 실제로 관세를 부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100%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1월20일(현지 시각)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주말을 보낸 뒤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전날 엔비시(NBC)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린란드 매입 협상 불발시 유럽 국가들에 실제로 관세를 부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100%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AFP연합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난 쿠팡부터, 내놓지 않으면 군사작전까지 불사하겠다며 그린란드를 ‘소유’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심까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현상이 중세적 세계관으로 보면 흥미롭게도 겹쳐 보인다. 둘 다 자신의 욕망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데 너무 뻔뻔하고 거침없다. 말과 행동을 규율하는 보편적 규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고 하더라도 무시한다. 트럼프의 말처럼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보편적 규범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도덕성’뿐이다.

공적 규제가 사라진 ‘중세적’ 현대

중세적 세계관의 핵심은 보편 규범에 의해 규율되는 하나의 무대로서 세계는 소멸하고 대신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 세계가 되는 ‘영지’들로 분할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영지는 완전한 사적 소유물이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 역시 영주의 사적 소유물처럼 취급된다. 이 세계관에서 ‘바깥’은 아예 규범적 대상이 되지 못한다. 포획과 약탈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중세적 세계관을 움베르토 에코는 책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에서 몇 가지 특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중앙권력의 위기 혹은 부재다. 세계적 차원부터 동네 같은 작은 조직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통제하는 권력은 작동하지 않으며 제각각 움직인다. 둘째는 이에 따른 지역의 요새화다. 요즘 아파트 단지들은 울타리를 치고 바깥과 차단한다. 외부인은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공공성은 사유(私有)에 가로막혀 있다. 공적 규제는 존재하지 않고 사적 영역이 사유화되고 영지처럼 운영된다. 군림하는 봉건영주는 ‘리더’가 아니라 ‘보스’가 된다.(중세에 보스가 아닌 리더로 나타난 예외적인 인물 중 하나가 살라딘일 것이다.)

‘기술 봉건주의’의 저자 세드릭 뒤랑은 쿠팡 같은 현대의 거대 플랫폼이 중세의 영지와 같아졌다고 말한다. 플랫폼 소유주(즉, 영주)와 사용자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소유주는 사용자의 활동 역량을 약탈한다. 반면 사용자는 한번 갇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생태계에 속해 있다. 탈출하더라도 갈 곳은 또 다른 ‘영지’일 뿐이다. 에스케이(SK)텔레콤에서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이 일어나 케이티(KT)로 옮겼지만 거기도 다시 유출 사건이 일어나 도로 SK텔레콤으로 돌아가는 것도 같은 이치다. 쿠팡처럼 거의 독점에 가까운 거대 플랫폼은 단일 생태계다. 영지와 영지 사이에는 “악령이 살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숲밖에 없다. 로빈 후드가 되는 것을 각오한 ‘용감한’ 사람들이나 숲속에서 살 수 있을 뿐이다.

중세 영지의 특징은 영지를 ‘소유’한 자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역량’도 소유하고 필요할 때 임의로 포획한다는 점이다. 뒤랑의 말처럼 디지털경제에서 모든 사람은 소유자에게 의존하며 소유자는 사용자를 포함해 생태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포획하고 포식한다. “데이터 수집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포획해야 하는 것은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가 담고 있는 사회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생산보다 포식이라는 약탈이 우선한다. 탈출은 불가능하며 영지를 규율하는 보편적 규범은 작동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자기가 주권자인 영주만 있을 뿐이다.

이 중세는 사실상 보편 규범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의 종말이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각각 요새화되고 요새가 된 영지마다 완전히 다른 규범과 양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각각의 요새화된 영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보편 규범으로 규율되는 다양하게 변주된 삶의 양식들이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는 없고, 완전히 다른 규범에 의해 다른 양식으로 살아가는 제각기 다른 별개의 세계‘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포스트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이다.

바깥은 파괴하는 ‘요새화’ 전략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1월20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루스 소셜 계정에 그린란드로 표시된 지역에 대형 성조기 깃발을 들고 서 있는 합성 그림을 올렸다. 도널드트럼프 트루스소셜 캡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1월20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루스 소셜 계정에 그린란드로 표시된 지역에 대형 성조기 깃발을 들고 서 있는 합성 그림을 올렸다. 도널드트럼프 트루스소셜 캡처


 

포스트아포칼립스의 대표적인 게임 창작물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에 이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종말 이후 생존자들은 다양한 분파를 만들어 제각각 살아간다. 어디는 밀수를 통해 살아가고, 어디는 감염자를 실험체로 삼아 치료제를 개발하고, 종교집단도 있고 군사조직도 있다. 각 분파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생존 방식을 달리하는 다른 ‘세계’들이다. 이들 모두를 규율하는 전체이자 보편으로서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얼핏 세계 전체를 통제하는 중앙권력이 부재하다는 것은 트럼프의 정책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트럼프야말로 세계의 중앙권력이지 않은가? 그러나 ‘돈로주의’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트럼프의 관심은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관심은 ‘바깥’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요새화하는 것이다. 세계 전체를 규율하는 규범을 생산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버리고’ 북미, 즉 미국을 바깥으로부터 안전한 자립적이고 폐쇄적인 생태계로 만들려 한다.

사실 미국이 가장 선을 긋고 싶어 하는 것은 러시아나 중국, 혹은 비서구국가가 아니라 ‘유럽’인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는 트럼프보다 부통령 제이디 밴스가 더욱 적극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들이 보기에 유럽은 문명적으로 글러먹었다. ‘늙고’ ‘아무런 실질적인 힘도 없으면서 허세나 떠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바깥으로부터 미국을 지키면서 유럽과 선을 긋기 위해 남쪽으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포획한 트럼프는 북쪽으로는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위해 군사작전도 선택지 중 하나로 올라와 있다고 말하며 당장은 그린란드 소유에 반대하는 유럽의 ‘동맹국’들에 관세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천명했다.

그린란드 병합이 미국의 요새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미국과 ‘서반구’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지금 ‘골든돔’을 구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알려진 것처럼 골든돔은 차세대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망을 말한다. 최대 수천 개의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 발사 원점을 촘촘히 감시하다가, 우주 기반 요격체로 선제 혹은 미사일 발사 직후 타격하는 시스템이다.

골든돔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그들이 참조한 것은 이스라엘이 구축한 철통같은 방어망인 아이언돔이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아이언돔이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을 방어하는 체계인 데 비해, 골든돔은 북미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세계 전체를 감시하고 선제 타격하는 시스템이다. 요컨대 골든돔은 지역의 요새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요새 바깥도 파괴하겠다는 구상이다.

‘내 생각만이 나를 막을 수 있다’는 트럼프

신난 것은 ‘바깥’ 러시아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로서는 트럼프에게 큰절할 판이다.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당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아예 미국과 유럽이 갈라서는 대서양 동맹의 붕괴는 러시아가 가장 바라는 일이다. 미국이 아니라면 ‘늙고’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한 유럽이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유럽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는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트럼프가 ‘세계’라는 관점보다는 ‘안과 밖’이라는 시선을 가진 것은 명확해 보인다. “국제법은 필요 없으며 나 자신의 도덕성, 나 자신의 생각만이 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트럼프의 말은 황제로서의 선언처럼 보이지만 나머지 세계를 ‘바깥’으로 여기겠다는 말이다. 만일 그 바깥이 제국의 ‘안’이라면 여전히 거기에 작동해야 하는 것은 제국의 ‘보편적’ 규범일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그는 세계의 통치자인 황제라기보다는 ‘안’을 지배하며 ‘바깥’을 내버려두되 필요하면 타격하는 중세적 ‘패권 영주’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는 세계 전체의 질서를 새롭게 정초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바깥은 약탈의 대상일 뿐, 그곳에서 누가 무슨 일을 벌이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미국에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자신이 개입하는 지역에 세계의 표준이 되는 보편 규범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고 파괴하되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규범이 없는 자체 질서로 내버려두는 트럼프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 베네수엘라다. 독재자를 무너뜨렸다면 ‘당연히’ 거기에 보편적인 미국 질서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하겠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친미 극우 성향의 야당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자신이 받은 노벨평화상까지 트럼프에게 바쳤지만, 트럼프는 마차도가 베네수엘라를 이끌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오히려 마두로 정권에서 부통령이던 델시 로드리게스를 높이 평가한다. 이에 맞춰 로드리게스도 겉으로는 미국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미국에 협력하는 동시에 민병대를 동원해 내부 국민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당연히 트럼프는 이것에 대해 알 바 아니라는 입장이다.

폐허 위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

여기서 시선을 바꿔야 한다. 지금을 중세로 보는 것은 철저히 요새 안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다. 반면 요새 바깥이 폐허가 되고 그 폐허가 된 지역에서의 삶은 중세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종말 이후의 삶이다. 발가벗은 생명이 아니라 버려진 생명이다. 미국을 비롯해 몇몇 벙커가 된 요새에 사는 이들은 포획됐을지언정 목숨은 보장받는 삶을 산다면, 그 바깥은 종말 이후를 살아간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와 미얀마,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살고 있는 이들의 지금은 처절한 종말 이후다. 그들은 고립되고 버려진 세계에 살고 있다.

물론 이들은 그 위에서 새 삶을 재건할 것이다. 이들을 죽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폐허 위에 펼쳐지는 이들의 회복탄력성과 역동성을 봐야 한다. 리베카 솔닛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한 말처럼 무릇 천국은 지옥 위에 건설되는 법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지금 종말 이후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들의 재건에 함께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이들은 지금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누가 이들과 연대할 것인가? 중세도 포스트아포칼립스도 아니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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