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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갔다 와야 남자 된다는 말

등록 2021-12-03 06:12 수정 2021-12-03 11:5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병무청이 2021년 11월5일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이 논란이다. 휴가 나온 군인과 입대를 앞둔 친구가 대화하는 영상인데 “군대라도 다녀와야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이야기하지”라는 대사가 문제가 됐다. 군대 갔다 와야 남자(사람) 된다는 생각은 예전이라면 문제 제기가 나오지도 않을 만큼 당연한 인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해당 영상이 사회복무요원을 비하하는 내용이라는 비판이 일자 병무청은 유감을 표하며 영상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복무요원뿐만 아니라 현역 여군까지 무시하는 발언이다. 병무청도 잘못을 인정한 마당이니 군대 갔다 와야 남자(사람)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다만 나는 이 해프닝에서 좀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고 싶다.

감옥 갔다 와야 사람 된다

병역거부자들은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말을 패러디해 “감옥 갔다 와야 사람 된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하곤 했다. 나도 그렇고 많은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다녀오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개 고집이 세고 자기중심적인 병역거부자들이지만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가까운 이들의 보살핌으로 자신이 버텼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출소 이후에는 신세 진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이라고 군대 간 사람보다 더 잘나거나 대단할 것은 없다. 그들이 이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까지 온 마당에 감옥에서 겪는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를 참아 넘길 수 있는지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교도관이 반말할 때나 방 사람들이 나중에 들어온 사람을 못살게 굴 때 ‘나는 불합리한 일을 묵과할 수 있는가’. 내 수감 생활을 돌보느라 친구들과 가족이 고생하고 많은 분이 병역거부를 지지해줬는데 ‘나는 출소 뒤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질문이 늘 명쾌한 답이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 있었다.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것은 질문이다. 질문이 불가능한 곳에서 사람은 성장할 수 없고, 질문이 가능하다면 군대든 감옥이든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이때 성장을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질문하지 않는 개인보다 더 문제인 것은 질문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간이다. 군대의 경우 우리가 군사주의라고 부르는 군대 문화와 구조가 질문을 막아선다. 질문이 막힌 곳에서 대다수는 침묵하고 침묵은 생각의 멈춤으로 이어진다. 그런 곳에서는 소수 몇 명만 끝내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그 소수 중 더러는 질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슬픈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질문할 수 있어야 성장한다

“군대 다녀와야 남자 된다”는 낡은 말을 이제 우리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 “질문할 수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군대가 교육을 위한 기관은 아니니 질문까지 만들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군대 내 구성원들이 스스로 던지는 질문마저 막아선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군대의 잘못이다. 군대 갔다 와서 ‘남자’가 되는 것이 자랑인 시절은 끝났다. ‘남자’가 되는 것보다 사람으로서 ‘성장’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군대는 질문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질문 가운데는 군대의 과거 잘못과 현재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도 포함되겠지만, 질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군대라면 과연 누가 가고 싶겠나.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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