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업으로 치부되던 플랫폼 노동은 점차 전업화하고 있다. 그만큼 일자리 질도 달라졌다. 노동 공급이 많아지면서 일자리 경쟁이 심화하고 임금이 땅에 떨어졌다. 회사의 노동 통제는 갈수록 심해지는데 노동자의 대항 수단은 없다시피 하다. 극한으로 쥐어짜이고 업무상 사고를 당해도 프리랜서란 이유로 보호받지 못한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포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데이터 라벨링도 마찬가지다. ‘클릭 몇 번으로 돈 벌자’는 업계의 초창기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노동 강도는 세지고 대가는 초라하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언제 잘릴지 불안해한다. 작게는 30만 명(2020년 정부 발표 기준), 많게는 60만 명(업계 추산)이 이런 환경에 처해 있다. 일터가 온라인 공간이니까 혹은 재택이니까, 라는 등의 이유로 ‘노동이 아니라’고 제쳐둘 수 없게 됐다. <한겨레21>은 2024년 4월 부당해고를 인정 받은 크라우드웍스 용역 노동자의 부당 해고 사례를 다뤘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노동 형태를 포괄할 제도적 보호망을 다시 논의할 때라고 말한다.
데이터 라벨링 기업은 ‘안내와 반려’ 시스템으로 노동자를 촘촘히 통제한다. 업무마다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준 뒤 작업자가 그 양식에 맞출 때까지 반려하는 식이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주고받는 일을 예로 들면 대화 주제부터 띄어쓰기, 줄바꿈까지 양식을 다 정해놓는다. 거기서 벗어나면 몇 시간을 일해도 노동이 인정되지 않는다.
“13건 작업했는데 6건만 검수 통과됐네요. 읽기 쉬우라고 단락마다 줄바꿈 했더니 불필요한 조치였다고 통과가 안 됐더라고요.” “약간 멘붕(멘탈붕괴) 왔어요. 이렇게 많은 가이드를 보고 맞춰서 작성해야 통과를 받는다니… 시간당 최저시급도 안 나오는데 이게 정말 맞나요?” 온라인 카페 ‘데이터라벨링모임’(데라모)에 올라온 하소연 글이다.
회사가 정한 양을 달성하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되거나 단가가 깎이기도 한다. 9개월차 전업 라벨러 정아무개씨도 2023년 11월 대화문 생성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 회사가 1주일 단위로 100∼300건의 목표량을 부여했는데, 할당량을 못 채우자 단가가 절반이나 깎였다. 다른 이들은 아예 계약을 해지당했다.
단가도 20원부터 시작한다. 2024년 최저시급(9860원)을 확보하려면 1시간에 493개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10초에 1.36개 꼴이다. 2021년 서남권 서울시 노동자 종합지원센터 실태조사를 보면, 전업 라벨러 응답자 62%(48명 중 30명)가 월수입 182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에선 41%(193명 중 80명)가 50만원 미만으로 벌었다. 정씨도 앞선 프로젝트에서 매일 12시간씩 일해 월급 50만원을 손에 쥐었다. 시급 3천원 수준이다. 그마저도 크라우드웍스는 현금이 아닌 포인트로 지급한다. 5천 포인트 이상 쌓아야 출금이 가능하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적용받았다면 이들은 노동조건을 미리 확인하고 협상할 권리를 가지며 함부로 해고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영업자(프리랜서) 딱지를 붙이는 순간 이런 권리를 모두 박탈당한다.
미국에선 기존의 보호 제도를 확장해 새로운 노동을 포섭하는 논의가 일찌감치 이뤄졌다. 노무를 제공하는 자는 기본적으로 다 노동자로 보되, 특정 조건을 충족했을 때만 프리랜서로 분류하는 법(‘AB5’ 법안)이 201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만들어졌다. 작업자가 프리랜서인지 입증할 책임은 기업이 진다. 작업자를 프리랜서로 주장해 이익 보는 주체가 기업이라서다. 이 법은 엄청난 논쟁을 낳았다. 2022년 우버 등 플랫폼 기업이 2억달러를 들여 대항 법안(‘주민발의안 22호’)을 발의했다. 플랫폼 기업이 주도한 이 법안은 1심에선 위헌, 2심에선 합헌을 선고받고 현재 3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노동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판단 기준도 옛날 공장식 노동에 머물러 있다. 출퇴근시간·장소·급여가 고정적인지, 업주에게 상세한 지시를 받았는지 등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2024년 4월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최아무개씨도 획일적 노동의 전형을 따랐기에 노동자 입증이 수월했다. 출퇴근시간을 스스로 선택했거나 직접적 지시가 없었다면 그 역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을 수 있다. 2019년부터 법정 공방 중인 차량호출서비스 ‘타다’의 기사도 출퇴근 선택권 등을 이유로 프리랜서-노동자-프리랜서-노동자로 지위가 계속 바뀌었다.
한때 우리 사회도 플랫폼 노동자 보호 방안을 뜨겁게 논의한 적이 있다. 2021년 정부여당이 플랫폼 종사자를 따로 보호하는 법(‘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을 만들기로 했을 때다. 최소한의 울타리라도 세우자는 취지였지만,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권리에서 대거 후퇴했단 비판에 직면했다. 대안으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다. 2022년 대선 국면에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선거 이후 사회적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 기구를 만들 수 있다’고 <한겨레>에 답했다. 그러나 취임 후엔 공제회 지원 등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그나마 배달 기사에게 허용했다는 산재보험도 비용 절반은 스스로 부담하게 했다.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사람=프리랜서’라는 헐거운 공식은 업계 통념으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보호할 법적 제도를 다시 논의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자-자영업자 이분법을 고집할수록 플랫폼 기업은 그 흔적을 지우려 할 테고 노동자는 콕 집어내기 어려운 방식으로 지휘·감독을 받을 거다. 급변하는 노동 시장을 따라가려면 과거의 ‘노동자 분류법’을 반복해선 안 된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노동권 댐’을 이제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이다.
2020년 독일은 ‘플랫폼경제에서 공정한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관계임을 뒷받침하는 정황을 제시하면 사용자가 프리랜서임을 다시 입증하는 제도다. 사측에 전적인 입증 책임을 지우진 못해도 최소한 프리랜서냐 노동자냐로 노사가 공방할 수 있는 틀은 생겼다.
“사실 배달 노동자랑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가. 배달 등은 특정 장소에 가야 해 근무장소 구속성이 재택근무자보다 더 강하지 않나. 그런데도 한국에선 노동자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이 매우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어떤 일이 프리랜서 노동인지 최소한 행정당국 차원의 기준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김영선 시간과노동센터 연구위원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21> 1513호 표지이야기 '데이터 라벨링' 노동실태
[단독] 지노위,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부당해고 첫 인정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482.html
'사무실로 출퇴근하는데 프리랜서 라니요'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4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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