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연시 최고 화제작은 지상파 티브이(TV)의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이 아니라 <삼프로TV>였습니다.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삼프로 봤어?”라고 물을 정도였지요. 이 유튜브 채널이 대선 후보와 가진 특집 대담의 조회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편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편을 합쳐 1천만 회가 넘습니다. 웬만한 레거시(전통) 미디어를 멀리 따돌리는 규모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7만 개가 넘는 댓글입니다. <삼프로TV>를 향한 찬사가 압도적입니다. ‘일단 욕부터 하고 보는’ 한국의 댓글 문화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훈훈한 풍경입니다. ‘삼프로가 나라를 구했다’는 저 유명한 댓글은 포털 검색창의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유행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 유튜브 채널에 환호하는 걸까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삼프로TV>의 대담이 특별히 훌륭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경제 분야에 대한 후보의 철학과 정책 이해도를 파악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기성 언론의 인터뷰와 차별화된 날카로운 질문이나 새로운 시도를 찾아보긴 어려웠습니다. 두 후보가 역량 면에서 극명하게 대조되는 행운이 없었다면 시청자가 크게 유익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삼프로TV>에 대한 과장된 찬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본래 뉴미디어에 대한 열광은 올드미디어에 대한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룹니다. ‘삼프로가 나라를 구했다’는 말 뒤에는 ‘기성 언론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말이 생략된 거지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나 관훈클럽 등 기자들이 대선 후보를 초청해 가진 토론회를 중계한 유튜브 클립에 정반대로 부정적 댓글만 달리는 걸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중은 나와 후보 사이를 매개하는 언론의 편집 행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수용자의 필요나 관심과 무관하게 언론의 의도에 따라 가공이나 왜곡을 해서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프로TV>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편집으로 ‘매개되지 않는’ 느낌을 주면서 시청자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니 기성 언론보다 도움이 될 수밖에요.
기성 언론 처지에선 이런 ‘의문의 1패’가 억울할 수 있습니다. 시간 제약과 심의 규정 때문에 지상파 방송이 <삼프로TV>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종합일간지와 공영방송의 숙명은 유튜브 채널처럼 세분화된 타깃 집단만 좇아갈 수 없게 만듭니다. 유튜브는 ‘쪼개는’ 매체지만, 레거시 미디어는 ‘모으는’ 매체입니다. 레거시 미디어에는 특정 집단의 관심사만이 아닌, 다양하고 보편적인 이슈를 다뤄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기성 언론이 <삼프로TV>와 똑같이 할 수도 없지만, 똑같이 해서도 안 됩니다.
요컨대 레거시 미디어는 유튜브와 어떻게 싸워도 이길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습니다. 아니, 둘이 싸울 필요조차 없는 다른 종목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튜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레거시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둘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그럼 레거시 미디어는 뭘 해야 할까요? 뉴미디어보다 취재 인력과 노하우를 많이 갖추고 권력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기성 언론은 정확한 사실 확인과 심층적 탐사기획 보도에서 비교우위에 있습니다. 단기적 이윤보다 공익에 헌신하는 수익구조를 갖춘 언론사도 있습니다. 이런 특장점을 극대화해 유튜브 채널이 대체할 수 없는 효용을 제공해야 합니다.
갈 길이 다르다고 기성 언론이 <삼프로TV>의 인기를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자들은 유튜버나 그 수용자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차가 높은 기자일수록 더 그렇지요. 여전히 뉴미디어는 부수적 플랫폼에 불과하고 첫 번째 관심사는 신문의 ‘1면 톱’입니다. 뉴스 이용자가 기성 언론을 외면하고 유튜브로 옮겨가는 이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식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여전히 진정한 요리는 자기 식당뿐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재료와 전통적 레시피로 만든 고급 요리를 몰라보고 조미료가 가득 든 싸구려 음식에 몰려가는 손님을 비웃습니다. 과연 식당 주인의 인식은 바람직할까요? 뉴스는 순수예술이 아닙니다. 손님이 찾지 않는다면 손님의 입맛이 변한 이유와 내 요리의 문제점을 따져봐야 합니다.
후보의 동정과 네거티브 공세를 단순 중계하는 것 외에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던 기존 보도를 반성해야 합니다. 사실을 교묘히 비틀어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려 했던 정파적 행태를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식당 주인이 고집을 꺾고 경쟁력을 회복해 살아남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아 보입니다.
MBC 시사 프로그램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7시간 통화’ 녹취를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보여줘야 할 양질의 탐사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부분 내용은 공익적 가치가 없는 가십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유튜브 채널 기자에게 전달받은 녹음파일을 별다른 추가 취재 없이 그대로 틀어주는 ‘확성기’ 수준에 그쳤습니다.
MBC가 한발 더 나아갔어야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김씨는 공식 직함 없이 선거캠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의심되는 발언을 했습니다. 사실이라면 윤 후보의 자질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입니다. 다만 아직은 김씨의 ‘말’에 불과합니다. 사적 대화에서의 허세나 과장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는 선거캠프 내부나 제3자의 증언을 종합해 발언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후속 취재를 통해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합니다. 녹음파일을 그대로 틀기만 할 거라면 편집 없이 틀어주는 유튜브 채널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MBC 보도는 레거시 미디어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아직은 TV를 보는 사람이 많으니 확성기 구실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경쟁력 없는 ‘과대포장’ 보도로 여론에 섣불리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확성기 구실조차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PD수첩이, JTBC가 나라를 구했다’는 말은 역사책에서나 보게 되겠지요.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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