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6·3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의 재산 내역이 공개됐다. 그래봤자 나에겐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 공직선거법에 따른 절차라지만 재산 공개는 어떤 반향도 일으키지 않는다. 재산 규모를 능력의 척도로 삼는 경향이 나날이 강해지는 사회에서 재산 공개는 어떤 후보가 더 ‘현명한 재테크’를 했는지 겨루는 장,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공직자 재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부동산. 어떤 땅은 깔고 앉아만 있어도 서너 배는 거뜬히 오른다고 했다. 그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의심하는 건 좀 도태된 삶. 보통은 투자 안목과 정보력에 감탄한다. 땅과 집의 소유 문제를 거주 정책이 아닌 부동산 정책이라 부른 지는 오래됐다. 땅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자산을 증식하려는 욕망은 당연하다 못해, 선량한 것이다. ‘퓨어’한 욕망. 여기에는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사유재산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기에. 이 믿음은 개인의 소유라는 개념을 넘어, 사회의 개입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실에선 법의 제약을 받을지언정 재산 증식이 오롯이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게 자본주의니까.
그런데 ‘퓨어’한 자산이 있던가. 부정 축재를 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땅이 그저 땅이 아닐 뿐이다. 거기에는 나무도 있고, 새도 있고, 노루도 있고, 논밭도 있고, 사람도 있다. 산이 팔리면 터널이 생기고, 농지가 팔리면 논이 갈아엎어지고, 건물이 올라가면 철거민이 생긴다. 지하철 노선이 신설돼 집값이 오르는 일의 인과관계 끄트머리에는 싱크홀이 생겨 이동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다. 땅이 깔고 앉아만 있어도 자산일 수 있는 이유는 ‘개발’이라는 단어를 품었기 때문이다. 파헤치고 부수고 짓고 세울 가능성이 있어야만 땅은 자산이 된다.
말은 이렇게 해도, 실은 내게도 땅이 있다. 그것도 제주도 푸르른 곳에. 며칠 전에 안 사실이다. 우리를 이끌고 숲으로 들어간 해설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의 땅이 있어요.”

희정 제공
이곳은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산3-38, 화순곶자왈 어느 중턱. 곶자왈이란 나무와 덩굴이 엉클어진 형태로 수풀이 우거진 곳을 가리킨다. 1만 년 전 분출한 용암이 굳어 암석이 되고, 나무와 덩굴이 암석을 감싸안고 뿌리를 내렸다. 예전에는 가시덩굴로 접근이 어려워 불모지 취급을 받았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시간 동안 곶자왈은 지하 샘물을 만들고, 각종 식생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이 됐다. 그러나 제주가 개발 열망에 들썩이자, 불모지는 자산이 된다. 수많은 곶자왈이 사라졌다.
화순곶자왈과 멀지 않은 곳에선 곶자왈을 싹 갈아엎고 그 위에 영어교육도시를 세웠다. 국제학교가 들어선, 설핏 보면 강남 도심 같은 거리에 10여 년 전만 해도 가시딸기와 개가시나무, 녹나무가 살았다는 사실은 잊혔다. ‘땅값 상승률 전국 최고’라며 분양 홍보하는 아파트 사이로 작은 공원 하나가 ‘곶자왈’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민오름 곶자왈, 거문오름 곶자왈, 노꼬메오름 곶자왈….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제주 곶자왈을 지키기 위해 땅을 사들이는 사람들(곶자왈사람들)이 있다. 일명 국민신탁 운동. 곶자왈 땅 일부를 매입해 그곳을 자연환경국민신탁 재단에 기탁하는 방식이다.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에 따라 이 땅은 보존된다. 매입도 개발도 불가하다. 그렇게 화순곶자왈에 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모두의 땅이 생겼다.
“여기는 ‘곶자왈사람들’의 땅도 아니고, 모금해주신 분들의 땅도 아니에요. 자연환경국민신탁 땅도 아니고요. 우리는 이 땅을 기탁했을 뿐이지, 이곳은 여러분의 땅이에요.”
내 인생에 처음으로 가져본, 내 것이 아닌 땅에 새순 같은 잎사귀를 지닌 덩굴이 고목을 타고 오르고 있다. 땅은 자산일 수 없다는 도태된 생각을 해본다.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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