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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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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대기업보다 나은 공공교육기관이 있다, 어디?

경남 의령군, 구내식당 안 하는 조건으로 경남교육청에 미래교육원 터 제공
“교육원 안에선 디지털 체험, 밖에선 주민과 인류학적 체험” 추구
등록 2023-09-23 14:18 수정 2023-09-26 04:26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원에서 ‘로봇과 사람’ 주제를 선택한 학생들이 실습으로 자율주행자동차 원리를 배우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원에서 ‘로봇과 사람’ 주제를 선택한 학생들이 실습으로 자율주행자동차 원리를 배우고 있다. 최상원 기자

“매일 학생 단체손님을 20~30명씩 받고 있어요. 1인분 8천원짜리 부대찌개를 파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고마운 손님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큰 도움이 되죠. 학생들도 ‘맛있다’며 잘 먹으니 너무 좋아요.”

경남 의령에 위치한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원을 방문하는 학생들을 단체손님으로 받는 모범식당에 선정된 천호식당의 업주 김연순씨는 “이렇게 매일 바쁘면 금방 부자가 되겠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인근의 고향가든은 도시락을 새 상품으로 개발해 모범식당에 선정됐는데, 오전 11시50분까지 배달해야 할 30명 분량의 도시락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변 사업장에 활력을 가져다준 미래교육원

미래교육원의 모범 체험활동사업장으로 선정된 의령곤충생태학습관 역시 만원이다. 생태학습관의 김미혜 주임은 “이달 말까지 예약이 꽉 찼어요. 매일 오전 한 팀, 오후 한 팀 해서 두 팀씩 적어도 40명이 방문해요. 방문객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예약한 단체손님이 매일 꾸준히 방문하기 때문에 예측하고 준비하기에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모범 체험활동사업장인 ㈜의령조청한과를 운영하는 김현의 식품명인은 “코로나19 때문에 정말 어려웠는데, 미래교육원 덕택에 숨통이 틔었죠.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문객이 많이 늘었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정성을 다해 손님을 맞고 위생과 친절에 더욱 신경 써서 이런 좋은 기회를 잘 살려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로봇과 사람, 생활혁신, 공간혁신, 기후환경, 건강 등의 주제로 경상남도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미래교육원이 문을 열었다. 공식 개관일(2023년 9월15일)에 앞서 8월21일부터 운영하고 있는 미래교육원에는 연간 30여만 명, 하루 평균 1천 명의 학생이 꾸준히 방문한다. 미래교육원에는 초등학교 4학년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평일에는 각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하고,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방문한다. 5~6개 등급별로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34개다. 방문할 학생은 미리 누리집(gnfe.gne.go.kr)에 접속해 원하는 주제를 선택한 뒤 간단한 시험을 쳐서 자기 수준에 맞는 등급을 받는다. 미래교육원은 학년과 상관없이 같은 등급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한다. 모든 프로그램은 3시간 교육, 점심식사, 의령군 주민이 운영하는 70분짜리 체험활동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생들로 북적이는 미래교육원에 점심을 먹을 구내식당이 전혀 없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교사들은 물론 직원 120여 명까지 모두가 의령군 곳곳의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모범식당 20곳, 체험활동사업장 23곳 선정

경상남도교육청과 경남 의령군은 미래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학생 양성과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의령군 살리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목적으로 의령군 의령읍에 미래교육원을 세웠다. 공공기관이 지자체에서 받은 값싼 시골 땅에 새로운 시설을 세우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경상남도교육청은 구내식당을 설치하지 않는 조건으로 의령군으로부터 미래교육원 터를 받았다. 대신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식당과 체험활동사업장을 이용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돈벌이와 효율을 더 중요하게 따지는 기업이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실험에 나선 것이다.

미래교육원을 방문하는 모든 학교는 방문에 앞서 식당과 체험활동사업장을 선택해서 20~40명 단위로 단체예약을 한다. 모든 식당과 체험활동사업장의 예약이 한 달 전에 완료될 만큼 미래교육원과 의령군의 협력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당장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경남 의령군 의령읍에 문을 연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원. 경상남도교육청 제공

경남 의령군 의령읍에 문을 연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원. 경상남도교육청 제공

2023년 7월31일 기준 의령군 인구는 2만5751명으로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적다. 1960년대까지 10만 명을 웃돌았으나, 1966년 이후 줄곧 인구가 줄어들어 우리나라 대표적 인구소멸 위험 지역이 됐다. 또 65살 이상 노인이 1만470명으로 전체 인구의 40.7%에 이르러, 초고령사회를 넘어 초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지 오래다. 반면 의령군의 전체 학생은 153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리적으로 경남 가운데에 있다는 점이다. 경남 어디에서나 1시간30분이면 갈 수 있고, 교통체증도 없다. 경상남도교육청은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해 의령군에 미래교육원을 세웠다.

의령군은 미래교육원이 의령군에 경제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2022년 의령군은 미래교육원을 방문하는 학생들을 단체손님으로 받을 모범식당을 의령군 전체 지역에서 공개모집해 20곳을 선정했다. 또 모범 체험활동사업장 23곳도 선정했다. 의령군은 2023년 상반기 내내 주방·화장실 등 시설 개선과 위생 점검을 하고 종사자 위생·친절 교육을 하는 등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시식회를 열어 새로운 식단을 개발하고 음식 맛도 끌어올렸다. 식당 20곳과 체험활동사업장 23곳의 모범시설 인증기한은 2023년 연말 끝난다.

의령군은 식당과 체험활동사업장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4년 모범시설 심사를 ‘백지상태’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2023년 모범시설로 지정됐더라도 2024년에 다시 지정되려면 당연히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의령군은 미래교육원과 협력해서 진행할 사업을 발굴하고 확대하기 위해 2023년 6월 ‘미래교육원 연계 상생협력사업 지원 조례’까지 만들었다.

미래교육원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활력

이수광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원 원장은 “미래교육원 프로그램은 교육원 내부에서 하는 디지털 체험과 밖으로 나가서 의령군 주민들과 하는 인류학적 체험으로 구성된다. 자신도 몰랐던 소질을 발견하도록 호기심을 발동시키면 이후에는 학생 스스로 학습하고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미래교육원이 추구하는 교육 방식이다. 이를 통해 미래교육원이 경남 교육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경남 의령군 전략사업팀 담당자는 “미래교육원을 찾은 많은 청소년이 의령군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미래교육원을 다녀간 학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의령군을 방문하려는 다양한 문의도 쏟아져 들어온다. 웬만한 대기업을 유치한 것보다 훨씬 큰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의령군에 젊은 기운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의령=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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