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극우 감정 탐구, 비이성의 이성적 해부

우리 안의 극우 11. 누가 극우인가 ⑩
예외성·특수성 부각보다 ‘정상세계’에서의 출현 조건 집요하게 분석해야
등록 2025-10-23 23:07 수정 2025-10-30 20:00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단체가 2025년 9월19일 오후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반중 집회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명동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단체가 2025년 9월19일 오후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반중 집회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명동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훌리건’이 정치를 지배한 데는 제도·문화적 이유도 있지만 인간학적 이유도 있다. 그것은 바로 감정(emotion/affect)이다. 극우주의·극단주의·포퓰리즘 정치에서 혐오, 증오, 공포, 자부심, 수치심 같은 감정이 격렬히 분출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극우 현상에서 감정이 중요하다’는 명제는 자칫 오해되기 쉽다. 극우 현상을 단지 비합리적 충동이나 비이성적 광기의 발현으로 고정해버릴 경우, 우리는 복잡한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결과적으로 잘못된 대응을 할 수 있다. 물론 극우 현상은 감정으로 들끓는다. 하지만 그건 다른 정치·사회 현상이나 개인의 생활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자나 연인의 거짓말을 알아차렸을 때, 명절에 모인 친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극우파의 혐오보다 강력한 어떤 감정들 때문에 오랜 관계를 파탄 내기도 한다. 인간세계의 부조리, 비합리, 비이성은 일상이다.

하버마스도 순진하지만은 않았지만…

이렇듯 인간이면 누구나 감정의 위력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이론적·실천적 함의를 도출해내기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강조해두건대 ‘감정으로서의 극우’ 분석은 감정을 통해 극우의 예외성과 특수성을 부각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감정으로서의 극우’ 분석은 이른바 ‘정상세계’에서 극우가 얼마나 쉽게 출현할 수 있는지 드러내는 것, 곧 극우의 보편성과 편재성을 해명하는 작업이다.

감정에 대한 논의는 먼저 이성주의 합리론의 일종인 합리성 규범(norms of rationality) 모델을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이성·합리성과의 관계 속에 감정의 기능과 위치를 설정한다. 다음으로 정치에서 감정이 왜 중요한가, 특히 포퓰리즘, 팬덤 정치, 극우 정치에서 감정이 왜 중요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위한 이론적 선결 문제는 감정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규명이며, 그 작업의 핵심에 바뤼흐 스피노자의 감정론이 있다.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학술적 권위를 인정받은 상당수는 합리성 규범 모델에 속한다. 쉽게 말해 개인과 집단의 행위를 합리적 동기로 설명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철학, 그리고 현대 정치에서 이러한 합리주의 모델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종종 언급되는 이는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그의 이론은 플라톤부터 칸트에 이르는 이성·합리주의 계보에 놓이며 동시대 존 롤스의 정의 이론과도 일정 부분 공명한다.

하버마스는 이른바 ‘공론장’이 근대 부르주아의 정치적 기획임을 보였다. 그는 18세기 서구 부르주아 공론장의 탄생 과정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평등한 지위에서 이성적으로 공적 사안을 논의하는 시민이라는 규범적 인간상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1 하버마스는 근대적 공론장에서 이성적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인간의 이성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잘 설계된 소통 절차만 지킨다면 순수한 이성적 합의를 지향할 수 있음을 보이려 했다.2

그렇다고 하버마스가 순진했던 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완벽히 이성적 존재라고 가정하지 않았으며 생활세계에서 얼마든지 오류를 저지르며 편견에 빠진다고 봤다. 하지만 수학과 철학 같은 영역에서 이해관계를 떠나 어떤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시민 개인들도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더 이성적인 합의에 도달하려 노력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고 그는 말한다.

자연과학자들 논의에도 개입되는 비이성

하버마스의 합리성 규범 모델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먼저 실천 차원에서 자주 제기된 비판 중 하나는 하버마스의 공중, 곧 공적인 대화를 합리적 절차에 따라 나누는 시민이라는 주체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버마스의 근대적 공론장 개념이 균질적 대중과 규범적 이상을 가정함으로써 다원화한 사회 현실과 괴리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론적 차원에서도 많은 비판 지점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진리 발견 절차에 대한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은 은연중 자연과학의 진리 발견 절차를 가치중립적 과정으로 전제한다. 자연과학은 인문학·사회과학 등과 달리 객관성과 주관성을 명확히 구별해 객관성만을 분리해 추구할 수 있다고 가정된다. 그리하여 하버마스 이론에서 자연과학은 일종의 담론적 이상형으로, 다시 말해 역사와 맥락을 초월한 보편적 진리의 자리로 설정된다.

반복하건대 하버마스는 지나치게 순진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전통적 합리성’ 모델, 즉 절대적이고 특권적인 진리 모델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예컨대 자연과학자가 과학적 진리에 직접 접근해 진리 그 자체를 발견한다는 식의 설명에 하버마스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합리성이 의사소통 행위, 곧 ‘타당성 요청의 교환’을 통해 구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버마스가 말한 “타당성 주장의 교환”은, 주장하는 사람의 특수한 맥락에서 개시되지만 보편적 진리를 향한 거의 무제한적인 대화 과정을 통해 각자의 맥락을 초월한 보편성이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주장은 타당한가? 그에 대한 결정적 비판은 다름 아닌 자연과학자들의 진리 발견 절차에 대한 연구, 곧 과학지식사회학(SSK·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학지식사회학의 주요 연구들에 따르면, 과학적 실재에 대한 합의가 반드시 합리적인 타당성 검증 절차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자연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현장 연구를 보면, 자연과학계의 진리 발견은 단순히 타당성 검증 절차를 완벽히 준수하지 못하거나 의도치 않게 일탈하는 정도를 넘어서, 일상적 실천과 관행, 과학자들끼리의 정치적 협상 혹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결과임이 드러났다.3 요컨대 가장 가치중립적이며 이성적일 것이라고 가정된 자연과학자 집단 내부의 논의조차 그리 이성적이지 않았다.

정치, 비이성이 합리성 되는 세계

편의상 지금까지는 ‘이성’과 ‘합리성’이란 말을 섞어 사용했다. 그 둘은 타당성을 추구하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한편으로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이성(reason)은 옳음이나 선함 같은 보편적 가치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개념이며, 그래서 이성은 합리성을 평가하는 상위 기준으로 여겨진다. 반면 합리성(rationality)은 특정 규칙이 일관되게 적용됐는지 평가하는 도구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합리적이라 해서 반드시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 가설을 정치에 적용한다.4 그가 제기한 개념 중 하나가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다. 합리적 무지는 ‘어떤 문제를 학습하는 데 드는 예상 비용이 그 지식이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잠재적 이익을 초과할 때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이를 정치에 적용하면 유권자가 자신에게 덜 중요한 의제를 알려고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무식해지는 게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은 ‘합리적 비합리성’(rational irrationality)을 말한다.5 이는 편견에 빠지거나 몰이성적 신념을 가지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군부독재 시기 많은 한국인이 ‘빨갱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정권에 협력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사실이 전형적인 예다. 이러한 ‘합리적 무지’와 ‘합리적 비합리성’을 합쳐서 ‘합리적 비이성’(rational unreason)이라 표현해볼 수 있을 터다. 이는 유권자에게 무지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동기가 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유권자 유형 중 왜 그토록 ‘벌컨’이 적고 ‘훌리건’과 ‘호빗’이 절대다수인지(제1582호 참조)를 일정 부분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성과 합리성
2025년 9월21일 대구광역시 동대구역 앞에서 열린 ‘야댱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 모습.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2025년 9월21일 대구광역시 동대구역 앞에서 열린 ‘야댱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 모습.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한편 인간의 뇌가 애초에 이성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심리학 연구들이 있다. 정식화하면 ‘이성이 작동하기 전에 감정이 선행한다’는 명제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성과 감정을 기수와 코끼리에 비유한다.6 보통 기수가 코끼리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기수는 코끼리 위에 올라타 있을 뿐 가는 방향은 코끼리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기수는 그저 코끼리가 정한 방향을 사후 정당화할 뿐이다.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중과정 이론’(Dual-Process Theory)을 통해 인간의 판단이 두 층위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7 ‘시스템 1’은 감정으로서, 직관적인 ‘자동 모드’다. ‘시스템 2’는 이성으로서, 의식적인 ‘수동 모드’다. 언제나 먼저 작동하는 건 자동 모드인 감정이며 수동 모드인 이성은 감정의 뒤를 쫓아간다.

여러 근거를 살펴본 결과, 이성과 합리성으로 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이성과 합리성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될까? 엄밀히 말해 진리의 발견이 합리적인 타당성 절차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해서 ‘규범적 이상’으로서 이성과 합리성 추구가 반드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성에 앞서 감정이 선행한다는 사실이 곧장 감정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 점은 미묘하고도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이성과 합리성을 포기할 수 없다면, 혹은 포기하면 안 된다면, 감정의 분석은 모순으로 보이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감정을 분석의 중심에 놓되 해결 방안에서 이성적 목표를 향해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감정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한참 더 남았다.

 

1. Habermas, J.,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An inquiry into a category of bourgeois society’, T. Burger (Tr.), The MIT Press, 1989. 한승완 옮김, ‘공론장의 구조변동’, 나남, 2001

2. Habermas, J.,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Thomas McCarthy (Tr.), Beacon Press, 1984

3. Knorr-Cetina, K., ‘The manufacture of knowledge: An essay on the constructivist and contextual nature of science’, Pergamon Press, 1981. Latour, B. & Woolgar, S., ‘Laboratory life: the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6

4. Downs, A., ‘An Economic Theory of Democracy’, Harper & Brothers, 1957

5. Caplan, B., ‘The Myth of the Rational Voter: Why Democracies Choose Bad Polici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

6. Haidt, J.,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Pantheon Book, 2012

7. Greene, J.,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Atlantic Books, 2013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