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5·18민중항쟁에 대해 알게 된 게 언제였을까? 정확한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광주에 남쪽으로 인접한 소도시들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내게 5·18은 삶의 바탕이 된 기억으로 스며 있었다. 1980년은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두 사람이 만나기도 전이었는데, 그 일이 어떻게 내 기억이 돼온 걸까?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과 금빛으로 물든 평야처럼 마음과 눈에 익고, 세대를 거듭해 호흡해온 공기처럼 세포와 장기를 통과해 영혼에 새겨지는 걸까?
내게 각자의 구체적인 기억을 전해준 건 선생님들이었다. 광주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그때 대학생이었고, 그해 5월 광주에 있거나 없었지만 모두가 기억은 갖고 있었다. 수업이 지겨울 때, 눈 반짝이며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들려준 게 바로 그 이야기였다. 우리가 기대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 또한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건 맞았다. 같은 교실에 앉아 이야기 듣는 친구의 가족 중에도 그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이 있었고, 그럴 땐 그 친구의 표정도 함께 살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려보게 된다. 그때의 결연한 풍경을, 사람들의 숭고한 얼굴을, 나라면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하는 겁나고 슬픈 상상과 함께.
그렇게 자라서 대학생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례로 서거한 다음해인 2010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다. 캠퍼스에서 만난 많은 학생과 5·18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그즈음 ‘일베’를 필두로 ‘밈’화하기 시작한 전라도 혐오 표현은 5·18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과 이어져 있었다. 가능하면 그런 표현 자체를 접하지 않으려 했지만, 온라인 기사 댓글난처럼 피할 새도 없이 칼 같은 말을 맞닥뜨리면 심장이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할 수 없다는 것에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되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역사를 지우고 오해 속에 묻으려는 조직적이고 전략적이며 지배적인 힘이라는 문제가. 내가 보는 댓글들은 그 힘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거였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날, 책을 다 읽고 남은 하루 동안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읽는 것만으로도 이러한데 도대체 어떻게 쓴 글일까 싶었다. 쓴 사람은 살아낸 사람의 고통과 용기를 극진히 대하며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을 수행했다.(인용은 2017년 2월3일 ‘노르웨이 문학의 집’에서 5·18에 대한 기억을 말한 한강 작가의 강연에서 따왔다) 우리가 그 길을 계속 따라 걸을 수 있을까? 여전한 절벽을 보며 움츠러드는 시기에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이 일의 의미를 자꾸 음미하고파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사람들과 순전한 기쁨으로 연결되기란 얼마나 드문 일이던가. 그 기회가 고팠다.
다음날,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희망으로 가득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일어나자마자 문 앞에 놓인 신문에 커다랗게 인쇄된 한강 작가의 사진을 보았다. 그 옆으로 동성혼인 평등소송 시작을 알리는 기사도 나란히 있었다. 종이신문 1면으로 기쁜 일을 만나는 아침이 생소했고, 어제부로 다른 세계가 온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이 그토록 감격스러웠을까. 앞으로 이 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리가 믿는 것과 살아가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문학의 힘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었다.
서점에도, 도서관에도 한강 작가 책이 있던 자리가 텅 비었다. 이제 그 책들은 우리 삶의 터전 곳곳으로 찾아 들어가 지극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그 이야기에 공명하는 사람이 늘어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고마움에 눈물이 난다.
김주온 ‘좋아하는 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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