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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토마토 따는 필리핀 노동자들

부여군, 필리핀 코르도바시와 협약 맺고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안정적 노동력 확보, 중간 갈취 없는 임금, 농가-이주노동자 ‘윈윈’
등록 2022-09-06 16:06 수정 2022-09-07 10:57
충남 부여군의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온 메이펄, 에이프릴, 마리아, 브록 실드씨(왼쪽부터) 등 필리핀 노동자들이 2022년 8월23일 부여의 한 토마토농장에서 농장 대표 최종길씨(맨 오른쪽)와 토마토 모종을 심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충남 부여군의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온 메이펄, 에이프릴, 마리아, 브록 실드씨(왼쪽부터) 등 필리핀 노동자들이 2022년 8월23일 부여의 한 토마토농장에서 농장 대표 최종길씨(맨 오른쪽)와 토마토 모종을 심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따뜻한 고향 뉴스인 ‘우리동네뉴스’(우동뉴스)가 2022년 한가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한겨레21>이 평소에 전하지 못하는, 전국의 흥미롭고 의미 있는 뉴스가 이번에도 푸짐합니다.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준비해주셨습니다.
먼저 밝은 뉴스부터 보면, 충남 부여군의 특별한 외국인 농업 노동자 정책, 경기 북부의 외국인 안보 관광객 급증,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의 조개 줍기, 거의 1세기 만에 다시 연결된 서울 창경궁과 종묘 기사가 눈에 띄네요.
물론 이번 한가위에도 묵직한 이슈가 있습니다. 제주의 외국인 여행객 입국 제한, 낙동강 8개 보로 수질이 나빠진 경남의 농업, 대구·경북의 수돗물 고민, 국립대에 처음 설치된 대전 충남대의 ‘평화의 소녀상’ 등입니다.
또 경전선 전남 순천역은 그 위치를 두고, 광주에선 대규모 쇼핑몰을 어떻게 할지, 전북 남원에선 산악열차를 놓을지 고민인가봅니다. 충북 청주에선 도청의 공무원 주차장 축소, 강원도에선 세 번째 ‘특별자치도’의 실효성, 경기도는 혁신학교 축소 방침이 논란입니다.
어떻습니까? 올해 한가위에도 엄청난 뉴스가 각 지역에서 쏟아졌지요? 우동뉴스와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_편집자주

“내 이름은 브룩 실즈예요. 하하, 한국에 온 지 두 달 됐어요.”

브록 실드(31)씨는 충남 부여군 장암면의 한 토마토농장에서 일한다. 2022년 8월23일 부여 농장에서 브록 실드씨를 만났다. “브룩 실즈가 맞냐”고 물었더니 “브록 실드라고 이름을 말하면 다들 ‘브룩 실즈냐’고 되물어 브룩 실즈가 별명이 됐다”며 소리 내 웃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브룩 실즈가 유명한 배우라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밤새 안녕’ 없어졌다

필리핀 세부의 코르도바시가 고향인 그는 7월1일 동네 친구인 에이프릴(34), 메이펄(32), 마리아(32)씨 등과 같이 이 농장에 왔다. 이들이 이 곳에 온 것은 부여군이 코르도바시와 협약을 맺고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시행한 데 따른 것이다. 외국인노동자의 국내 입국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부여군의 프로그램은 특별히 관심을 끈다. 8월28일 현재 120명의 외국인노동자 가운데 이탈자가 1명에 그쳤다.

부여군의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은 농가에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는 정책이다. 외국인노동자는 불법체류를 하지 않고 소개 수수료 없이 일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부여군과 코르도바시가 맺은 협약 내용은 △출국 전에 1명당 보증금 150달러 예치(귀국시 반환) △한국에서 받는 임금의 60%를 필리핀 금융기관에 입금(귀국시 지급) △한국에서 무단이탈하면 일가친척의 해외 노동 제한 △부여군이 농장주 등 대상 인권교육 실시 △부여군에서 노동실태 정기 점검 △부여군은 외국인노동자의 숙소 시설 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 농장이 외국인노동자를 재고용하고 싶어 하고 노동자도 다시 일하기를 원하면 부여군과 코르도바시가 신속하게 재입국을 돕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협약의 뼈대는 부여군과 농민들이 논의해 만들었다. 인력 확보가 농사짓는 데 필요한 최우선 조건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밤새 안녕’이란 말이 나오면 한숨부터 쉰다. ‘밤새 안녕’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월급을 받으면 야반도주하듯 떠나는 바람에 월급날이면 밤잠을 설친다는 뜻이다.

줄 만큼 줄 테니 떠나지 말아주오

최종길(55) 배불뚝이농원 대표는 “15년 동안 외국인노동자들을 고용했는데, ‘밤새 안녕’이 되풀이됐다. 올봄에도 토마토를 수확하지 못해 3t이나 주스로 만들었다. 월급 줄 만큼 주고 처우도 개선해줄 테니 어디 안 가고 일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1~6월, 8~12월이 시설 토마토 수확기다. 7~8월과 12~1월은 덩굴을 걷어내고 새 모종을 심는 시기다. 외국인노동자에게 높은 숙련도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부여군은 농민들의 바람을 모아 정책화했다. 2021년 말 필리핀 코르도바시에 합법 고용과 안전·인권·임금 보장을 제안했다. 제안은 곧 합의로 이어졌다. 코르도바시도 일하러 외국에 간 주민들이 중간 알선책에게 임금을 갈취당하는 실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27일 박정현 부여군수와 메리 테리스 시토이조 코르도바시장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코르도바시는 ‘세코’(지역 노동자복지신용협동조합), 부여군은 부여군농업회의소를 각각 업무 대행업체로 지정했다.

외국인계절근로자 수요 조사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군이 2021년 11월 조사한 결과, 230개 농가가 994명이 필요하다고 희망했다. 부여군 농업정책과 김다연씨는 “부여 관내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는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금을 더 주면 옮겨다니는 게 일상화돼 있다. 이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농민들이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몰렸다”고 밝혔다.

부여군의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으로 2022년 5~6월 입국한 필리핀 노동자는 3차례 120명이다. 이 가운데 40명은 농협이 관리하고, 80명은 27개 농가에 3~4명씩 배치됐다. 농가는 군이 노동자 숙소가 잘 갖춰졌는지, 농장 관리자가 인권교육을 이수했는지, 농장 시설 등 노동조건이 우수한지 등을 평가해 선정했다.

농가는 외국인노동자에게 최저시급에 준해 한 달 평균 205만원을 지급한다. 수확기에 일이 많으면 시간외수당도 지급할 예정이다. 임금 가운데 최대 17%까지 농가가 숙식 비용으로 받는다.

이문환 부여군농업회의소 인력관리팀장은 “7~10일 단위로 농가를 점검한다. 농가들은 이불, 가전제품, 조리도구, 식재료 등을 제공하는데 숙식 비용의 몇 배를 쓸 정도로 외국인노동자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며 “제도가 시행된 지 두 달이 채 안 됐는데 이탈한 노동자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싶다는 농민 문의가 잇따른다”고 귀띔했다.

부여군은 2023년 새해에 외국인계절노동자를 400명으로 늘리고 입국 시기도 수확기인 1월과 8월에 맞출 계획이다. 이에 따라 라오스, 베트남의 지방정부와 필리핀 코르도바시와 유사한 조건의 노동력 파견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현재 입국한 외국인계절노동자들은 고학력자가 많아 현지에서도 농사지어본 경험이 없는 이가 적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하게 일하는 등 한국에 적응한다. 농민과 외국인노동자가 서로 원하면 신속하게 재입국할 수 있어 농가는 숙련된 일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치 좋아하는 ‘한국 입맛’

브록 실드씨는 전자제품 판매원, 마리아씨는 코르도바 인근 만다우에시의 부시장 비서로 일했다. 메이펄씨는 부여군과 협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로크 이부란 코르도바시 시의원의 딸로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공부했다. 에이프릴씨는 필리핀의 가구공장에서 근무하는 한국인과 결혼한 뒤 강원도 정선의 곤드레농장 등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들은 모두 2021년 말 세코가 공지한 한국 취업 프로그램에 신청하고 2022년 2월에는 한국어와 한국농업 등 기본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부여군과 코르도바시의 협약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며, 문제가 있거나 일이 힘들지 않다고 밝혔다. 맥주와 치킨, 김치를 선호할 정도로 입맛도 한국인과 비슷하다.

다만 ‘한국어’는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브록 실드씨는 돈을 모아서 동생과 조카들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꿈이다. “조카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다. 또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동생의 건강검진비와 출국 비용도 마련해줄 계획이다.” 메이펄씨는 ‘애완동물용품점’을 열 생각이다. 마리아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 한국이 내 희망이다.”

부여=글·사진 송인걸 <한겨레>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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