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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싸움은 싸우지 않는 싸움

현자의 대화 ‘촘스키와 무히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록 2025-05-29 20:52 수정 2025-06-05 07:13
사울 알비드레스 ‘촘스키&무히카’ 한 장면. 시대의창 제공

사울 알비드레스 ‘촘스키&무히카’ 한 장면. 시대의창 제공


“민주주의는 의사결정권을 국민에게 분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하죠.”(호세 무히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야말로 생태 재앙과 핵 재앙에 맞설 수 있는 주요 방어선입니다.”(노엄 촘스키)

‘촘스키와 무히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사울 알비드레스 지음, 최사라 옮김, 최명호 감수, 시대의창 펴냄)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인들에게 여러 질문과 현답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1988년생으로 멕시코 출신 활동가 겸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2012년 학생운동을 주도했다가 좌절하고 엠제트(MZ)세대를 겨냥해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와 미국의 진보 지식인 노엄 촘스키의 만남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이 책은 2017년 촘스키와 그의 배우자인 발레리아 와서먼(변호사)이 우루과이에 있는 무히카와 루시아 토폴란스키(전 우루과이 부통령) 부부의 집을 찾아 주고받은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책은 신자유주의와 네오파시즘, 테러·마약과의 전쟁, 몰락하는 미국,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의제, 중국 패권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우선, 세계적 원로인 두 사람의 직설화법이 후련하다. 촘스키는 “좌파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문턱에 서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다수의 종이 사라지는 환경 재앙과 핵, 전염병 위협을 거듭 경고했다. 무히카는 좌파들이 사회의 생산과 분배 관계만 바꾸면 사회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고백했다. 이에 촘스키는 자본주의의 교리 자체가 ‘분리’를 획책하기 때문이라며 “함께 일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없애려는 거”라고 맞장구쳤다.

무히카는 젊은 시절 글 한 자 읽을 수 없는 독방 감옥에서 7년을 보낸 불굴의 전사답게 ‘진정한 승리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과학, 스포츠, 예술, 햇볕 아래 누워 있기 등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격려했다. 작은 것이라도 삶의 원동력을 손에 쥘 때 강요된 상황을 거부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젊은 세대의 당면한 중요 이슈인 젠더 문제를 충분히 공략하지 못해 아쉽다. 각자의 배우자들이 그들 못지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적 동지임에도 낭만적인 동반자로 여기는 관점 또한 ‘옛 세대’라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생태적 위협을 돌파하려는 실천이 ‘원주민’(선주민)들에게서 나온다고 밝히는 촘스키의 통찰이나 “가장 나쁜 싸움은 싸우지 않는 싸움”이라며 건투를 비는 무히카의 마지막 인사에서 용기를 얻기에 충분하다. 2025년 5월13일 세상을 떠난 무히카의 사망 직후 서점에 배본된 이 번역서는 독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즉시 재쇄를 찍었다. 300쪽, 2만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권력과 공간
신혜란 지음, 이매진 펴냄, 2만1천원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 등으로 도시 정치 연구를 꾸준히 선보여온 신혜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일상의 정치적 공간을 분석한다. ‘내 공간’의 시작과 끝인 ‘몸’부터 헬스장, 집, 마을, 도시 공간, 국가와 사회, 나와 세계 등 권력과 공간을 재사유하는 관점이 돋보인다.

 

 


벤야민과 기억
윤미애 지음, 문학동네 펴냄, 2만원

“망각이 없다면 기억도 발생하지 못한다.” ‘발터 벤야민과 도시 산책자의 사유’ 이후 5년 만에 출간된 독문학자 윤미애의 베냐민 연구서. ‘기억’이라는 열쇳말로 핵심 사상에 접근한다. 망각된 것은 억압된 것이고, 기억은 지배 질서를 전복하는 힘이 있다고 밝힌다. 줄 치며 읽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떠나는 수밖에
김남희 지음, 수오서재 펴냄, 1만7500원

다정하고 겸손한 23년차 여행작가 김남희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키르기스스탄, 조지아, 산티아고, 프랑스,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나미비아, 루마니아까지. 느리게, 불편하게, 덜 알려진 곳도 기꺼이 찾아가는 여행의 이유. 낯선 이의 호의에 기대어 한 걸음 내딛는 이야기에 이번에도 속수무책 빠져든다.

 

 


예술이라는 일
애덤 모스 지음, 이승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 5만4천원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화가 애덤 모스가 48명의 유명 현대 예술가를 만났다. 루이즈 글릭, 마이클 커닝햄 등 문인들을 비롯해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등. 아름다운 이미지와 깊은 내용으로 ‘예술가의 백과사전’이라는 상찬이 아깝지 않고, 책의 만듦새 또한 독자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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