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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당은 여당 때 방송법을 개정하지 않았나?

여당 때 개정했으면 해임 사태 막을 수도… 이젠 개정안 통과돼도 거부권 가능성 높아
등록 2023-09-01 11:49 수정 2023-11-10 08:35
윤석열 정부는 친정부 성향의 인물들을 공영방송 경영진에 넣으려고 방송통신위원들과 공영방송 이사진을 무리하게 해임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공사. 강창광 기자

윤석열 정부는 친정부 성향의 인물들을 공영방송 경영진에 넣으려고 방송통신위원들과 공영방송 이사진을 무리하게 해임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공사. 강창광 기자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어느 쪽으로도 비토(반대)를 받지 않는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되지 않겠느냐.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최선은 물론 차선도 아닌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2017 년 8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방송법 개정을 가로막은 문 대통령 발언

윤석열 정부에서 공영방송을 두고 벌이는 이 난리굿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바로 이 발언에서 비롯했다. 문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이 없었다면 당시 여야는 2016년 7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162명)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 4개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했을 것이다. 당시 ‘촛불혁명’으로 여야가 바뀐 상황이어서 야당도 여당을 견제하는 이 개정안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방송법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7 대 4(한국방송공사), 6 대 3(문화방송)으로 돼 있는 여야 추천 공영방송 이사의 비율을 7 대 6으로 바꾼다. 둘째, 대통령에게 공영방송 사장을 임면(임명과 해임) 제청할 때 재적 이사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특별다수제). 이 법안의 취지는 양대 공영방송 사장을 임면할 때 여당이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장을 세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당시 여당 민주당은 태도를 바꿨다. 방송법을 다루는 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8월25일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토의해본 결과,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만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한 뒤 2018년 12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의견서’를 국회에 냈다. 박홍근 법안에 ‘국민 추천 이사’가 추가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박홍근 법안과 방통위 의견서는 20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면서 모두 폐기됐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이 발언과 민주당의 태도 변화에 대해 야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코드 사장이 임명될 수 있도록 방송법을 개정하라는 주문이다”, 바른정당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건가”,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스스로 정기국회에서 제출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법의 골간에 수정을 가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홍근 의원은 “애초 법안이 정치권으로부터의 중립성은 보장하는데, 독립성은 보장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또 공영방송의 여야 이사 구도가 7 대 6이 되는데, 3분의 2 동의를 받으려면 사장을 세우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현재 본회의에 부의한 법안과 같은 내용으로 바꾸는 게 낫다고 봤다”고 말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민주당이 야당 때는 바람직한 법안을 냈고, 여당 때는 자신들의 이익에 따랐다. 민주당이 야당 때 추진한 법안을 처리하면 자신의 뜻에 맞는 공영방송 사장을 세울 수 없었다. 자기 쪽 사람을 안정적으로 세우려고 방송법을 개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친정부 성향의 인물들을 공영방송 경영진에 넣으려고 방송통신위원들과 공영방송 이사진을 무리하게 해임하고 있다.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정용일 기자.

윤석열 정부는 친정부 성향의 인물들을 공영방송 경영진에 넣으려고 방송통신위원들과 공영방송 이사진을 무리하게 해임하고 있다.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정용일 기자.

자기 쪽 사람을 사장으로 세우겠다는 욕심

제21대 국회가 들어선 뒤인 2020년 11월, 정필모 민주당 의원은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폐기된 박홍근 법안의 핵심 내용에 ‘100명의 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를 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민주당 내부에서 별 관심을 얻지 못했다.

민주당은 20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에야 정필모 의원이 당론으로 대표 발의한(170명)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을 냈다. 이 개정안은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하는 ‘25명의 운영위원회’로 바꾸고, 시청자사장추천평가위원회가 복수의 사장 후보를 추천하며, 특별다수제로 사장을 임명 제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2차 검찰개혁(이른바 검수완박)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개정안은 실종되고 말았다.

결국 5년 만에 다시 야당 신세가 된 민주당은 돌고 돌아 다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4월 과방위 이름으로 발의된 방송법 개정안 대안(종합안)이다. 이 법안은 기존의 11명 이사를 21명으로 늘리고, 국회(5명)뿐 아니라 시청자위원회(4명), 언론학회(6명), 방송인단체(6명)가 이사를 추천하도록 했다. 또 100명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2~3명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해 특별다수제로 의결하도록 했다.

앞서 민주당은 2023년 3월21일 국회 과방위에서 4개 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 부의해달라는 요구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또 4월27일엔 역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상태에서 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4월14일 헌법재판소에 ‘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 2차례 방송법 개정안을 낸 정필모 의원은 “이번에 국회 본회의에 개정안을 부의하면서 여당일 때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내가 한국방송 부사장 때 경험한 문재인 정부는 공영방송에 개입하지 않는 정부였다. 그런 정부가 왜 방송법을 개정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청와대에 여러 차례 방송법 개정을 요구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낸 방송법 개정안은 9월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함께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기국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이 처리되더라도 이것이 공포, 발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방송법과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된 공영방송을 만들 수 있는 방송법은 윤석열 정부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총선에서 방송법 개정에 찬성하는 야당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해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해야 가능하다. 오히려 총선에서 여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방송법은 개악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공영방송의 힘을 빼거나 사영방송으로 전환하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본회의 통과하더라도 거부권 행사 불 보듯

민주당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현재 위원회 대안이 본회의에 가 있고 이것을 통과시켜야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지만, 그것 때문에 처리를 안 할 수 없다.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은 “국회에서 여야가 마지막까지 정치력을 발휘해서 협상하기 바란다. 여당이 대화를 거부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더라도 처리는 해야 한다. 그리고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내년 총선 이후 다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양당이 유불리를 가리기 어려운 대선 1년 전쯤이면 여야가 처리를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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