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영국 런던 남동부의 엘텀 지역 버스정류장 인근 도로에서 19살 흑인 스티븐 로런스가 살해당한다. 가해자는 백인 청년 5명. 로런스는 단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점이 그가 범죄 대상이 된 유일한 이유였다.
명백하게 인종차별에 기반한 혐오범죄였는데도 수사기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 로런스의 부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조사 과정에서 경찰관의 인종차별적 태도가 드러났다. 런던 중앙형사법원이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건 무려 19년이 지난 2012년이다. 그의 죽음은 영국 내 혐오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영국의 ‘스톱 헤이트 유케이’(Stop Hate UK)도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단체다.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 단체의 재정 담당으로 일하는 존 갈런드(사진) 영국 서리대학 사회학 교수를 2022년 9월30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단체의 핵심은 영국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무료로 장애, 인종,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 나이, 하위문화 등에 기반한 혐오범죄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경찰 등을 믿지 못해 혐오범죄 신고율이 실제 피해의 10분의 1 정도로 매우 적기 때문이다.” 로런스의 죽음을 재조사한 뒤 나온 보고서도 “혐오범죄 신고를 장려하기 위해선 ‘경찰서 이외의 장소’에서 ‘24시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여전히 혐오범죄 피해자들은 경찰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수사 과정에서 차별적인 발언을 듣기도 한다. 이 단체로 신고할 경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사건 이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안내한다. 경찰에게 가기 꺼리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갈런드 교수)
혐오범죄 가운데는 언어적인 괴롭힘, 예컨대 부정적 단어로 피해자를 규정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신체적 추행도 포함된다. 외상뿐 아니라 ‘심리적 스트레스’도 피해로 본다. 이런 초기 단계부터 적절히 개입해야 혐오범죄가 더 극단적인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영국에선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과 평등법(Equality Act)에 기반해 혐오표현 규제가 가능하다.
최근 가장 논쟁적인 주제는 ‘여성혐오’(Misogyny)에 기반한 범죄를 ‘혐오범죄’에 포함할 것이냐다. 영국에서도 여성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여성계를 중심으로 혐오범죄 판단 기준에 성(Sex)이나 젠더(Gender)를 포함하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2020년 영국 법률위원회도 관련 법 개정을 주장했지만 보수당 정부는 반대한다. 기존 법률로도 여성 대상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데다 경찰 부담이 커진다는 등의 이유다. 갈런드 교수는 유보적 입장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등 젠더 기반 폭력으로도 포섭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혐오범죄와 관련한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려면 “정치 영역 바깥에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까지 (혐오범죄에 젠더를 포함하는) 법 개정 운동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정치 성향이나 지지 정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예를 들어 프리미어리그 축구팬을 대상으로 혐오범죄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보편적으로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런던(영국)=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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