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당뇨!” 20여 년 전 중학교 2학년이던 정담빈(36)씨를 부른 말이었다. 친하지 않은 아이가 한 말이 지금껏 상처로 남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1형당뇨(췌도부전)를 진단받은 담빈씨는 “그 말을 듣고선 ‘되게 부끄러운 병이구나. 외부에 노출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느꼈다. 스스로 움츠러들었다”고 했다.
담빈씨가 24년째 겪고 있는 1형당뇨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당뇨(2형당뇨)와 다르다. 췌장 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가 기능을 하지 못하며 혈당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질환이다. 나쁜 식습관이나 비만 등과 관련이 없지만, ‘당뇨’라는 단어 때문에 자주 오해받는다. 담빈씨처럼 상처받는 일은 일상이다.
또한 2형당뇨처럼 먹는 약으로 치료하지 못하고, 일반적 당뇨병보다 위험도가 높음에도 가볍게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1형당뇨 환자 대부분은 어느 순간 몸에서 인슐린 분비가 아예 되지 않기에, 인슐린이 일부 분비되는 2형당뇨와 차이가 있다. 외부 인슐린 주입과 실시간 혈당 체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를 돕는 기기(혈당측정기, 인슐린 주입 기기 등)가 필수적인 까닭이다. 관리하지 않으면 2형당뇨나 임신당뇨병보다 저혈당·고혈당으로 응급상황이나 합병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김재현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췌도부전 환자들은 하루만 (주입할) 인슐린이 없어도 그날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한당뇨병학회와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이 때문에 1형당뇨를 ‘췌도부전’으로 바꿔 부르자고 말한다. 췌도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간부전·신부전(간과 신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 등과 같은 의미를 담은 조어다.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1형당뇨라고 하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인식제고를 위해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1형당뇨인들과 가족의 상처는 일상에서 겪는 편견에 그치지 않는다. <한겨레21>이 만난 1형당뇨인들은 매일 넘어야 할 장벽을 만난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8살 박율아양은 2023년 7월 1형당뇨를 진단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등교한 뒤에는 홀로 당뇨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모 둘 중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어요. 누군가 아이의 췌장이 돼줘야 돼요. 부모는 학교로 5분 안에 갈 수 있는 대기 상태가 되는 거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아버지 박근용(47)씨는 이런 이유로 2023년 10월부터 휴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 19살 미만 1형당뇨 환자가 3천여 명인데, 학교 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9년 교육부·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당뇨병 학생 지원 가이드라인’을 보면, 학교는 학교장·보건교사·담임교사 등이 포함된 건강증진부를 꾸려 1형당뇨 학생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나마 율아양의 담임 교사는 가족이 1형당뇨를 겪어 이해도가 높았기에 율아에게 많은 배려를 해줬다. 하지만 율아양의 가족은 앞으로가 걱정이다. 근용씨는 “학년이 바뀌면 보건 선생님, 영양사 선생님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4년 2월 근용씨는 딸 율아양과 세종시에서 서울 용산구의 대통령실로 170㎞를 도보 행진했다. 1형당뇨를 알리고 편견을 깨고 싶어서다. 근용씨는 “관리를 잘하면 1형당뇨인인 율아 같은 아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국가가 제도를 만들어주면 충분히 많은 이를 구제할 수 있다는 점도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빠의 제안에 율아양은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10박11일 동안 걸었다. 대통령실은 율아 가족을 만나주지 않았지만,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되며 많은 호응을 얻었다.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면 학교생활에 또 다른 고충이 나타난다. 15살 때 1형당뇨 진단을 받은 이아무개(18)양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이양 부모는 시험 때마다 긴장 상태로 딸을 학교에 보낸다. 딸의 혈당수치가 시험 도중에도 널뛸 수 있어서다. 시험 중 갑자기 혈당이 떨어져서 어머니가 주스를 들고 학교로 뛰어간 적도 있다. 이양은 시험 중 전자제품인 의료기기를 계속 착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는 “시험을 치다가 갑자기 인슐린펌프(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주입 도구) 알림이 울렸다. 친구들은 내가 1형당뇨 기기를 착용한 걸 몰랐다. 그래서 누군가 시험 보다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오해했다”며 “그다음부터는 시험을 볼 때 (인슐린펌프를 착용하지 않고) 고혈당을 유지하면서 본다”고 했다. 고혈당 상태는 기력이 빠지거나 복통을 앓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이양은 차라리 그게 낫다고 했다.
어른이 돼서도 어려움은 곳곳에 있다. 김진숙(52)씨는 1994년, 그가 22살 때 1형당뇨를 진단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때 몸무게가 36㎏일 정도로 깡말랐던 그는 진단명을 듣고선 “억울한” 마음이 컸다. 당시에는 1형당뇨를 잘 아는 전문의도 관리 기기도 적었다. 저혈당 쇼크가 자주 왔다. 20대 중반 그는 급격한 저혈당으로 순간적 인지저하를 겪었는데, 이로 인해 부당해고를 당했다. “회사에 피해를 준 건 없었어요. 저혈당이 오면서 잠깐 정신을 잃고 어눌해진 거죠. 그 상태가 1시간 정도 갔을 거예요. 그러고 나니 회사에서 사표 쓰고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저혈당으로 응급실에 가는 일은 일상이다. “아침에 인슐린 주사를 잘못 맞고 나갔어요. (일 처리를 하고 집에) 오는 길에 혈당이 계속 내려갔어요. 마침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나봐요. 제가 말투가 어눌하니 조카를 보내 주스를 입에 넣게 시켰어요. 그런데 (의식 불명으로) 삼키질 않았나봐요. 결국 119에 신고해서 응급실에 갔어요.”
진숙씨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를 사용하고부터는 저혈당 쇼크를 덜 겪게 됐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와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이 기기들을 활용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기기들은 지속해서 사용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진숙씨가 사용하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에는 한 달에 50만원 이상 지출됐다. 특히 정부 지원 대상 인슐린펌프는 한정돼 있는데, 진숙씨 몸에 맞는 인슐린펌프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이에 진숙씨는 인슐린펌프를 3년 가까이 쓰다가 경제적 부담으로 더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1형당뇨에 관한 지원을 확대하는 흐름이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넓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1형당뇨인이 연간 질병 관리와 치료에 쓰는 총액을 400만~500만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환우회가 2023년 2월 105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자료를 보면, 의료기기 비용을 제외한 1년 의료비(의료기관 사용)가 1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비중이 50.2%였다. 의료기기나 소모품 등을 사는 데 든 비용이 100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이도 74.9%였다. 특히 다양한 기기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진숙씨 사례처럼 자비로 기기값을 충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치료 보조와 저혈당 대처 음식 등에도 비용이 든다. 김 대표는 “최소한 19살 미만 환자에게 지원하는 최대 금액을 전체 연령 대상으로, 다양한 기기에 폭넓게 지원하는 것이 맞는다”고 지적했다.
2023년 12월 보건복지부는 19살 미만 환자의 인슐린펌프 등에 요양비 지원을 확대했다. 복지부는 “소아·청소년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이는 1형당뇨인의 구성을 보면 미봉책이다. 대한당뇨병학회 발표 자료를 보면, 환자 5만7천여 명 중 93%가 19살 이상 성인이다. 김재현 교수는 “19살에서 20살이 되면 갑자기 췌장 기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기준 없이 이런 조처가 내려졌다”고 지적했다. 중증도에 걸맞게 전 연령대에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정부가 2019년부터 1형당뇨 관리기기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요양비’ 형태인 것도 문제가 크다. ‘요양비’는 본인부담금(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 금액을 제외하고 개인이 내는 금액)만 내게 하는 요양급여와 다르다. 환자가 400만원대 의료기기를 민간회사에서 자비로 사고, 처방전과 구매한 영수증 등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면 이 중 일정 금액(공단 부담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챙겨야 할 서류가 많고 복잡해서 고령층이 기기 사용을 포기하는 이유가 된다. 율아양의 아버지 근용씨는 “하루 휴가를 내고 직접 공단에 가서 제출하는 게 나을 정도로 작업이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지원책의 또 다른 문제는 기기 사용법 교육이 없다시피 한 점이다. 특히 인슐린을 주입하는 펌프는 ‘고도의 위해성을 지닌’(4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되는데, 관리와 사용법 습득을 개인에게 맡겨두고 있다. 김 교수는 “인슐린을 잘못 주입하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지금 정책은 교육도 하지 않고 ‘수학의 정석’을 풀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우니까 안 하겠다’는 경우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기가 전자제품인데다 교육도 없으니, 디지털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이 사용하긴 어렵다. 김 교수의 발표를 보면, 60대 이상 1형당뇨 환자 중 연속혈당측정기를 지속해서 사용하는 비중은 3.7%(평균 10.7%)이고, 혈당측정기와 연동되는 인슐린펌프를 사용하는 비율은 0.1%(전체 0.4%)에 그친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1형당뇨를 두고 의료기관이 교육·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가 2020년부터 내년까지 시행하는 ‘1형당뇨병 재택 의료 시범사업’이다. 49개 의료기관, 환자 3926명을 상대로 진행된다. 1형당뇨 환자 대면 의료적 교육·상담에 4만2천원(건강관리는 2만6천원), 비대면 관리는 2만8천원 등 수가가 산정돼 있다.
<한겨레21>은 2024년 5월29일 재택 의료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정담빈씨가 이 사업의 일환으로 강북삼성병원에 내원한 과정에 동행했다. 담빈씨는 인공췌장이라 불리는 복합폐쇄회로형 인슐린펌프를 착용하고 있다. 복합폐쇄회로형은 연속혈당측정기와 연동되면서 저혈당 때는 인슐린 주입 중단, 고혈당 때 인슐린 증량 등을 자동 제어하는 장치다. 이날 그는 2시간 남짓 영양교육과 간호교육을 받았다. 담빈씨는 “그전엔 눈대중으로 기기에 입력했는데, 간호선생님이 그래프를 잘 보고 먹은 탄수화물 비율을 인슐린펌프에 입력하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어진 진료에서 담빈씨는 문선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와 15~20분가량 상담했다. 일반적으로 외래환자 진료가 5분 이내에 끝나는 것을 고려하면 긴 시간이다. 문 교수가 차트를 보며 “이날(특정일) 혈당 수치가 많이 높았네요”라고 말하면 담빈씨가 “그날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점심 먹고 간식을 먹었어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기기 관리법에 대한 구체적 대화도 오갔다. 문 교수는 “(인슐린펌프 사용 이후) 저혈당 비율이 높았는데 많이 떨어졌다”며 “(환자가) 초기에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긴 진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이 시범 사업을 모든 환자에게로 확대하는 방안을 두고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이 1형당뇨인을 교육하고 관리하도록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현재는 1형당뇨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병원들이 진료하지 않으려 한다. 1형당뇨 환자를 맡는 의료진이 병원에서 구박받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이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연속혈당측정기(환자당 월 7만5천원), 인슐린펌프(환자당 월 12만3천원) 등을 교육하는 것에 수가를 책정해놓고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과 환자단체는 1형당뇨가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되면 일정 기간 병원비의 90~100%를 정부가 지원한다. 보건복지부 고시를 보면, 중증난치질환이란 △치료법은 있으나 완치가 어려움 △치료 중단시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 △진단·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수준을 보이는 질환이다. 1형당뇨는 이 요건에 모두 부합하면서도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문준성 교수는 “(중증난치질환 지정이) 환자분들 의료비 절감에도 실질적 도움이 되고, 병원 입장에서 환자를 볼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대학병원은 경증환자를 줄이는 입장인데, 현재는 1형당뇨 환자를 보는 것이 중증환자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복지부 쪽은 “타 질환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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