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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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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태원 참사 유가족 심리상담 평균 5번도 못했다

이태원 참사 정부 심리지원 상담, 48일간 유가족 평균 4.4회, 부상자 2.6회 그쳐
목격자 등 상담 인원 통계는 아예 없어… “기관이 기다린다고 생존자 찾아오지 않아”
남겨진 이들의 아픔도 돌보지 못하는 국가
등록 2022-12-24 07:14 수정 2022-12-25 00:51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 한쪽에 심리지원 현장상담소가 개설돼 안내와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 한쪽에 심리지원 현장상담소가 개설돼 안내와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정부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등을 지원하려 심리상담 창구를 마련했지만, 내실 있는 상담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 심리지원 현황 자료를 <한겨레21>이 입수해 살펴봤더니, 48일 동안(2022년 10월30일 오후 2시~12월16일 오후 2시) 상담받은 유가족은 96가구 217명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파악한 상담지원 대상 유가족 총 132가구(외국인 희생자 등 제외) 가운데 73%가 상담에 응한 셈이다.

정부가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지원하는 심리상담 대상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정부가 연락처를 확보한 유가족과 부상자, 부상자 가족에게는 직접 연락해 상담을 권한다. 이 밖에 목격자나 경찰·소방관 등 참사 대응인력, 이태원 참사로 우울감을 느끼는 일반 국민은 공식 안내 전화번호로 스스로 연락하면 정부가 상담을 지원한다. 서울 이외 지역의 거주자는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권역트라우마센터가, 서울 거주자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주로 상담을 맡는다.

상담 응한 유가족도 평균 주 0.6회 상담에 그쳐

유가족 10가구 중 7가구꼴로 상담받긴 했지만, 상담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진 못했다. 통합심리지원단(국가트라우마센터·권역트라우마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접수된 유가족들의 평균 상담 횟수는 한 사람당 4.4회에 그쳤다. 정부가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주 2회 상담을 권하지만, 상담에 응한 유가족들조차 평균 주 0.6회(대략 7주에 4.4회) 상담받은 셈이다. 이마저도 유가족 전체 상담 건수(953건)의 79.4%(757건)가 1회 20~60분 진행된 비대면 상담이었다. 60분 이상 진행된 대면 상담 비중은 20.6%에 불과했다.

부상자의 경우 상담에 응한 인원과 상담 건수가 더 적었다. 부상자 320명(2022년 12월10일 집계 기준) 가운데 193명이 상담받았고, 1명당 평균 상담 횟수는 48일 동안 2.6회였다. 부상자 가족들도 42명이 88차례 상담했는데, 평균 상담 횟수는 2.1회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권한 횟수로 보면 (48일간) 평균 7~8회 정도 받았어야 하는 게 맞는다. 그런데 상담을 뒤늦게 시작한 분도 있고 2~3회 정도 받은 뒤 ‘더는 안 받겠다’고 한 분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상담 건수가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상담 건수로 봤을 때 총 4860건 가운데 1641건(34%)은 참사를 직접 목격하거나 피해를 입지 않은 ‘일반 국민’ 상담이었다. 주로 참사와 관련한 우울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참사 관련 영상을 본 뒤 트라우마 증상 등을 호소한 이들이었다. 그다음은 목격자(1510건·31%), 유가족(953건·20%), 부상자(501건·10%), 대응인력(167건·3%), 부상자 가족(88건·2%) 순이었다. 목격자는 참사 현장에 있던 생존자나 심폐소생술(CPR) 등 구조활동을 벌인 이, 단순 목격자 등을 모두 포함한다. 대응인력은 경찰, 소방관 등 당시 참사 현장에 대응한 이들이다.

특히 유가족과 부상자, 부상자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상담과 관련해선 전체 상담 건수만 있을 뿐 상담 참여 인원을 따로 집계하지 않았다. 목격자와 대응인력은 트라우마 위험이 큰 그룹이지만, 1인당 평균 상담 횟수나 상담 시간 등 상담의 지속도를 가늠할 지표도 없는 셈이다.

2022년 12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민의힘 위원과 이태원 참사 유족 간담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12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민의힘 위원과 이태원 참사 유족 간담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온라인 댓글 등 2차 가해 속 고립되는 이들

국가지원 심리상담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좀처럼 닿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12월12일 극단적 선택을 한 10대 생존자 ㄱ군은 정부 지원 상담을 받지 않은 부상자 가운데 한 명이다. ㄱ군은 또래 친구 2명을 참사로 잃었고 자신도 근육이 파열돼 입원치료를 받았다. ㄱ군은 복지부가 관리하는 상담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지만 정부 지원 상담은 받지 않았다. 대신에 개인적으로 정신과를 방문해 20여 분 상담만 5차례 받았다. 복지부는 ㄱ군 부모에게 정부 지원 상담을 안내했으나 ‘나중에 하겠다’는 대답을 들어 상담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ㄱ군의 죽음에 대해 12월1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본인이 생각이 좀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최현정 충북대 교수(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 위원장)는 “기관 시스템이 있다고, 거기 앉아 기다린다고 생존자가 찾아오지 않는다. 정부가 실제로 이들의 회복에 어떤 환경과 분위기를 제공하느냐가 중요한데 온라인상의 비난이 계속되고 책임자들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을 반복한다면 (피해자들은) 당연히 이런 국가가 갖춰놓은 체계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ㄱ군이) ‘왜 안 왔냐’가 아니라 ‘우리가 놓쳤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생존자들이 온라인 댓글 가해 등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월14일 문화방송(MBC) 보도에 따르면, ㄱ군은 학교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는 등 일상을 살아가려 애썼으나 ‘놀러 가서 죽었다’는 2차 가해성 온라인 기사 댓글을 보고 분노했다고 한다. 더구나 정부나 여당 관계자들도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은 “자식 팔아 한몫 챙기려 한다” “나라 구하다 죽었느냐”는 내용을 담은 게시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럿 게시했다.

정부가 전문적인 재난 심리 상담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세심하게 유가족이나 생존자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최경아씨는 12월16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 “나 마음 편하자고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상담에 응한 다른 가족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사 유가족에 맞춘 상담이 아니라 너무 일반적인 상담을 받고 와서 오히려 힘들다는 말을 하기가 머쓱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들 ‘갈 필요 없다’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에게 “연락 주겠다”더니 감감무소식

<한겨레21>과 인터뷰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 서미정(50)씨는 참사 이후 경찰로부터 연락처를 받은 영남권트라우마센터(국립부곡병원)에 전화해 심리상담 담당자 이름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런 담당자가 없고, 찾아본 뒤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만 하루가 지날 때까지 답은 오지 않았다. 24시간이 지나서야 서씨는 다시 트라우마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를 다시 물어보니 “다 외부에 출장 나가 있어서 명단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서씨는 “담당자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차도 모르는 것을 보면서 ‘내가 국가로부터 농락당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각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전체 상담 4860건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상담을 맡았지만, 서울권을 제외하고는 별도로 이태원 참사 관련 상담 교육을 받지 않았다. 재난 트라우마 관련 상담은 일반 상담과 달리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들은 평소 다른 업무를 하다 재난 심리 상담에 급하게 투입되거나 과다한 업무로 재난 심리 관련 교육의 이수율이 낮은 등 재난 심리의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국립정신건강센터 등 ‘2020년도 재난 심리지원 종사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이처럼 정부 지원이 미덥지 못하자 민간이 나서 ‘참사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모으려 시도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12월18일 생존자·구조자·지역주민들이 참사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전자우편과 유선전화 등의 연락 창구를 만들었다. ‘이태원에 대해 안타까운 기억을 가진 이들이 답답함과 슬픔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회복을 위해선 당사자 사이의 만남을 넘어서는 전문가의 개입이 여전히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자살, 범죄 등 폭력적 사건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는 ‘외상적 상실’(Traumatic Loss)을 경험하면 상실에 트라우마까지 겹쳐 개인의 고통이 크게 심화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상담 지원하는 체계 필요

고선규 마인드웍스 대표(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장)는 “외상적 상실을 경험하면 자신이 알던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어마어마한 혼란감과 공포, 막막한 감정을 느끼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도 많이 한다. 각자가 겪는 사별의 경험이 다 다르고 고유하기 때문에 집단모임보다도 전문가와 함께 개인상담을 시작하는 것이 회복의 급선무”라며 “(아직 정부 심리상담 지원에 시한은 없지만) 본인이 원할 땐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상담을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말이 유가족들에게 힘든 시기가 될 수 있다. “상담에 나오지 않는 이들에게 무작정 강요하기보다 ‘언제든 손 내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꼭 상담 안내를 하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 잘 보내셨는지’ 말을 건네거나 ‘가족이 생각날 땐 뭘 하면 좋은지’ 등 간단한 안내를 하며 연락의 끈을 유지할 수 있다.”(고선규 대표)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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