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대 대법원장이 2025년 9월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5년 3월7일 지귀연 재판부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했다. 검찰이 구속기간 만료 뒤 기소했다는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들었다. 그동안 날짜 단위로 구속기간을 계산해온 71년 관행을 허물고 시간 단위로 계산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을 권리는 피의자 인권을 고려한 원칙이고,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건 형사사법 절차의 대원칙이다. 그러니 절차적 흠결이 있다면 구속 취소가 맞다. 문제는 이 원칙이 유독 윤석열에게만 적용됐다는 점이다. 검찰과 법원은 다른 피의자들에겐 다시 날짜 단위로 구속기간을 산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원칙이 원칙일 수 없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특혜였다. 동시에 사법권력이 권력과 자본에만 굴종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 2646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해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2010년 회사가 해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손실을 과다계상하는 등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4년 노동자들의 주장을 인정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다”며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재판이 4년 동안 이어지는 사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은 2009년 6명, 2010년 5명, 2011년 8명, 2012년 4명, 2013년 1명, 2014년 2명 등 모두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급히 찾아온 병으로 숨졌다.
대법원이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게 해달라는 노조의 소송을 2018년 12월부터 7년째 심리하며 시간만 허비하는 것도 같은 결의 문제다. 대법관들을 일컫는 ‘서오남판’(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판사 출신)이라는 표현처럼, 엘리트로만 채워진 사법부가 누구보다 절박하게 판결을 기다리며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니 사법개혁의 핵심은 권력과 자본에 쉽게 굴종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엔 관심 없는 사법 엘리트 체제를 최소한 민주적으로 통제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해체하는 것이 돼야 한다. 대법원장이 정점에서 법원행정처를 조종하며 중앙집중식, 밀실형 법관 인사로 개별 법관을 압박하는 폐쇄적 위계를 없애는 조처가 우선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신 사법행정위원회나 사법평의회 등을 만들어 여성과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를 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식재산·금융·노동 등 전문 사건에 대한 전담 법관제를 시행해 전문적이면서도 ‘신속한 재판을 받을 기본권’(헌법 제27조 3항)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법관 증원은 이런 구조가 바탕이 된 상태에서 추진돼야 사법 민주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권여당의 사법개혁 속도전을 보면 의구심이 든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몇 개월 동안 뚜렷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조희대 대법원장의 ‘4인 회동’ 의혹을 제기해 개혁 동력과 신뢰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사법개혁 세부 의제는 입장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한겨레21이 깊은 우려를 담아 사법개혁의 본질을 되새기는 표지이야기를 쓴 까닭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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