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긴 시간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어요. 고맙습니다.”
감사는 사소함에서 오기도 한다. 70대 후반의 정수(가명)님은 한 대학병원에서 무려 10여 곳의 진료과와 전문센터에 내원하고 있었다. 원래 심장 판막 문제로 흉부외과에서 수술받은 뒤 순환기내과에서 약물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지러움이 심해 신경과에서 검사했지만 명확하지 않아 이비인후과 검사를 받았다. 다리 통증을 치료하고자 하지정맥류 수술도 받았다. 어깨 근육 문제로 동네 정형외과도 찾았다. 그 외 안과, 비뇨기과, 간암 센터 등등.
보건소 소개로 방문진료를 통해 처음 만난 의사인 나에게 그간 병력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줬다. 이야기 중에도 쪽지에다 나중에 대학병원 교수에게 물어볼 내용을 적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과에 가보라고 연결해줬다고 했다. 다만 어느 한 곳에서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계속 관리받으면 좋겠지만 고령에 중증 심장질환을 앓고 있어 그것도 쉽지 않다. 온몸이 아프지만 인지도 또렷하고 거동도 어느 정도 가능해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하기는 애매한 상황이다.
이혼 뒤 자녀들과도 연락이 끊겨 오랫동안 혼자 살았지만 이제는 어지럼증, 허리, 무릎의 극심한 통증으로 일상이 버겁다. 넘어질까 위태로운데 그리 가깝지 않은 대학병원엔 어떻게 다니는지 묘했다. 여기서 증상이 더 악화하거나 심지어 넘어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단계에 접어들어야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 참 야속하다. 방문진료 의사인 나 역시 당장 뭔가를 해드리기가 어렵다. 일단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의뢰해준 보건소와 긴밀히 상의하며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자고 이야기했다.
“여러 과를 전전하며 약이 계속 늘어요. 어느 한 곳에서도 약을 정리해주지 않아서 약을 먹고는 있는데 너무 많으니 불편하죠.” 정수님의 불편함이 검사와 약으로 깔끔하게 해소되길 바라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보기엔 개선되기 힘든 증상들도 있다.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해 보인다. 병원을 자주 찾으며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메모하는 노력이 귀하지만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떤 증상이 하나의 진단명으로 정확히 확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증상에 따라 검사를 진행해도 명확한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여러 검사를 해본 끝에 문제를 명확히 발견하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검사를 위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지출이 심하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본인도 만족스럽지 않다. 구깃구깃한 쪽지에 담긴 질문에 누구도 확실히 대답해주지 못했다. 차근차근 방법을 찾아가며 어떤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라야 한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몸에 대한 소통을 이어나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돌봄서비스 혹은 주거 개선 등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병원에 가는 노력으로 하루 한 번 복지관을 찾아 식사하며 사람들을 만나볼 필요도 있다. 쉽진 않겠지만 조금씩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과거 유랑악단 소속으로 떠돌며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길 바라보았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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