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지연은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지연이 중학교 3학년 때 일부러 연기학원에 보냈다. 처음엔 영 흥미 없어 하는 듯 보였다. 아빠는 “한 달만 더 다녀보자”고 구슬렸다. 연기학원 선생님은 지연의 목소리가 “밝고 예쁘다”며 칭찬했다. “연기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에 일주일 내내, 하루 6시간씩 학원을 다녔다. 그 뒤로 지연은 연기에 “푹 빠져 지냈다”.
연기를 접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독립영화도 여러 편 찍었다. 친구들은 “반전 매력이 있는” 지연을 좋아했다. 연기학원이 주최한 첫 발표회 날, 지연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청아한 목소리로 연기하고 노래해 부모를 놀라게 했다. 대학 진학 뒤에도 학교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현대무용을 배우는 등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세계를 지연은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마음만은 늘 연기 한길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연은 2022년 2월 서울에 있는 은행에 취직했다. 배우로 발탁되기까지 험난한 길을 우려하는 부모 마음을 헤아린 결정이었다. 그래도 지연은 퇴근하면 틈틈이 연습실에 들러 무용을 연습했다. 까만 무용복을 입고 음악에 맞춰 능숙하게 춤사위를 펼쳤다.
배우지망생이자 은행 직원이던 스물네 살 오지연.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 오래 기다리고 지원해준 엄마 아빠에게 지연은 고마워했다. “엄마 아빠는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것 다 해줬어.” 지연이 자주 하던 말이다. 월급을 받은 뒤론 이따금 값비싼 카드지갑이며 신발을 선물로 불쑥 내밀었다. 다섯 살 터울 동생에겐 잊을 만하면 “엄마 아빠한테 잘하라”는 잔소리를 했다.
지연의 일과는 늘 엄마와의 전화 통화로 끝났다. 매일 저녁 6시, 늦으면 밤 10시 두 사람은 약속한 듯 전화했다. “퇴근했니? 밥은?” “먹었어. 엄마는?” “이제 먹어야지.” 짧고 무뚝뚝한 대화에도 중요한 안부는 다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통화를 못한 날이면 지연은 엄마에게 귀갓길 사진을 찍어 보냈다.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그날’로부터 일주일 전, 지연은 직장에서 정규직 전환 시험을 봤다. “나 공부 안 했으니 기대하지 마.” 엄마 아빠에겐 그렇게 말했지만 지연은 열심히 공부했다. 지연의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금융 관련 용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첫 주말. 지연은 친구와 이태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시험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딸이 안쓰러웠다. “잘 놀고 와.”
10월29일 그날 밤, 지연의 엄마 아빠는 광주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 속보를 봤다. “이태원 난리 났다니까 지연이한테 전화 한번 해봐.” 아빠는 문득 불안해져 엄마에게 말했다. 열 통 넘게 전화를 걸어도, 카톡을 보내도 지연에겐 답이 없었다. 새벽 2시, 엄마 아빠는 파출소에 가서 실종신고를 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니 ‘서울 원효로3가 다목적실내체육관 인근’이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이태원은 아니니,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밤을 꼬박 새운 엄마 아빠는 새벽 5시15분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기차 안에서 다시 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경찰이 받았다. 이태원에서 분실된 휴대전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딸 지연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침 7시 무렵, 지연과 이태원에 같이 간 친구 집의 초인종을 쉴 새 없이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용산경찰서에 들러 사상자 수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전혀 아는 게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가까운 병원부터 들러보자며 택시를 잡았을 즈음 “경기 용인세브란스병원에 아이가 있다”는 경찰 전화를 받았다. 택시로 1시간10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였다. “왜 우리 아이를 그렇게 먼 곳에 떨어뜨려놨는지” 엄마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검사와 경찰은 아빠에게 “부검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태원에 마약이 돌았다더라’는 행인의 방송 인터뷰가 나왔으니 이를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 “혹시 마약 때문에 아이들이 쓰러진 게 아니냐면서 마약 검사를 해보자는 거예요. 아무 근거도 없는 말 한마디로 아이를 두 번 죽이는 거잖아요.” 지연의 가족 말고도 부검을 권유받았다는 유가족이 더 있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한겨레21>에 “개별 사안을 확인해봐야겠지만 지침상으론 부검을 권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행정 처리를 이유로 엄마 아빠를 수시로 채근했다. “상중에 무슨 구청, 시청 다 전화 와서 ‘장례비 지원해줄 테니 영수증 챙기라’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 그랬다. 그런 전화가 발인하고도 또 왔기에 제가 ‘당신 같으면 지금 그러고 싶겠냐’고 하니까 ‘죄송하다, 행안부가 집행을 서두르라고 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국가’는 정작 지연의 죽음에 대해선 아무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해밀톤호텔 앞 노상. 10.29. 22시15분 이전 사망 추정’이라고 적힌 검안서가 전부였다. 지연을 맡은 장의사는 “아이 손이 잘 펴지지 않더라”고 했다. 양손을 꼭 쥐고 몸을 막는 자세로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엄마는 그래서 궁금하다. 지연이 차가운 도로에 몇 시간이나 누워 있었던 건지, 왜 다목적체육관으로 다시 용인세브란스병원으로 저 멀리 옮겨졌는지, 희생자를 제각기 흩뜨려놓으라고 지시한 이유가 뭐였는지.
엄마는 경찰서, 병원, 서울종합방재센터 등에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 어렵사리 지연을 옮긴 구급차량의 번호판을 확인하고 지연을 옮겼다는 구급대원과 통화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날 밤 지연이 왜 여러 장소를 전전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참사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초적인 정보도 모으지 못하는데 윗선까지 올라가는 수사를 언제, 어떻게 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숨기지 말고 진실을 알려달라는 겁니다.”
지연이 직접 받아야 했을 은행 정직원 사령장은 장례식장 위패 옆에 놓였다. 지연의 휴대전화엔 오늘도 메시지가 온다. 그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의 연락이다. 엄마 아빠는 ‘첫째공주’로 저장한 지연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울 수 없다. 평생 해지하지 않고 그 번호를 지연의 번호로 남겨둘 생각이다. “난 죽을 때까지 우리 애기를 못 놓을 것 같아요.” 아빠는 길을 걸을 때 “우리 딸 또래를 마주칠까봐 얼굴도 못 든다”. 엄마는 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자꾸만 딸에게 카톡을 보낸다. “지연아, 보고 싶다.”(11월1일) “지연아 드디어 동생 수능 끝났네.”(11월17일) “지연아, 뭐 하고 있니? 엄마는 지연이 생각…”(11월22일)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지연아, 엄마가 오늘 너의 일로 서울에 왔다가 내려가는 길이야.
너는 왜 그리 서울이 좋았니? ㅠ.ㅠ
엄만 네가 없는 서울이 이제 증말 싫다.
내려가는 동안 유튜브를 소리 없이 잠깐 보았는데 차마 볼 수가 없구나.
너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지연아, 엄마가 미안해.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너를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의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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