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이 되도록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주변에 티내지 못한다.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발언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여성들 표가 결집될 리 없다’는 말은 그래서인지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2등 시민이라는 무기력함도 생겼지만 동시에 투표해야하는 이유가 됐다. 성평등 관점이 존재하지 않는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줄 수 없다고 마음을 굳혔다.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준석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많은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안 넘어갔다는 분위기다. 선거를 앞둔 1~2주 사이에 여성 커뮤니티에는 굉장히 많은 파동이 있었다. 이 후보는 여성시대 커뮤니티에 20초 남짓 인사 영상을 올렸다. 이후 다양한 ‘재명’이 생겼다. 날조된 기사로 이재명 후보를 오해해서 미안했다는 ‘쏘리재명’. 윤석열 후보가 너무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재명 찍는다는 ‘크라이재명’. 마지막으로 살려고 절박해서 이재명을 찍게 된다는 ‘절박재명’까지 나왔다.
여성의 삶이 나아지려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뽑아야 했지만, 그나마 여성에게 덜 피해를 주는 후보가 이 후보라 생각했을 뿐이다. 보이지 않은 소수를 대변해준 심 후보에게 힘을 드리고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죄책감이 들고 죄송하다. 투표하고 나서 심후보의 펼침막을 보는데 눈물이 글썽할 정도였다. 주변에서 정의당을 후원하고 있고 나도 생각 중이다. 마지막 발언에서 성소수자를 심 후보가 언급해주셔서 감사하다.
40대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먹고사는 고민만 했다. 50대 중반이 되고 나서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러시아나 중국이 21세기판 독재국가처럼 굴러가는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만큼은 정말 제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당선자에게는 부정적인 생각밖에 안 든다. 검찰개혁은 완전히 과거로 돌아갈 것만 같다. 검찰총장에게 모든 권한을 강화시켜 검찰공화국을 만들지 않을까, 검찰이 대통령의 일개 사조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근혜 정부 때처럼 블랙리스트가 나오거나, 이명박 정부 때처럼 민간인을 사찰하면 어쩌지 싶다.
정현우(가명)정치는 내 주변의 삶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자꾸 관심이 간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삶에 이익이 되냐는 기준으로 투표한 건 아니었다.
나와 내 친구들의 삶에 그나마 덜 피해 가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봤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기가 어려워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겨우 투표했다. 엄청난 부자가 아니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가 아닌 사람들이 불이익을 덜 받고 덜 차별받는 세상을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에 가장 실망했던 점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 것이었다.
윤석열 당선자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약속은 다 실천해줬으면 좋겠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후보가 말한 연금개혁 공약도 포함된다. 고령층의 고독사 문제도 심각하다. 다만 윤 당선자는 언론을 선별적으로 인터뷰하는 모습에서 불통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자신이 불리한 곳도 선뜻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서로 욕하다가 끝난 선거라 아쉬웠다. 특검을 해서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로 대선이 끝나버린 듯싶다. 이런 상태에서 초박빙 대선 결과가 나와버려 향후 5년간 정치적 내전 상태가 될 것 같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무너질 노동관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남성도 여성도 힘들겠지만 여성이 더 타격을 받을 것이다. 정책 지향은 보수정당이니 보수적으로 하겠지만 국민이나 언론사나 시민단체와 소통의 끈은 놓지 않았으면 한다.
20대가 거대 양당 사이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을 강요당했다는 느낌도 있다. 대학생 때부터 정의당에 표를 주던 사람으로서 심상정 후보를 뽑았다. 3~4%를 득표하리라 예상했지만 그에 못 미쳤다. 다만 주변 여성들을 보면, 꾸준히 정의당 후보를 뽑다가 이번에 이재명을 뽑았다는 말이 많았다. 윤석열과 이준석이 활개치는 모습을 보기 싫다는 정서였다. 몇몇 친구는 윤석열 대통령 시대를 무서워했다. 다들 성별 갈라치기를 하며 표 계산만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정치에 관심 없는 친구들을 봐도 자신을 위해 정치가 대체 무엇을 해주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이준석이 세대포위론을 말했지만 자기가 판 짰던 것과 대비해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본다.
파도대선은 단지 대통령을 뽑는 장이 아니라, 공론장이 활발해지는 기회라 본다. 제3지대 후보를 관심 있게 보던 사람으로 안타까움이 큰 대선이었다. 언론도 거대 양당 후보에게만 주목해 다른 정보를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어서다. 대안언론을 통해 소수 후보들의 정보를 찾아보게 됐다. 이름을 가리고 거대 양당 후보의 공약을 보면 다 비슷했다. 재벌개혁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조국 사태로 시끄러웠는데 교육제도에 대한 토론도 거의 없었다. 부동산 이야기는 공급일변도였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제외하고 별 차이를 못 느꼈다. 기후위기가 중요했는데 두 후보 다 이야기하지 않고 대장동 의혹에 주목했다. 대선 후보들은 전세계의 평범한 시민이 가져야 할 기후위기에 대한 최소한도의 관심조차 없었던 셈이다.
인물을 보고 뽑기 어려운 대선이었다. 볼 만한 공약도 없었다.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쭉 발전하며, 기존 발전 방식을 고수해온 이들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싸움. 이렇게 이번 대선을 규정해야만 투표의 의미가 해석 가능할 거라 봤다. 한강의 기적을 말하며 희생을 덮고 가는 시대와 달리, 사회적 비용을 치러서라도 사회적 약자를 어루만져주는 시대가 오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초박빙의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전략이 아쉽다. 민주당이라면 노무현의 지역균형발전을 이어가고,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는 모세혈관 같은 정책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홍이신새벽 5시까지 선거 결과를 끝까지 다 봤다. 개표율 98%가 될 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혹시나 기적을 바랐는데 안 되더라. 이번 대선에서 성별, 세대 간 갈라치기가 싫었다. 아무리 당선이 중요하지만 아들과도 정치적 대화를 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아들들은 2번이었다. 2번을 찍으려는 아버지와는 언쟁을 한 적이 있지만, 아들에게는 차마 강요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경험이고 살아갈 세상이니까. 물론 아들들은 아빠의 의중을 알겠지만 나름대로 판단해보라고 지나가는 소리로 말했다. 아내를 통해서 대체 왜 2번을 지지하는지 알게 됐다. 공약이 좋은 거 같다는 말을 들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메시지만 ‘이대남’에게 남은 듯싶다.
한쪽에선 갈라치기였다면 다른 쪽에선 정치가 희화화했다. 무속 논란이 일어나고 주변 가족을 들춰내고 온갖 네거티브가 횡행했다. 일단은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으니 공약부터 잘 지켰으면 좋겠다. 서울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어떻게 옮기는지 지켜보겠다. 주식양도세를 감면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떻게 반대편과 합의해서 추진하는지 보겠다.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 잘 써서,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해가길 바란다. 그렇게 사람 살기가 좋아지면 그간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까.
이번 정부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노동문제다. 출산도 남녀갈등도 다 노동 양극화가 원인이지 않나 싶다. 여성이 안전하게 충분한 소득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저출산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거라고 본다. 아울러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보니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윤석열 당선자는 기업 규제를 풀어나갈 거라고 밝힌다. 물론 경제활성화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활성화된 노동자 권리가 다시 축소되지 않을까 싶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되는 과제가 남았는데 더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행보로 기업가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어기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 하는 법이 될 수도 있다.
매운생각혐오와 배제의 언어로 정권교체가 된 사실이 제일 두렵네요.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더 진보적인 사람들의 선택이 폄하되지 않기를. 혐오와 배제의 극우정치를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죠. 민주주의가 계속되는 한 선거 역시 계속되니, 모두 힘내보기로 해요!
나는 오랜 진보정당 지지자다. 더불어민주당이 고작 몇 개의 의석을 더 확보하려고 위성정당을 만들어 진보정당의 의석을 뺏은 점이 안타깝다. 그 욕심 때문에 다당제가 자리잡지 못했고 양대 진영 간 대립이 극심해진 대선이 됐다고 본다. 그럼에도 사전투표 때는 단단히 마음먹고 최악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태어나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이재명 후보는 비록 패배했지만 민주당과 국회는 반드시 다당제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선거제도의 비례성 제고 방안과 대선 결선투표제를 입법하기를 바란다. 선거와 관련된 규칙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존재는 국민이다. 현재 의석을 가진 정당만이 게임 룰을 정할 권리를 가진 건 아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정권심판만을 외칠 뿐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정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주변에는 검찰 중심 세력과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탄핵 국면에서도 변신해가며 살아남았던 장제원 같은 ‘윤핵관’들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란 걱정이 든다. 그럼에도 제발 윤 당선자가 다수의 시민이 겪는 삶의 어려움에 공감하려 노력하기를, 그 어려움을 완화할 효과적인 정책 수단을 만들고 집행할 능력이 있는 인재를 등용해 조직을 운영하기를,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정착시킬 제도 개혁을 할 의지를 조금이라도 갖추기를 간절히 바란다.
벌써 5년 뒤 대선도 걱정된다. 그때 내 아들은 11살이 된다. 혹여나 아들이 그즈음부터 여성 혐오나 외국인 혐오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벌써 걱정된다. 혐오의 감정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 했던 세력이 이번 선거 결과를 성공이라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혐오와 불관용의 태도는 결코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백&수모든 나라는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습니다. 우리 수준이라고 봅니다. 정권교체 열망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잘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보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서 그만큼 실망도 큰 거지요. 검찰개혁을 한다고 했다가 제대로 못하고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저는 개혁한다고 했다가 제대로 못하고 시끄럽게만 해서 중도층이 떠났다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과 변화를 내걸었지만, 소리만 요란하고 실체적인 변화가 없다는 데 다수 국민이 피로감을 느낀 것이 컸다고 여겨집니다. 효능감 있는 정책이 내 삶에 스며들기를 국민은 원합니다. 부동산 문제는 도대체 몇 번의 정책을 내놓은 것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시로 땜질식 정책을 내놓아 문재인 정부의 신뢰성을 갉아먹었습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반면교사로 삼기는커녕 답습하고 말았습니다.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여론조사의 정치화’ 현상입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여론이 여론조사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여론에 반영’되는 왜곡이 두드러졌습니다. 오차범위 안팎 윤석열 우위라는 대다수 여론조사 결과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짜 승부처는 총선이 있는 2024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2년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첫마음정권교체 요구가 50%를 넘을 만큼 높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폭등한 집값 등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국회 180석을 선물받은 이후에라도 적폐청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각계각층의 개혁 전쟁을 벌였다면 어땠을까. 집값 문제도 사실은, 못 잡은 게 아니라 잡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인 저와 친구들은 새벽에 ‘이민 계획’에 대해 대화했어요. 여성·소수자를 위해 지지하는 후보가 따로 있으나 참담한 현실을 막기 위해 유력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음에도 마주한 참담한 현실에, 이중의 좌절을 느끼는 친구가 많았던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이 ‘이번만큼 투표하기 싫은 대선도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코로나19 시국인 걸 고려하면 투표율이 낮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특히 당선이나 득표 결과가 민심이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닌, 여러 감각의 부대낌이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정경모든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게 맞나봅니다. 대장동, 성별 갈라치기 등의 전략이 먹혀든 게 신기해요.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풀리지 않는 숙제는 3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네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는 자주 이기고, 진보는 가끔 이깁니다. 언제나 51 대 49의 싸움이죠. 실질적인 다당제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프랑스처럼 대통령은 국민이 뽑고 총리는 국회가 뽑는 이원집정부제가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대안이지 않을까요.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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