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문제’라고 모두 말하지만, 각자가 인식하는 혐오는 다르다. 무엇을 어디까지 혐오로 인식할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지를 두고 또 다른 충돌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혐오의 원인과 맥락에 접근할 길을 찾는 대신, 겉으로 드러난 갈등 자체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한겨레21>은 이같은 혐오 현상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분석해보려 했다. 1부에서는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뉴스 댓글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한국의 혐오가 온라인 공간에서 어떤 맥락 안에 축적돼왔는지를 살폈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보다 혐오를 둘러싸고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언론과 정치인의 목소리를 통해 혐오가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이 큰 곳이기도 하다. 여성혐오 표현에 거울을 비추는 방식(미러링)으로 혐오를 되돌려주려 한, 온라인 커뮤니티 ‘메르스갤러리’의 성장 전후로 일간베스트저장소, 에펨코리아 등 남초 커뮤니티에서 어떤 흐름이 나타났는지, 퀴어문화축제 개최 전후로 포털 뉴스 이용자의 혐오 댓글 작성 행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분석했다. 분석 방법으로는 혐오표현을 학습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헤이트스코어 알고리즘)을 이용했다. 1부에 이어 제1434호에 연재되는 2부에서는 혐오표현과 혐오범죄 등에 대응하는 외국의 사례를 전할 예정이다. _편집자주
지난주 포털에서 뉴스를 읽고 댓글을 단 적이 있는가? ‘없다’면 당신은 포털 뉴스 이용자의 93.2%에 속한다. 포털 뉴스 이용자 4천여 명에게 물어보니 ‘지난주 포털 뉴스 댓글을 단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6.8%에 불과했다(58쪽 그림 참조,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언론수용자 조사’). 비슷한 경향은 이전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최근 석 달 동안 뉴스 댓글창이나 토론 게시판에 글을 작성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의 비율을 짚어보니 2013년에는 5.3%, 2017년에는 8.0%였다. 온라인 세상의 거주민이 100명이라면 7명 정도만 말하고 93명은 침묵한다는 얘기다.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는 7명 간의 격차도 크다.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른바 ‘헤비 댓글러’의 활약이 눈에 띈다. 댓글 작성 수 기준 상위 10%가 단 댓글이 전체 댓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네이버와 다음 모두에서 70%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SBS 2021년 1월 ‘0.03%가 30% 차지… 포털 뉴스 댓글은 여론인가?’ 보도 참조) 같은 조사에서 댓글 작성 수 기준 상위 1%가 단 댓글은 전체 댓글 분량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온라인상 혐오표현도 비슷하다. ‘최근 1년간 디지털 공간에서 혐오표현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성인의 비율은 12.0%였다(방송통신위원회·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1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온라인 공간을 혐오의 정서가 팽배한 곳으로 만드는 일은 전체 이용자를 기준으로 하면 극히 일부가 적극적으로 하는 셈이다.
우리 사회 대다수가 혐오발언을 하지 않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혐오 발화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극소수의 견해가 과대 대표돼 정치적 의제가 되고 지배적 여론으로 오인되면서 결국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데, 그 이유는 뭘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파악해야 하니 한번 따져보자.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기성 언론이 거치는 게이트키핑 과정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포털 댓글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 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누구나’에는 혐오에 사로잡힌 사람, 일부러 자극적인 메시지를 올려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거나 관심을 끄는 데서 만족을 얻는 ‘인터넷 트롤’ 등이 포함된다. 온라인이 제공하는 익명성, 상호작용성, 즉흥성 등은 대면 상황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을 내뱉는 걸 가능하게 한다. ‘댓글 전쟁’이 벌어지면 언어는 더욱 거칠어진다.
넘쳐나는 온라인 게시물 때문에 ‘주목 경쟁’이 벌어지면서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혐오의 언어를 일부러 사용하거나, 허위 정보와 무차별적 인신공격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혐오발언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다시 추천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혐오의 언어는 더욱 가시화되고 별풍선과 슈퍼챗을 거치며 돈이 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극단화하고, 혐오의 판을 깔아주며, 증오 비즈니스를 성행하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는 공론장, 엄청난 양의 정보가 올라오는 온라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와 견해를 접할 기회가 늘어날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개인맞춤형 정보가 제공되다보니 자신만의 필터버블에 갇힌 사람들은 애초에 다양한 견해에 노출될 기회 자체가 적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은 인지부조화가 낳는 불편함을 견디기보다는 자신이 기존에 가진 관점에 부합하는 편안한 정보만 취사선택해 받아들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사회학에서 ‘동종애’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현상, 즉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선호한다는 ‘유유상종’ 현상은 온라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더 극단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는 ‘집단 극화’ 현상 역시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토론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빈번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 쪽으로 끌려가기 마련이고 여론은 더 극단적으로 변한다.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소수지만 이들 목소리가 다수의 지배적 여론으로 둔갑하는 일은 ‘침묵의 나선 모델’로 설명해볼 수 있다. 1970년대에 이 모델을 주장한 엘리자베트 노엘레노이만은 언론 보도를 통해 사람들은 특정 견해를 지배적 여론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와 일치하는 견해를 가진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면서 결국 언론이 보도한 견해가 지배적 여론이 된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침묵의 나선 모델이 작동한다는 걸 보여주는 실증 연구가 있다.
침묵의 나선 모델을 온라인 혐오에 적용해보면 두 가지 유추가 가능하다. 우선 온라인 이용자는 온라인에서 혐오의 언어를 접하면서 그런 견해가 우리 사회의 지배적 여론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앞서 살핀 것처럼 극소수의 견해인데도 말이다. 혐오 발화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은 침묵하면서 온라인 공론장은 혐오의 언어로 점철된다. 혐오 발화자의 견해가 온라인상 지배적 여론이 되는 것이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 내용을 언론 보도 등에서 간접적으로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10년 전과 이른바 일베식 혐오표현을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 직접 그것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을 비교해보면 혐오의 일상화/주류화를 우려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온라인 혐오 발화자들의 목소리에 유력 정치인이나 기성 언론이 힘을 싣는 경우다. 그냥 두었더라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쳤을 목소리를 정치인이 언급하거나 언론이 보도하면서 정당성을 얻게 되고 지배적 여론으로 간주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처음 목소리를 낸 혐오 발화자는 자기효능감을 맛보고 자신감을 얻어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침묵하는 다수는 유력 정치인과 기성 언론이 이들의 목소리를 지지하거나 인용하는 것을 보고 혐오 발화자의 목소리가 타당한 견해이며 우리 사회의 주류 의견이라고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분노의 정서가 고조되기 마련인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고심하기보다는 공포와 혐오를 조장해 이득을 얻는 정치는 끓는 기름에 물을 붓는 격이다. 클릭 장사를 하느라 혐오 댓글을 퍼나르며 확성기 노릇을 하거나 기계적인 중립보도에 매몰돼 혐오발언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 타당한 주장인지는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인용하는 언론 보도는 꺼져가는 작은 불씨에 산소를 공급한다. 이렇게 되면 극소수가 적극 발설하는 혐오의 목소리는 온라인 세상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중요 의제와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힘으로 작동해 파국을 낳는다.
어느 사회에나 혐오와 증오에 가득 찬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 특성상 이들의 발언 자체를 근절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지 않도록 플랫폼의 디자인을 변화시킬 것인가, 이들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의 지배적 여론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인가, 극소수의 목소리에 기대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정책을 추진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태풍 ‘힌남노’와 ‘무이파’가 동시에 발생해 큰 피해를 초래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컸다. 다행히 두 태풍이 충분히 가까워지지 않아 ‘태풍 간 상호작용’(다수 언론에서 ‘후지와라 효과’라고 표현했는데 기상학계는 ‘태풍 간 상호작용’이라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 현상을 처음 발표한 일본 기상학자 후지와라 사쿠헤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기 때문이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극소수가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혐오의 목소리가 거대한 태풍으로 변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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