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한국 현대사의 막다른 골목이다. 젊은 세대가 경험한 위험과 안전에 대한 정치공동체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은 위험이 발생하면 탈출을 시도하고, 탈출할 수 없거나 그런 시도가 오히려 위험을 만들면 구조를 기다린다. 이태원은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고 구조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막다른 골목이다.
참사가 발생하고 백팩을 멘 젊은이들이 사고 현장에서 꽃을 바치며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장면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안타깝게 희생된 또래에 대한 애도였다. 그것은 타자의 죽음에 대한 감각만으로는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자기도 그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직감하는 사람들에게서만 가능한 울음이었다. 나아가 자신은 거기 가지 않았더라도 이 참사로 “우리 모두 상처받았다”는 것을 느낄 때만 가능한 통곡이었다. ‘상처받음’으로 죽은 이와 산 이가 만나는 ‘우리’가 만들어진 사람들에게서만 가능한 슬픔이었다.
구조와 탈출은 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치공동체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한국 시민의 역사적 경험이다. 이태원 전에 그 정점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다. 정치공동체가 즉각 대응·구조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판단해 움직이는 것은 전체의 위험을 초래한다. 이 나라에 시스템이 존재하고 그 시스템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안전을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의 말이라고 믿었다. 탈출하지 않고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박살 났다. 세월호 전후가 다를 것이라는 말은 직후에 바로 나타났다. 참사 얼마 뒤 서울에서 지하철이 멈추는 사고가 있었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전동차 문을 열고 나와 탈출했다. 반대편에 전차가 달렸다면 엄청난 사고가 벌어졌을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조에 대한 말과 시스템을 믿지 않았다. 그때부터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 된 ‘각자도생’의 의미는 구조를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구조와 탈출이 산 이와 죽은 이를 갈랐다. 산 이는 죽은 이의 손을 놓고 탈출해야 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는 죽은 이를 어깨에 걸머진 삶을 살아야 했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 때문에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이는 자신이 세월호 생존자임을 철저하게 감추고 살아야 했고, 어떤 이는 어디에서나 자신이 세월호 생존자임을 드러내고 살아야 했다.
탈출한 이뿐만 아니다. 유가족으로 살아남은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1509호 ‘이야기 사회학’에서 언급한 “엄마, 뭐 하러 열심히 살아요? 어차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라는 말을 했던 세월호 희생자 동생은,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 고등학교 공모전에서 입상했지만, 유가족이라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쑤군거림과 따돌림을 당하고 세상에 대한 문을 닫았다. 유가족은 죽은 이를 기억하는 각자의 방식을 선택할 때마다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실존적으로 결코 탈출할 수 없는 이 삶에서 정치공동체는 그들을 구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탈출하지 못하게 옥죈다.
탈출해 구조를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역설적으로 시민을 폭력으로 짓누르던 독재 시절이었다.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자신의 정당성에 도전한 광주시민들을 유혈 진압했다. 그때 광주시민들과 서울의 지식인들은 자유를 수호하는 미국이 이 사태를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곧 미국이 와서 자신들을 구조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 미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발포를 막지도 못했고, 발포를 피해 건물로 숨어든 시민들을 구조하러 오지도 않았다. 이것을 깨달은 몇몇 지식인은 광주를 ‘탈출’했고 ‘도망’가지 않은 사람들은 도청에 끝까지 남아 산화했다.(홍희담의 <깃발>은 ‘구조와 탈출, 그리고 ‘탈출과 도망’ 사이에서 미국과 지식인, 그리고 노동자들의 선택을 가장 ‘계급적’으로 그린 중편소설이다.)
그리고 1980년대 ‘반미 투쟁’이 폭발했다. 탈출했던 사람들은 도망친 사람의 죄책감으로 구조하지 않은 자의 실체와 맞선 1980년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바깥으로부터 구조할 새로운 존재에 대한 기대였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였고,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북한이었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직접 구조한다는 게 아니라 사상적 의미에서 말이다. 이 사상적 오발탄은, 그러나 조명탄이 되어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역사를 통해 작동하는 이성의 간지였다.
그 뒤 우리가 꿈꾼 것은 구조가 작동하는 사회였다. 국민의 생명을 억압하고 처형함으로써 권력의 현존을 보여주는 반근대적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통치의 중심에 두는 근대적 권력이었다. 시민을 국민으로 획일적 존재로 찍어내는 수용소 권력이 아니라 개개인이 탁월해지는 것을 권장하는 생명 권력이었다. 탁월해지기 위해 각자가 노력하더라도 그것은 ‘탈출’이 아니라 구조 가능한 사회 안에서의 노력이었다. 그렇기에 정치공동체의 역할이란 추락하는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구조하는 일이었다. 외부로부터의 구조가 아니라 내부에서 구조가 가능한 세상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세월호 이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였다. 이 위기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1997년 이전에는 사적인 친족 ‘공동체’가 작동했다. 망한 친족을 거두는 것은 다른 친족의 의무였다. 데려다 일만 시키며 착취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 ‘망’은 사회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IMF 이후 이 망은 거의 해체되고 부모 자식 단위로 쪼그라들었다. 형제자매의 몰락도 구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구화된 위기로부터 각자 알아서 탈출하는 것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각자도생은 이미 이때 시작됐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한국 사회의 실체를 봤다. 세월호는 아포칼립스였다. IMF 경제위기 이후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이리라 믿던 것의 뚜껑이 열리는 사건이었다. 개별 정권의 문제라 생각하던 것이 정치공동체 시스템 자체의 문제임을 알게 됐다. ‘구조’를 중심에 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탈출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치는(한국 사회 참사의 원형인 삼풍백화점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무수한 무책임한 개별 단위들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는 음모론조차 사치일 뿐이다. 그런 배후의, 막후의 전체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거대한 ‘무엇’은 없다.
촛불 시위는 아마도 아포칼립스에 대항해 정치공동체를 재건해야 한다는 한국 시민들의 절실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때 박명림 교수는 <한겨레> 칼럼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에서 “이게 과연 나라인가”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많은 시민의 가슴에 울려 퍼졌다. 촛불 시위는 단지 정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여기’가 나라여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개별 단위의 통제권을 가진 자는 도망치고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은 죽어가고 요행히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죄책감에 죽은 이를 지고 사는 이 끔찍함을 끝내는 것은 정치공동체의 재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명료한 인식이었다.
촛불 시위는 구조와 탈출에 대한 시민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만나는 광장이었다. 이 글과 연결된 미르(가명)의 만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세월호에서 같은 또래의 죽음과 탈출은 미르에게 신발끈을 묶고 촛불 시위에 나가게 한다. 탈출한 생존자의 단단히 묶인 신발끈은 이제 구조를 책임지는 나라를 요구하는 미르의 신발끈이 된다. 거기서 미르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남루한 복장의 한 시위 참여자가 핫팩을 나눠주며 탈출에 대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한다. 광주항쟁에 기반을 둔 것 같은 계엄령이니 발포니 하는 이야기는 현실성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계엄령 검토 문건이 나타났다. 미르는 그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섬찟했다. 물론 그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정말 계엄령이 선포되고 발포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망상이어야만 하는 것이 국가 권력에 의해 상상하고 준비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섬뜩했다.
불길함은 할아버지의 예언과는 다른 방향에서 실현됐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탈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참사가 나타났다. 작품의 마지막 컷처럼 나아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우회할 수도 없이 탈출은 꽉 막혔다. 국가는 이번에도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떨리는 손처럼 그 현장을 지원하고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책임을 묻는 자로 나타났다. 필사적으로 구조하려는 현장이 처벌된다는 위협을 당했다. 그럼 누가 애써 구조할 것인가?
끝이 아니다. 안전장비도 없이 구조하라고 급류에 밀어 넣어 사람이 희생됐다. 구조하는 흉내를 내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켰다. 탈출도 구조도 없는 것을 넘어 구조하는 자마저 희생시킨다. 채 상병의 희생이다. 더하여 그 진실을 드러내려는 사람도 처벌한다. 자발적으로 복무하는 정치공동체를 위한 삶마저 이렇게 희생시킨다면 누가 이 국가를 믿고 구조를 기대할 수 있고 탈출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겠는가?
이 모든 악몽이 나이 스물셋을 앞두고 일어났다고 미르는 말한다. 평생 하나도 경험하기 힘든 악몽을 스물셋이 되기 전에 반복해서 경험한 이들 앞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 글에서 인용한 미르의 만화 <구조와 탈출> 보러 가기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475.html
*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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