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24년에 기후위기 시대의 진로 탐색 인터뷰집 ‘좋아하는 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이하 ‘좋아지구’)을 펴내고,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2025년 2월, 부산 동래여자중학교 인문학 교실을 담당하는 김성현 선생님께 전자우편을 받았다. 전자우편에는 인문학 교실에 대한 자부심 어린 소개가 담겨 있었다. 14년 전통의 청소년 희망의 인문학 교실은 2025년 ‘정의롭게 겸손하게’라는 주제 아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큰 질문을 함께 나눈다고 했다. “바닷가 아이들”을 만나러 꼭 와달라는 초대에 나도 기꺼이 응하고 싶었다.
일상화된 기후재난을 체감했던 여름을 지나, 뒤늦은 휴가를 겸한 부산행을 기다렸다. 그사이 설렘을 더해준 일이 있었다. 인문학 교실의 독후 수업을 맡은 김민정 선생님이 한 달 동안 학생들이 ‘좋아지구’를 읽고 활동한 내용을 매주 정리해 보내주신 것이다. 사진 속 손글씨를 확대해 읽으며, 나도 몰랐던 내 인터뷰 방식의 특징까지 짚어준 학생들에게 감동했다. 만난 적 없는 이들이 건네준 다정한 피드백에 보답하고픈 마음으로 학교를 찾았다.
강의 장소인 동래여중 도서관은 1895년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답게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었다. 구한말 시기의 사료가 보존된 서고가 따로 있을뿐더러, 졸업생인 이해인 수녀님의 전작이 전시돼 있었고, 인문학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쓰고 펴낸 책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도서관 곳곳을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삼삼오오 들어온 학생들로 도서관이 가득 찼다. 강의에서는 기후위기의 의미와 한국의 청년·청소년 기후 단체들을 소개하고, 미국의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의 말을 인용해 “희망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질의응답 시간은 언제나 긴장된다. 질문이 하나도 없어도, 너무 어려워도 난감하다. 그래도 어려운 질문 쪽이 낫다. 좋은 질문이라면 같이 고민해보자고 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책을 읽은 학생들이 미리 적어준 질문이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건 “제가 원하는 일이 환경을 해치는 일이라면 포기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비슷하게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친환경적인 직업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물음도 이어졌다.
“환경을 해치지 않는 일이 있을까요?” 나는 되물었다. 인류의 삶 자체가 오랫동안 자연을 착취하는 구조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직업 자체에 있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이 어떤 맥락 속에 있고, 어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태도다. 질문한 학생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다. 항공업계는 지구 생태계를 크게 해치는 영역 중 하나지만, 동시에 탄소중립을 위해 반드시 전환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과정을 직접 이끌어야 한다. 그 일이 자기 적성과 맞고 가슴을 뛰게 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은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던져져야 한다. 생태적이고 지구적인 관점에서, 내가 하는 일이 어디에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묻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럴수록 청소년은 더 많은 길잡이를 만날 것이다.
지구에도 자신에게도 좋은 일과 만나는 행운이 모두에게 허락되길 바라며, 나는 벌써 ‘좋아지구’의 후속편을 상상한다. 인터뷰하고 싶은 분이 너무 많다. 언젠가 오늘의 청소년들도 그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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