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처럼 쏟아지는 가을볕 아래 꼬마들이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추수 체험을 하고 있었다. 벼 탈곡 시범을 보여주던 농부는 목청을 높였다.
“이게 홀태(벼훑이)라는 거야. 한번 해보자~ 하나 둘 셋~! 한 번 더 해보자~ 하나 둘 셋~! 자, 다음 차례~!”
아이들은 참새같이 재잘대며 인사했다. “아, 재밌다! 너무 재밌었다!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밀짚모자 아래 작가의 눈이 초승달처럼 웃었다. 김탁환이다. 트레이드마크인 흰 고수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인 줄 안다고 그는 말했다.
서울 살던 소설가는 2021년 1월1일 전남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겼다. 새벽에 일어나 작물을 돌보고 아침에 글을 쓰고 낮에는 다시 농사일을 하는 농부작가가 됐다. 2023년엔 기상 악화로 많은 곳의 벼가 누웠다. 농부소설가는 땅심을 자랑했다. “18년째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땅이라서 다른 논의 벼가 다 쓰러져도 여기는 쓰러지지 않아요.” 유기농 비건 식당 ‘밥cafe飯(반)하다’(이하 ‘반하다’)에서 스태프들이 먹는 비빔국수를 함께 먹었다. 반찬으로는 김탁환이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전이 올랐다. 달고 구수했다. 성당 종소리를 듣고 자라 영성으로 가득한 고구마라고 했다.
작가는 2018년 3월1일 지리산에 왔다가 서울로 가는 길에 ‘반하다’에 들렀다. 채식 음식에 감명받고 이 식당을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오가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농부이자 미생물학 박사인 이동현 대표는 기꺼이 도시소설가 김탁환의 농부 스승이자 벗이 되어 폐교를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함께 일구고 있다.
2021년 12월에는 옛 교무실 자리에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었다. 생태 관련 책 500종을 그가 직접 큐레이션(선별)했다. 마을에 오자마자 동네 주민들을 모아 ‘김탁환과 함께하는 이야기학교’를 열었는데 벌써 6기생을 맞았다. 작은 음악회, 섬진강 마을 영화제도 연다. 미실란 건물 2층에 자리한 집필실 ‘달문의 마음’에서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전 3권)을 썼다.
2023년 10월27일, 청명한 가을날 ‘들녘의 마음’과 ‘달문의 마음’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들녘과 달문은 모두 김탁환 소설 속 선한 인물들이다. 미실란 마당에서 멀리 눈길을 던지며 빨치산, 동학도, 더 옛날엔 이순신과 그의 부하들도 이 앞을 지났다고 작가는 말했다. 정해박해 때 천주교 공동체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변화를 다룬 <사랑과 혁명>의 무대, 누가 숨어도 찾지 못할 만큼 깊은 골짜기 가득한 곡성이었다.
―여기도 ‘지리산권’이라던데.
“이 앞은 천마산이고, 저 뒤에 살짝 보이는 게 지리산이다. 남원·구례 사람들은 지리산 옆에 산다고 하고, 우리 곡성 사람들은 섬진강가에 산다고 한다. 남원, 구례, 곡성은 다 같이 소멸해가는 곳들이다.”
―소설을 쓰려고 이곳에 왔나.
“그건 약간 멸치 같은 질문이다.”
―그럼 고래로 키워서 얘기해보자.
“장편 작가는 역시 고래와 같아서 큰 흐름이 있다. 메르스 사태를 다룬 <살아야겠다>가 인생에서 되게 중요했다. 바이러스와 감염병을 공부하면서 생태에 관심이 커졌고, 생태적 삶을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서울은 가족을 만나러 2주에 한 번 가는 정도. 방송이나 모임 등 서울 생활은 다 정리했다. 계속 일을 벌이니까 앞으로도 여기 있을 것이다. 고래처럼 숨 쉬고 고래가 돼가는 중이다.”(웃음)
―여기 와서 뭐가 달라졌나.
“일단 직업병이 나았다. 원래는 어깨가 계속 아팠다. <사랑과 혁명> 한 6천 장 정도를 썼으면 병원에 열 번은 갔을 거다. 이번엔 단 한 번도 병원에 안 갔다. 농사짓고 하니까 어느 순간 나아버린 거다. 지금은 어깨나 목이나 이런 데가 전혀 안 아파서 그게 너무 좋고 신기하다.”
―일과가 궁금하다.
“20년간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글 쓰고 이후엔 사람을 만나거나 했다.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서 밭에 갔다가 아침에 글을 쓰다가 점심 먹고 책방 가서 책 좀 팔다가 해 질 무렵에 다시 밭에 간다. 제철 수확물로 요리해서 밥 먹으면 해가 진다. 밤 10시쯤 쓰러져서 자고 새벽 5시30분에 일어난다. 놀라운 건 집필량이 똑같다는 거다. 1년에 한 4천 장 정도씩 쓴다. 30대 때는 6천~7천 장을 썼는데 지금은 3천~4천 장을 쓴다. 여기 와서도 그냥 계속 그렇게 쓰고 있다.”
―촌사람 다 됐다.
“이 사람들이 나를 마을 사람으로 받아줬다는 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마을 활동을 같이 하니까. 오자마자 동네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까 하다가 글 쓰는 걸 같이 하면 좋겠다 해서 글쓰기학교를 열었다. 활자도 중독이라 안 읽겠다 했는데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게 책방이라 해서 열었다. (웃음) 책방이 없으니까 아이들이 책방 견학을 광주나 순천으로 간다더라.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가 무조건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어디선가 천사들이 나타나는 거다. 섬진강 라인 책방 벨트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 얘기하고 있다.”
2022년 봄, 그가 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는 숫제 농사 일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종부터 탈곡까지 논일해서 벼를 수확했다. 아파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풍광 속에 그는 나무의자 하나 놓고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일상을 유지하려는 반복된 안간힘과 정성이 역사를 나아가게 한다”고 김탁환은 적었다. “일상의 안간힘들은,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며 흘러온 역사를 궁구하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다.”(<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가운데) 미실란 공동체 앞을 지나갔을 이순신과 조선군, 천주교도, 동학군, 빨치산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공동체에서 산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일 텐데.
“공동체가 늘 그렇지 않나. 3만 명이 안 되는 군 단위 인구가 적은 지역은 전근대적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가장 약한 어떤 지점, 그래서 계속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 그런데 또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굉장히 낭만적이기도 하고 굉장히 고통스럽기도 한. 그런 게 가치 있는, 그런 곳이다.”
―농촌에서 살기 때문에 더욱 피부로 느끼는 환경파괴,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일까, 아니면 인간관계의 갈등일까.
“모든 게 다. 상상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 일어나는데 지역은 굉장히 안정적이고 편안하리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잖나. 기후변화를 정면으로 맞아야 하고, 관계도 역동적인 곳이다.”
―요즘 청년들은 이상적 공동체를 찾아 순례하듯 하더라.
“곡성이나 구례나 이쪽으로 오는 청년들은 경쟁에 대한 염증 같은 게 크다. 미실란에도 직원이 14명 정도 되는데 20~30대가 7명이라 곡성에서 젊은이가 제일 많은 직장이다. 친환경 농사도 짓고 생태책방도 하고 영화제도 하니까 그런 가치를 좇아 오는 거다.”
김탁환은 어느 작가보다 본인이 쓴 작품에 많이 영향받는다고 했다. 쓰면서 깨달음이 오면 그는 삶을 바꿨다. 멸종된 호랑이 이야기 <밀림무정>(2015)을 쓰면서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 러시아 학자들과 러시아 시호테알린산맥에 호랑이 탐사를 다녀온 얘기를 했다. “인간과 자연의 투쟁에서 마지막 형태는 인간이 야수를 죽이기 시작하는 것이고 1800년대는 그런 몰살기”라고 덧붙였다. 책을 쓴 뒤 작가는 녹색당원이 됐다. 2010년부터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더 깊이 고민했고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 반대 투쟁도 열심히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사회파 소설을 썼다.
“세월호 이후 거리에서 3~4년 있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 읽던 게 다 깨져버렸다. 현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가는 원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근데 실제 작가들은 그런 걸 되게 두려워한다. 나도 서울에선 좀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과 농촌 사이엔 벽이 있다. 지금은 농촌드라마도 없어지지 않았나. 여기서 어떤 일이 막 일어나는데 서울에선 모른다. 2023년 농촌에서 쌀농사 짓는 사람들의 일과 여기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나도 아직은 지켜보는 중이다. 농민으로서 아직 3학년이고, 졸업해야 하니까.”
―<사랑과 혁명>에 나오는 1800년대 같은 문제를 이곳에서 느끼는가.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를 쓴다는 게 다 때가 있는 듯하다. 1800년대가 암흑기이고 그 시대로 잘못 들어갔다가는 못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지금도 있다. <사랑과 혁명>이 1827년이고 그다음 세대, 1860년 전후 세대는 더 절망했을 거다. 그때 동학이 나오기 시작한다. 저기 동산리라고 작은 산에서 동학꾼들 시신을 태웠다고 했다. 한 100년 3대 내내 어두웠던 시절로 들어가는 건 되게 힘든 과제다.”
―어떤 어두움인가.
“이렇게 가면 가장 약한 부분을 가장 먼저 치니까. 농촌에 대한 배려도 다 날아가고 소멸이 가속화할 거다. 그래도 곡성은 생태를 중요하게 여겨와 지켜지는 거지만 다른 데는 갑자기 개발 이슈를 몰고 올 수 있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지켜왔던 어떤 가치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100년 동안 일궈온 마을을 확 밀어버릴 수도 있다. 섬진강은 5대강이어서 4대강 횡포에서 벗어났다. 얼마나 다행인지. 옛날에 낙동강으로 자전거 타러 가던 유럽인들이 이제 섬진강으로 온다. (낙동강은) 물이 썩고 재미가 하나도 없는 거다.”
―동학 이야기를 지금 쓴다면.
“계속 들여다보고는 있는데 최제우 마음속을 모르겠는 거지. 최시형의 마음, 전봉준의 마음을 잘 모르니까. 완전히 장악해야지만 글이 좋아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가가 법륜 스님은 아니지만 물어보겠다.
“즐겁게 재밌게. 내 경우 농사짓고 뭔가 기르면서 많이 달라졌다. 계절 변화, 생태 문제가 내가 기르는 동식물에게 곧장 피해가 가니까. 마음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경험이 많이 달라진다. 농작물을 기르려면 더 예민해져야 한다. 난 실제 죽어가는 식물을 데려와 살리는 이를 봤다. 식물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농부의 마음이다.”
―지금 작가는 어떤 마음인가.
“<사랑과 혁명>의 핵심은 변화다. 종교를 믿고 사람이 막 변한다. 평생 들짐승들을 총으로 쏴 죽이던 사냥꾼은 노루를 구하려 자기가 대신 총을 맞고 죽는다. 사람의 생각이 확 바뀌는 것, 종교의 본질이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곡성에서 달라진 건 일단 농사짓는다는 것, 열심히. 철에 따라 사는 것, 시금치가 겨울에 눈을 맞으면 얼어 죽을 것 같았는데 얼어 죽지 않고 눈 밑에 찔끔찔끔 자라는 게 너무 맛있고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생각하는 것. 책방에서 책을 사면 굿즈로 고구마를 구워주자 생각하는 것. 이게 요즘 내 마음이다.”
곡성(전남)=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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