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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도착해서 자쿠지 목욕… 이웃에 ‘관광객’이 이사 왔다

서촌 사는 기자의 ‘ 오버투어리즘’ 체험기 | 관광객 급증으로 주민들 계속 떠나… ‘주거’가 우선인 한옥 보존의 원래 목적 되새겨야
등록 2024-08-03 11:37 수정 2024-08-09 10:48
서울 종로구 북촌에서도 국내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골목은 북촌로11길이다. 이 주변에 한옥 체험업소가 급증하고 있다. 북촌로11길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들. 김규원 선임기자

서울 종로구 북촌에서도 국내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골목은 북촌로11길이다. 이 주변에 한옥 체험업소가 급증하고 있다. 북촌로11길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들. 김규원 선임기자


세계적 관광 도시인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면 현지 주민들이 쏘는 물총을 맞을 수 있다. 시민들이 관광객 방문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산토리니섬 등 주요 관광지 입장 인원을 통제하고 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선 도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전세계가 ‘오버투어리즘’에 몸살을 앓으면서 내놓은 나름의 대책들이다. 한국의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 사는 기자가 서촌과 북촌의 ‘오버투어리즘’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8년 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서촌의 한 골목으로 이사 왔을 때는 빈집이 한 채뿐이었다. 집 주변의 한옥과 단독주택 20채 가운데 한 집만 비어 있었고, 모두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5~6년 전 우리 골목의 끝집이 대수선되더니 사무실을 거쳐 2~3년 전 프랜차이즈 한옥 체험업소(한옥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에 큰 골목의 북쪽 입구 집이 대수선되더니 역시 한옥 체험업소로 바뀌었다. 이어서 큰 골목의 중간쯤에 있던 집이 역시 한옥 체험업소로 바뀌었다. 이 집은 원래 주인이 ‘서촌에서 가장 먼저 고친(대수선한) 한옥’으로 자랑하던, 이 골목에서 가장 깔끔한 한옥이었다.

밤늦게 도착해서 전화해 음식을 시켜 먹고…

우리 골목 끝에 한옥 체험업소가 들어서면서 생활에 변화가 나타났다. 먼저 여행 트렁크 굴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통상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여행자들이 골목 끝에 있는 한옥 체험업소로 들고 나는 소리가 났다. 어떤 여행자들은 밤늦게 도착했다. 둘째로 여행자들이 한옥 체험업소 대문 앞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통화를 하거나 누군가 도와주러 온 뒤에야 조용해졌다. 셋째는 저녁이나 밤에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자주 들렸다.

더 의미심장한 변화는 주민이 줄었다는 점이다. 우리 골목 끝집 부부는 맞은편 큰 골목의 다른 집으로 이사했지만, 큰 골목 입구의 집과 큰 골목 중간의 집 가족은 이 동네를 떠났다. 맞은편 작은 골목의 오른쪽 둘째 집도 사무실로 바뀌었다.

이런 급속한 변화에 대해 동네 이웃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서촌 체부동의 한옥에서 20년 가까이 사는 최문용씨가 말하는 주변 상황은 우리 골목보다 더 심각했다. 최씨는 “집 주변의 4~5채 한옥이 모두 체험업소로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다 주민들이 살던 곳인데, 한 7~8년 전부터 한옥 체험업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도 골목의 한 집을 한옥 체험업소로 바꾸는 중”이라고 말했다.

왜 주민들이 살던 한옥이 이렇게 급속히 한옥 체험업소로 바뀔까? 하나는 한옥 소유자가 노인이거나 유산으로 물려받은 자녀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스스로 한옥을 고쳐서 살거나 임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둘째는 한옥에 대한 관리 경험을 가진 한옥 체험업소에 임대하는 것이 한옥을 대수선하거나 관리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통상 한옥 체험업 사업자는 대수선도 도와주고, 소유자와 5년 정도의 임대 계약을 맺어서 운영한다.

북촌로11길의 서쪽 골목은 주택가였으나, 최근 한옥 체험업소가 늘어나고 있다. 북촌로11라길에 들어선 버틀러리의 한 한옥 체험업소. 김규원 선임기자

북촌로11길의 서쪽 골목은 주택가였으나, 최근 한옥 체험업소가 늘어나고 있다. 북촌로11라길에 들어선 버틀러리의 한 한옥 체험업소. 김규원 선임기자


최씨에게 주변 한옥들이 체험업소나 가게로 바뀌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최씨는 동네에서 이웃들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이웃과 친하게 지냈고,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다. 오랫동안 이웃과 소통하며 살아왔는데, 이웃들이 떠나고 사람이 적어지니 인간관계도 줄어들었다.”

한옥 체험업이 시작된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서촌에 들어선 한옥 체험업소는 75곳이다. 서촌의 한옥이 600채 정도 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10% 이상이 한옥 체험업소로 바뀐 것이다. 또 북촌의 한옥 체험업소는 127곳인데, 북촌의 한옥이 1200채 정도 되니 역시 10%를 넘겼다. 서울 전체에 들어선 한옥 체험업소는 2023년 모두 249곳인데, 이 가운데 212곳(85.1%)이 종로구에, 종로구에서도 북촌과 서촌에 202곳(81.1%)이 몰려 있다.

혼자서 대응 안 되자 주민 모임으로 항의

사실 상업화, 관광지화로 인한 어려움은 서촌보다 북촌이 더 이르고 더 심하다. 북촌은 서촌보다 한옥이 더 많고, 한옥 체험업소도 더 많고, 상업시설도 더 많다. 최근 한옥 체험업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북촌 주민 두 사람을 만났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살고 있는 서채홍씨와 김성미씨였다.

서씨는 한옥 체험업소로 인한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겪은 경우였다. 바로 야외 욕조인 자쿠지로 인한 피해였다. 서씨의 거실 벽은 바로 체험업소의 마당 쪽이었는데, 사업자가 마당에 자쿠지를 설치해 여행자들에게 제공한 것이었다. “먼저 물을 트는 소리가 나고, 물이 다 차고 나면 사람이 물에 들어가는 감탄사가 들린다.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여행자들이 자쿠지에서 목욕하는 과정을 다 듣게 된다. 이런 일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2023년 10월 서씨의 옆집 이웃이 이사한 뒤 12월부터 프랜차이즈 한옥 체험업 회사인 ‘버틀러리’가 영업을 시작했다. 자쿠지로 인한 피해는 바로 일어났고, 해당 업체에 항의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혼자서 대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주민들과 상의했고, 2024년 2월 8명으로 이뤄진 주민 모임을 만들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김성미씨도 골목에 버틀러리의 한옥 체험업소가 들어오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골목 초입인데, 체험업소가 골목 끝에 들어오자, 잦고 심한 소음이 일어났다. 매일같이 트렁크 소리와 차량 소리, 배달 오토바이 소리, 여행객들 소리가 났다. 골목에서 주차 분쟁까지 일어났다.”

서씨와 김씨를 비롯한 주민 모임은 한옥 체험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네 주민 2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종로구와 서울시에 냈다. 이들은 한옥 체험업과 관련해 3가지를 요구했다. △기업형 한옥 체험업 금지 △주택가 한옥 체험업 제한 △체험업소에 자쿠지 설치 금지 등이었다.

반년 동안의 마찰 끝에 해당 사업자는 2024년 7월부터 서씨의 거실 벽과 붙어 있는 자쿠지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씨의 골목 쪽 출입구를 폐쇄하고 예전에 사용하던 다른 대문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겪은 눈앞의 피해는 일단 해결됐다. 그러나 눈앞의 피해가 사라졌을 뿐 근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촌에선 주민들이 한옥 체험업소의 급증으로 인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토론회를 열었다. 2024년 6월29일 서울 종로구 체부동 체부홀에서 열린 주민 토론회. 서촌탐구 제공

서촌에선 주민들이 한옥 체험업소의 급증으로 인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토론회를 열었다. 2024년 6월29일 서울 종로구 체부동 체부홀에서 열린 주민 토론회. 서촌탐구 제공


부동산에서도 “적당한 때 팔고 나가라”

이들이 걱정하는 건 북촌의 구조적인 상업화, 관광지화다. 예를 들어 한옥 체험업소도 처음엔 상업화한 지역에 생겼고 개인이 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주택이 몰린 지역에도 들어오고 사업도 주로 법인이 한다. 2004년 북촌에 이사 온 서씨는 “우리 집을 소개한 부동산에서도 ‘적당한 때 팔고 나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상업화를 막을 길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시가 관광산업을 앞세워 주민이 아니라 여행자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딸아이가 계속 여기 살고 싶다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실 북촌과 서촌의 상업화, 관광지화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북촌은 2001년부터, 서촌은 2010년부터 한옥 보존·지원 정책을 폈고, 바로 상업화가 시작됐다. 북촌의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2006~2012년 사이 75배나 폭증했고, 한옥 값도 2000년대 초반 평당 500만원 정도에서 현재 평당 5천만원으로 폭등했다. 결과로 보면, 한옥의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한 보존 정책이 한옥의 가치 상승과 상업화를 부추겼다.

한옥 보존과 사업화로 인해 거주자 인구는 급감했다. 북촌(삼청동+가회동)은 1993년 1만5203명이던 인구가 2023년 6108명으로 30년 만에 인구의 60%가 사라졌다. 서촌(사직동+청운효자동)도 1993년 2만8856명이던 인구가 2023년 2만347명으로 30%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인구는 1095만2464명에서 938만6034명으로 14%가량만 줄었다. 서울의 평균보다 서촌은 2배 이상, 북촌은 4배 이상 인구가 줄었다.

거주 인구가 줄면서 북촌에선 생활 인프라가 사라졌다. 슈퍼마켓이나 과일·채소 가게, 정육점, 미용실, 철물점, 약국, 세탁소, 소아과 의원, 학원, 카센터 등이 사라졌거나 한두 곳만 남았다. 재동초등학교 학생 수는 2024년 1학년 2개 반 24명, 2학년 1개 반 16명으로 줄었다. 주변 교동초등학교와의 통합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주민 민원에 따라 종로구는 2024년 7월부터 북촌을 전국 최초의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서씨와 김씨가 거주하고 관광객이 가장 많은 북촌로11길 일대는 2024년 10월부터 관광객 방문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한다. 관광버스가 몰리는 안국역 네거리에서 삼청공원 입구 사이는 2025년 7월부터 전세버스 통행을 제한한다. 위반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2024년 6월 서촌 주민 모임인 ‘서촌탐구’는 ‘지속가능한 서촌을 위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주민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선 주민 6명이 최근 서촌에 늘어나는 한옥 체험업소와 거주자 줄어듦에 대해 발표·토론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과 전현직 시·구 의원, 서울시·종로구 공무원 등도 참석해 주거지와 관광지가 균형을 이루는 서촌과 북촌 만들기를 토론했다.

이날 발표자였던 강인숙씨는 “서촌에 서울시가 보유한 한옥 등 건물과 토지가 50건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건물과 토지가 주민들의 삶과 무관한 관광객용으로 활용된다. 이를 서촌의 주민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야 새로운 주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였던 장민수씨는 “서촌을 좋은 주거지로 발전시키려면 주차장과 공원, 놀이터, 유치원, 경로당 등 주민 인프라를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촌로11길 일대의 살림집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부터 생활을 지키려고 집집마다 이런 알림판을 세워놓았다. 김규원 선임기자

북촌로11길 일대의 살림집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부터 생활을 지키려고 집집마다 이런 알림판을 세워놓았다. 김규원 선임기자


북촌 곳곳엔 주민들의 삶을 위해 여행객들에게 조심해달라는 알림판이 붙어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북촌 곳곳엔 주민들의 삶을 위해 여행객들에게 조심해달라는 알림판이 붙어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고정적인 한옥 개념이나 기준, 현대화 필요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북촌과 서촌에 대한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북촌의 한옥 체험업소는 이미 적정선을 훨씬 넘어 주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에서 한옥 체험업을 신규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서촌도 북촌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런 내용으로 서울시에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요청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분위기는 다르다. 2023년 관광객 수 1천만 명을 넘긴 서울시는 앞으로 관광객 수를 3천만 명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노경래 한옥건축자산과장은 “종로구에서 요청하면 주민 불편을 고려해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한옥 체험업을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막을 수 없다. 한옥 체험업을 막으려면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촌의 필운동 주민 김길지씨는 “한옥 체험업이 현재처럼 단순 숙박업이라면 금지해야 한다. 기업형 숙박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나 불편이 너무 크다. 또 비교적 저렴하게 옛 동네에 살던 세입자들이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이런 정책을 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옥 체험업 회사 중 하나인 버틀러리의 홍보 대행사 박소라 실장은 “주민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원이 발생하면 적극 소통하고 갈등 요소를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옥 체험업으로 인해 주거지가 파괴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변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 북촌의 한옥 보존·지원 사업 연구에 참여한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는 “애초 이 사업의 목표는 한옥과 마을 경관, 주거 기능 등 3가지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어떤 도시에서든 주거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관광이다. 서울시가 북촌의 한옥들을 주거 목적으로 유지하겠다고 정책 목표를 세운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정책과 재정은 공공 목적을 위해 쓰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서촌의 한옥을 연구한 바 있는 정기황 시시한연구소 대표(건축가)는 “애초 계획은 한옥의 멸실을 막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뒤에 나타난 상업화, 관광지화 같은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한옥 체험업도 애초 취지와 다르게 단순 숙박업으로 바뀌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전통 주택을 보존하면서도 주거 기능을 유지할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고정적인 한옥 개념이나 기준을 현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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