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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아무것도 모르면서

등록 2021-12-08 01:43 수정 2021-12-08 11:06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내가 처음 갔던 서울 중구 양동(남대문로5가)의 쪽방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옥탑방이었다. 둘은 서로를 어떤 섬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섬에 피는 꽃으로 불렀다. 소곤거리며 말하고 보일 듯 말 듯 씩 웃다가 길게 미소 짓는 둘에게 퍽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따뜻하게 탄 봉지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방을 나섰다. 1층에 내려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 흔드는 둘의 얼굴이 동그랗게 마중 나와 있었다. 그 방도 작았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작았겠지만 우리는 넷이나 넉넉히 모여 앉아 커피를 마셨다.

쪽방이 필요한 사람들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경찰서 뒤로는 양동 쪽방촌이 있다. 양동, 볕이 잘 든다는 그 마을에 사람 사는 곳이라곤 이제 쪽방 건물 몇 채뿐인데 동네를 에워싼 높은 건물 탓에 볕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서울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화려한 전광판을 전면에 단 서울스퀘어 빌딩과 힐튼호텔, 그 너머 남산을 보지만 그 사이 쪽방이 모여 있을 것이라고는 구태여 상상하지 않는다.

양동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여기가 개발된다는 이야기가 술렁이면서였다. 작은 방의 월세를 20만원, 27만원 꼬박꼬박 받아온 건물주들은 ‘리모델링한다’ ‘건물을 판다’는 이유를 대가며 세입자를 내쫓았다. 이삼십 년 양동에 살던 사람들도, 건물주 대신 건물 청소를 해가며 정붙이고 살던 이들도 쫓겨났다. 개발을 앞둔 예비퇴거였다.

개발지역 세입자는 개발계획을 수립했다는 공고가 나기 3개월 전에 전입한 사람이면 공공임대주택 등 세입자 대책의 보상 대상이 되지만, 쪽방 주민은 온라인에만 게시되는 공고를 챙겨보기 어려울뿐더러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쪽방에서 퇴거는 아주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청소 같은 고강도 노동을 싼값에 부리기 위해 저숙련이라는 미신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건물관리자는 쪽방 주민이 내는 평당 월세가 고가 아파트인 타워팰리스보다 높다는 사실을 감추고 ‘보증금도 없는 게 주거권은 무슨 주거권이냐’고 면박을 줬다.

혹자는 쪽방 같은 곳에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쪽방이 사람이 살기 열악한 환경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쪽방의 열악함만 강조하다보면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쪽방이 필요한 사람에게 마땅한 대안 없이 쪽방이 사라지는 건 ‘주거 환경 개선’이 아니라 주거 상실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집이라도 간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쪽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쪽방에 사는 이들에게 하나의 전형이 있으리라고 지레짐작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같은 몇 개의 굴곡진 역사가 이들을 추락시켰다고 간단히 일축하거나, 왜 자립과 자활을 꿈꾸지 않냐고 급하게 질문 고개를 넘곤 한다. 나는 그때마다 소리치고 싶은 기분을 꾹꾹 누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얼마 전 양동 주민들의 생애사를 담은 책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가 나왔다. 양동 주민 주거권 확보를 위한 주민모임 주민 등 10명의 삶의 궤적을 홈리스야학 교사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담았다. 기초생활수급자, 쪽방 주민을 생각할 때 뿌연 얼굴만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동시대 타인의 기억 하나 업어가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모르는 세상 곳곳에서 오롯이 살아온 한명 한명에게 다음 같은 이유로 경의를 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 하나 애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없으므로. 함부로 불쌍해하지 않기 위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마음을 담아.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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