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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 만든 것과 같아

[기승전21]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오세훈 시장, 거대물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 중독”
등록 2025-12-04 21:26 수정 2025-12-07 13:19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본인 제공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본인 제공


유네스코는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며 ‘시각적 완전성’을 핵심 가치로 꼽았다. 그런데 건축물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만드는 이 ‘시각적 완전성’이 위태롭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세운4구역 사업을 변경해 고층 빌딩을 세우기로 하면서다. 고도 제한 완화라는 막대한 특혜에도, 정작 민간 개발업체의 천문학적 초과이익을 환수할 제도적 장치는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묘의 문화·역사적 가치와 세운4구역 사업에 대한 생각을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사진)에게 들어봤다.

ㅡ세운4구역에 들어설 고층 빌딩이 종묘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보나.

“서울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메트로폴리탄’이다. 그러나 막개발로 문화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된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우리 정체성의 상징인 종묘 앞에 경관을 해치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둬버린 행태와 같다고 본다.”

ㅡ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보나.

“전세계 오래된 역사성을 간직한 도시는 존엄한 국가의 사당(신전)이 존재한다. 현재까지 ‘예’를 올리는 곳은 한국의 종묘가 유일하다. 종묘는 지난 시대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을 잇고 지켜온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변할 수 없는 그 자체다.”

ㅡ종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보존구역 500m, 완충지역 500m를 설정한다. 1995년 종묘를 우리나라 1호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도 도심 개발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 더는 막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신뢰해 보존구역을 100m로 설정한 것으로 안다. 이번 서울시의 초고층 막개발은 유네스코의 수차례 경고에도 자행됐다. 유네스코의 인내심 한계를 시험하면 큰코다치게 된다.”

ㅡ세운4구역 토지주들이 20년가량 사업이 지연되면서 큰 금융적 손해를 보고 있기에 고층 빌딩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세운4구역 토지의 약 70%는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소유고 20%는 소규모 지주, 10%가 ‘한호건설’이라는 재개발 전문회사 것이다. 즉 선의의 토지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서울시와 SH가 책임져야 하는데, 교묘하게 세계유산 앞 막개발과 강북 재건축 등으로 위장해서 논란을 만들고 있다. 서울시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될 것이다. 진실하면 된다.”

ㅡ오세훈 서울시장이 반대 의견이 있음에도 고층 빌딩 건축을 강행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거대물을 만들어야 하는 프로파간다(선전)에 중독된 것 같다. 다중의 지성보다는 소수의 독점적 의견을 신봉하는 ‘대통령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과 관련된 여러 게이트(의혹)를 덮어버리는 효과를 만들려는 계략이 아닌가 판단한다.”

ㅡ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저밀도 개발을 통해 기존 상인들과 많은 시민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 역사와 문화, 경제가 동시에 살아 있는 공간, 무엇보다 높은 건물이 아닌 드높은 하늘을 보며 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아울러 못 올리는 용적률을 신도시에 팔 수 있는 제도, 즉 용적률 거래제를 속히 도입해 손실을 해결할 방안을 찾기 바란다. 또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은 종로 피맛골 건물과 거리보다 더 가치 있게 보존하기를 바란다.”

ㅡ한겨레21 등 언론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언론사들은 ‘왜?’라고 생각 좀 하기 바란다. 서울시와 한호건설이 주는 내용만 앵무새처럼 옮기지 말아야 한다. 한호에서 내보낸 입장문도 그렇다. 공식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고 기자 개별 메일로 보내온 사적인 편지 같은 것을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보도했다. 과연 한호가 소유한 토지를 매각할 수 있는가? 많은 언론이 신탁·압류된 땅을 어떻게 팔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에 대해 ‘왜?’라고 묻지 않는다. 이번 한겨레21은 탐사보도에 큰 획을 그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더욱 신뢰한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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