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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8번째 사망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 없어”

등록 2024-05-11 01:33 수정 2024-05-11 07:36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024년 4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에 조속히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024년 4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에 조속히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2024년 5월1일 대구의 전세사기 피해자 ㄱ(38)씨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례 기준으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이번으로 8번째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 대구 피해자모임 등은 5월7일 ㄱ씨의 사망을 알리며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대책위 등이 공개한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대책위 등 설명을 보면, ㄱ씨는 2019년 전세보증금 8400만원을 주고 대구 남구의 한 다가구주택에 입주했다. 2024년 초 건물에 근저당이 잡혔고, 보증금반환 후순위 임차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액임차보증금 기준(6천만원)을 넘겨 우선 변제 제도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이후 그는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하는 등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왔다.

4월9일 살던 건물의 경매 개시가 결정되면서, ㄱ씨는 우여곡절 끝에 피해자 인정 요건을 갖추게 됐다.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5월1일 오후 ㄱ씨의 피해자 인정을 통보했다. 하지만 ㄱ씨가 이날 새벽 생을 마감한 뒤였다. 대책위는 “ㄱ씨가 사망한 당일까지도 임대인이 월세를 요구하며 인터넷 선을 자르는 등의 괴롭힘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2023년 6월 정부기관의 구제책임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 구제, 후 회수’ 형태로 피해를 보장하자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5월2일에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이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를 본 임차인 전세보증금 일부를 먼저 정부기관이 돌려주고, 정부기관은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게 뼈대다. 그간 정부·여당은 재정 부담과 특정 사기 피해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반대해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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