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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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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 속 우리는 공동운명체, 길은 하나밖에 없어

천년고찰 실상사에서 ‘지리산 살리기 운동’ 20여 년 이어온 도법 스님, 갈등과 반목 심화하는 한국 사회에 일갈 “실상사 와서 본인의 실상 파악을!”
등록 2023-11-17 06:37 수정 2023-11-23 03:50
도법 스님이 실상사에서 산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도법 스님이 실상사에서 산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어쩌다보니 내가 마치 지리산 운동의 중심처럼 돼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도법 스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말한다. 스님은 제주4·3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1949년 제주도 한림읍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17살이 되던 해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금산사로 출가해 1990년 청정불교운동을 이끈 개혁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들고 이끌었다. 1995년부터 전북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주지를 맡은 그는 지리산 살리기와 공동체 운동의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1998년엔 실상사 소유 땅 3만 평을 내놓아 실상사귀농학교와 실상사작은학교를 설립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좌우익희생자와 뭇생명 해원상생을 위한 범종교계 100일 기도’를 시작으로 1천 일 동안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매일 기도했다. 2004년엔 실상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고 생명평화 탁발순례길을 떠났다. 2010년 발족한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1기부터 4기까지 역임했고, 현재는 실상사 회주이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2023년 10월15일 오전, 실상사에서 도법 스님을 만나 지리산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그의 구술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1~4기 위원장을 역임한 도법 스님(오른쪽)은 4대강,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무사생환 기도 및 희망버스, 철도문제 관련 노사대화, 밀양송전탑 문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조계사 은신 관련 문제 등 사회적 갈등 현장에서 대화와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2015년 11월10일 한상균 당시 민주노총위원장(가운데)과 함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1~4기 위원장을 역임한 도법 스님(오른쪽)은 4대강,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무사생환 기도 및 희망버스, 철도문제 관련 노사대화, 밀양송전탑 문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조계사 은신 관련 문제 등 사회적 갈등 현장에서 대화와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2015년 11월10일 한상균 당시 민주노총위원장(가운데)과 함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8년 5월28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이던 도법 스님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국회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찾아 유경근 대변인과 악수하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2018년 5월28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이던 도법 스님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국회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찾아 유경근 대변인과 악수하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인연 따라 지리산 살게 된 지 30년

나는 지리산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요. 한국 불교가 바람직한 불교가 되도록 하는 데 힘써보자고 공감했던 도반들이 모여 만든 것이 선우도량(1990년 창립)이라는 승가단체인데, 그 활동을 실상사에서 하자고 해서 1992년 인연 따라 이곳에 온 겁니다.

제가 왔더니 뜻있는 분들이 지리산을 잘 가꾸고 지키고 후손한테도 잘 전달할 수 있는 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셨어요.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이 산중에 있었던 사찰(실상사)이 그 산의 역사나 문화를 잘 가꾸고 발전시키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이병철 선생의 제안으로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하고 절 안에만 있던 내가 세상과 만나기 시작한 거요. 막연하게 지리산이란 데를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 하구나, 생각하고 변화하고 성장했다고 봐야죠.

지리산에 대해 특별히 말할 건 없지만 지리산 운동은 말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1980년대 금산사에 살면서 순례해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1986년 겨울 금산사 대적광전에 화재가 났는데 그걸 수습하느라 순례 계획을 포기했어요. 이걸 운명처럼 묻었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천일기도’를 하고 끝내면서 옛날의 꿈을 실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얻어먹는다, 얻어잔다, 만난다, 대화한다’는 슬로건으로 탁발순례가 시작된 거요. 여기서 30년을 살았고 그중 2004년부터 이어진 탁발순례 5년은 내 인생의 황금기예요. 3만 리(1만1782㎞) 정도 걷고 8만 명을 만났어요. 한 1천 일 걸으면 전국을 한 바퀴 안 돌겠나 싶었는데 5년 걸린 셈이지.

2000년 지리산 댐 반대 운동을 시작할 때 전국 189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했어요. (그때 영호남 지역 대표가 도법 스님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 김장하 당시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었다.) 처음 단체명을 ‘지리산 댐 백지화 국민행동’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우리는 댐이라는 하나의 사건 때문에 지리산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어요. 그래서 ‘지리산 살리기’란 말을 꺼낸 거요.

지리산 운동에서 가장 성공적인 건 둘레길이에요. 성찰의 문화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걷는 것을 사회화하고 대중화하자는 의미로 지리산에 순례길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걸 우리는 둘레길이 아니라 순례길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그동안은 어떤 사업을 할 때 정부와 시민사회가 반목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여기서는 중앙과 지방, 관과 민, 진보와 보수 등 두루두루 함께해서 이뤄졌다는 게 중요합니다. 2004년 탁발순례를 하다가 순례길의 필요성을 깨닫고 강동석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을 만나서 길을 제안했어요. 2007년에 구체적인 길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요. (지리산둘레길을 만든 ‘사단법인 숲길’과 ‘사단법인 제주올레’ 모두 2007년 발족했다.) 범종교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길이죠.

생명평화무늬 앞에 앉은 도법 스님. 이유진 기자

생명평화무늬 앞에 앉은 도법 스님. 이유진 기자

지리산 순례길과 생명평화무늬의 탄생

그렇다면 지리산 운동 최고의 가치가 뭘까. 나는 생명평화무늬의 탄생이라고 봐요. 생명평화 이야기를 보통 사람들한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는데 마침 안상수 교수(홍익대 시각디자인과)가 우리 순례하는 데 왔고 전국귀농운동본부 이병철 선생님이 제안해서 재능기부로 만든 거예요. 요즘 가수 이효리나 축구선수 황희찬 같은 청년들이 이 무늬를 (타투로) 몸에 새기는 건 알고 있어요.

최근 코로나19를 겪어보니까 우리 모두가 공동운명체임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살기도 함께 살아야 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함께 풀어야지 효과적이라는 거죠. 그것을 실감할 수 있는 그림이어서 이건 ‘지리산 운동이 만들어낸 위대한 탄생’이라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고 봐요.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인 거요.

불교 공부를 하고 불교 사고방식을 지닌 내 식으로 설명해보면 저 그림은 네발 달린 동물, 새와 물고기, 사람, 나무, 숲, 해와 달, 그러니까 우주 삼라만상을 아주 단순화해 사실적으로 시각화한 거잖아요.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누구나 가진, 부닥치는 물음에 대한 답이죠. 내 생명-네 생명은 따로다, 내가 볼 때 그런 생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태양과 관계를 단절하는 순간 그 어떤 생명도 태어날 수 없고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바깥에서 밥이 들어오지 않는 한 내 안에 있는 내 생명은 살 수 없어요. 이를 불교에서는 ‘인드라망’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온 우주 유형무형의 모든 것이 그물코처럼 연결돼 있다, 서로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곧 그대로 우주고 우주가 곧 그대로 나다, 이런 얘깁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이고 한마음이고 한 생명의 식구다, 불교적 언어로는 ‘일심동체’라고 합니다. 우리는 공동운명체고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저 그림에서도 평화 얘기를 하는데 나 홀로 또는 우리끼리만 평화로울 길은 없어요. ‘너는 고통스러워라, 남은 아우성치거나 말거나 난 나의 평화로운 것을 누릴 거야’ 그런다고 해도 그 길은 인간다워질 수도, 아름다울 수도, 바람직할 수도 없어요. 반드시 함께, 나도 너도 괜찮은지 살피고 해야 바람직하다는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온통 고통스럽다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창과 방패의 싸움, 영원한 모순, 우리 일생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면 인간들이 꿈꾸는 것은 다 허망한 꿈인 거요. 엄청나게 발전한 것 같은데도 ‘못 살겠다’ 비명이 계속되는 이유는 어떤 나쁜 놈들 때문이 아니고 ‘너 없애고 나 혼자 할 거야’ 이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얘기죠. 정의를 명분으로 하더라도 분노하고 증오하면 나는 분노하고 증오하는 인간일 뿐입니다.

법회에서 설법중인 도법 스님. 이유진 기자

법회에서 설법중인 도법 스님. 이유진 기자

분노와 증오로는 황폐해질 뿐

분노하고 증오하는 삶은 황폐화할 수밖에 없고, 이게 우리가 경험한 역사의 결론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동안 하늘나라를 꿈꿔왔습니다. 불교 2600년 동안 극락세계를 얘기했어요. 하늘나라, 극락세계 이룬 적 있는가요? 여전히 창과 방패 싸움, 그 긴긴 세월이 아니라 생명평화무늬가 밝혀주는 방향과 길에 맞춰 내 삶을, 네 삶을 가꿔간다면 100년만 해도 된다고 봐요.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시에 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답이 됩니다. ‘우리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갖고 지리산 운동 얘기를 한다면 생명평화무늬의 위대한 탄생을 알려주고 싶어요.

코로나19도, 일본 원전 오염수 문제도 우리 모두 공동운명체임을 깨닫게 해줬어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핵에너지 혜택을 안 누린 사람이 있습니까? 오염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한 사람도 없죠. 다만 재수 나쁘게 사건이 일본에서 터졌을 뿐. 그러면 당연히 공동책임을 져야 맞는 겁니다. 일본 국내에서 처리할 때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한다면 같이 부담을 짊어지자고 할 수 있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경우도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한테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이 문제를 풀어가도록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진행하면 유엔의 권위도 훨씬 살아나고 역할도 커지겠죠. 대한민국 위상도 우뚝해지리라고 봅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 않겠어요? 야, 대한민국 역시 달라. 이 얘기가 나가면 난리가 날 거라고? 그런 사람은 실상사에 와서 본인의 실상을 한번 파악하는 게 좋을 겁니다.

2023년 10월15일 법회를 하러 선재집에 들어서는 도법 스님을 붙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유진 기자

2023년 10월15일 법회를 하러 선재집에 들어서는 도법 스님을 붙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유진 기자

남원(전북)-글·사진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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