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규 변호사가 2025년 9월24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원곡 분사무소에서 여권이 추진하는 사법개혁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헌법은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해 제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했다. 이 조항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장치이자 수단이다. 따라서 법관의 독립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보다 결코 우선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법원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일례로 현행 ‘형사보상법’에 따라 일반 재판 또는 재심 등의 절차에서 무죄 선고가 확정된 피고인은, 그 전에 수사기관과 법원에 의해 구치소나 교도소에 구금되거나 형 집행을 받은 일이 있다면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청구를 접수한 법원은 6개월 안에 보상 결정을 ‘해야 한다’. ‘할 수 있다’가 아니다. 이런 보상 청구는 법원 합의부(3명 이상의 판사로 구성)에서 재판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진정사건 처리가 늦어지면(3개월 이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처리 지연 사유를 적어서 진정인에게 서류로 통지해요. 사람이 하는 일이니 기한을 넘길 수도 있죠. 그런데 법원은 아예 그런 통지가 없어요. 왜 보상 결정이 늦어지는지 법원에 전화해도 지연 사유를 알려주지 않아요. ‘기다리라’는 말만 해요. 6개월 안에 보상 결정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법에 엄연히 있는데 안 지킨다? 그리고 법정 기한을 안 지켜도 아무 말이 없다? 과연 어떤 공무원이 그렇게 할 수 있죠? 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게 법관의 독립은 아니잖아요. 사법부의 독립을 모든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역처럼 여기는 것이 지금의 사법부입니다.”
납북귀환 어부 인권침해 사건(1968년 납북됐던 선박 12척, 선원 107명이 귀환 후 수사기관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하고 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처벌받은 사건)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공익신고자, 장애인, 이주민,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인 사건을 다수 맡아온 최정규(48) 변호사(법무법인 원곡)가 한 말이다. 인권침해나 차별에 취약한 사람들을 대리하며 재판에 참여해온 최 변호사 눈에, 지금의 사법부는 사법권(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권한)이 아니라 사법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에 가깝다.
이러한 권력의 행사로 많은 시민은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받고, 판결 이유가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은 판결문을 받고, 법관으로부터 “주제넘은 짓을 했다”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듣고,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재판 기일이 변경되고,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 넘게 걸리는 일이 허다해 오랜 시간 고통받는 피해를 겪고 있다. 이런 시민들의 고통을 해소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출발이라고 말하는 최 변호사를 2025년 9월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원곡 분사무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14명(대법원장 포함)인 대법관 증원이 필요할까.
“필요성은 있다. 다만 현행 심리불속행제도(법률이 정한 요건에 따라 대법원이 별도의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최소한 1심 판결과 2심 판결이 엇갈렸을 때는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을 하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법은 원심 판결(2심)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등 특정 요건이 아니면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도록 하는데, 이 요건에 1·2심 판결이 서로 다른 경우는 포함돼 있지 않다. 대법원이 이런 경우를 심리불속행하지 않고 심리할 수 있을 정도의 대법관 증원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법관 증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하급심 법관 증원이 더 시급하다.”
―하급심 법관 증원이 더 시급한 이유는.
“대법원의 충실한 심리도 필요하지만, 그 전 단계인 1·2심에서 사실심(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이 실제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검토)을 강화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법률심(원심의 법률 해석·적용이 적절한지 검토)을 하는 대법관을 아무리 늘린다고 해도 1·2심 법관만큼 늘릴 수는 없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에서도 초동수사가 중요하듯이 재판에서도 하급심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법개혁이란 무엇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종영 전 대법원장이 2003년 8월22일 사법개혁의 공동 추진에 합의함에 따라 대법원 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가 설치된 적이 있다. 그 근거 규정인 사법개혁위원회규칙(2021년 4월30일 폐지)은 사법제도 개혁의 기본이념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①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사법제도 ②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의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는 사법제도 ③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제도 ④국민의 인권 보장을 강화하는 사법제도 ⑤전문적 법률지식, 국제적 경쟁력 및 직업윤리를 갖춘 우수한 법조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사법제도.
그러나 지금도 국민의 사법 신뢰도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가 발간한 ‘2023 한눈에 보는 정부’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2021년 조사 기준으로 ‘법원과 사법시스템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오이시디 평균(56.9%)보다 낮은 49.1%로 조사됐다. 신뢰도가 높은 국가 순으로 보면 조사 대상 20개국 중 15위에 그친 수치다. 최 변호사는 국민의 사법 신뢰도가 낮은 이유로 “최하위 수준의 사법 서비스”를 꼽는다.
“예를 들어 내일이 선고기일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하루 전날 기일이 연기되거나 당일에 연기될 때가 있어요. 아니, 그러면 기일을 변경한 사유를 재판부가 (사건 당사자와 변호인에게) 알려줘야 하잖아요. 안 알려줘요. 법원 누리집에 있는 재판부 전화번호로 전화해도 담당 사건 판사랑 직접 통화를 못해요. 다른 직원이 받아서 ‘판사님이 연기한다고 얘기했는데 사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답변밖에 못 들어요. 그리고 오전 10시에 재판이 열린다고 해서 법원에 갔어요. 약속이잖아요. 그런데 앞 사건이 밀렸다고 해서 기다리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1분 재판하는데 40~50분 기다리면 화나잖아요. 그때 어떤 판사들은 ‘부득이하게 재판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런 말조차 안 하는 판사가 더 많아요.”
―법원의 ‘소액사건’ 처리 방식도 계속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사사건의 약 70%를 소액사건(현재 소송 목적의 값이 3천만원 이하인 사건)이 차지한다. 그런데 사법부가 이렇게 많은 사건을 소수 판사에게만 분담한다. 숫자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만일 민사사건 담당 판사가 100명이라면 100명 중 70명이 이 많은 소액사건을 처리해야 하는데 10%도 안 되는 규모의 판사만 소액사건에 투입한다. 왜? 왜 대기업들의 100억원대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은 합의부 재판을 받게 하고, 왜 2천만원 상당의 의료 민사소송(의료인의 의무 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을 청구한 국민은 소액사건이라고 해서 단독 판사가 2년 넘게 재판을 진행하고, 왜 국민은 나중에 판결 이유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판결문을 받아야 할까. 그건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법부가 사법 자원을 그렇게 임의로 배분한 것이다. 이런 일을 국민의 70%가 겪는 셈인데, 이처럼 판사가 내 사건 기록도 제대로 안 본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어떻게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까.”

조희대 대법원장이 2025년 9월17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차에 올라타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피해자 처지에서 역지사지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법관도 만나는지.
“사안마다 다르지만, 특히 장애인 차별 사건은 판사들이 대체로 공감을 잘 못한다. 보행 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이 장애인 콜택시 탑승을 거부당한 차별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성남시가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으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한 사건인데, 이분은 휠체어 낙상사고를 여러 차례 겪어서 의사로부터 휠체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금지’ 행위이기 때문에 성남시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 재판부가 ‘장애인 사이의 불평등은 차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분이 보행 장애가 없는 장애인이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이분은 휠체어를 사용하지 못할 뿐 보행 장애가 있어서 장애인 콜택시를 탈 수 있는 분이다. 항소심에서 바로잡은 황당한 판결 중 하나다.”
좋은 재판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법관이 사건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정성을 기울여 충실한 심리를 하고, 당사자 이야기를 재판부가 충분히 듣는 것이 시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바람이다. 이를 위해 최 변호사는 ‘재판 과정 녹음·속기 의무화’와 ‘위자료의 현실화’를 제안했다.
―재판 과정 녹음·속기 의무화란.
“지금도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에 따라 사건 당사자가 재판 과정 녹음·속기 신청을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재판부는 당사자 신청대로 녹음·속기를 명한다. 그런데 의무는 아니다. 국회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회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자 회의를 영상으로 녹화하고 국회 누리집에 공개한다. 노동자가 해고 등 사용자로부터 받은 불이익을 구제받기 위해 설치된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당사자 요청 없이도 심문 과정을 녹음한다. 녹음·속기 의무화는 시민이 법원을 감시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다. 법관의 부적절한 언행, 부적절한 재판 진행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녹음·속기를 신청하면 판사가 왜 신청하는지 되묻는다. 신청 철회를 권유하기도 하고, 불쾌해한다. 그래서 지금 있는 제도도 잘 활용할 수 없다. 판사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녹음·속기를 의무화하면 이렇게 판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반대하는 판사들은 재판 독립권 침해를 우려하는데, 헌법에 따라 재판 심리와 판결은 공개가 원칙이다. 녹음·속기가 왜 독립권 침해인지 이해할 수 없다.”
―법원이 위자료를 산정할 때 어떤 문제점이 있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인정된 손해배상액은 7천만원이다. 그런데 30~40년 동안 사찰당하고, 50년 동안 ‘간첩 자녀’라는 낙인이 찍힌 납북귀환 어부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액수가 7천만원이다. 말이 안 된다. 어떻게 특정 정치인의 명예와 국가폭력 피해자의 명예를 이런 식으로 등가를 매길 수 있나. 현재 대법원 산하에 양형위원회가 설치된 건 법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한 양형 편차를 줄이고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액 같은 위자료를 산정할 때도 법관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가칭 ‘위자료위원회’ 같은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 위자료도 시민들의 상식선에 맞출 필요가 있다.”
법원이 아무런 외부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으려고 깊이 박아놓은 말뚝을 뽑기 위해 최 변호사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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